1926년 10월 21일 경기도 양주군에서 태어났다. 만보산사건(萬寶山事件) 때 일본군에 피살된 박철규(朴喆奎)의 외동딸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군대를 창설한다는 계획 아래, 1919년에 「대한민국육군임시군제(大韓民國陸軍臨時軍制)」를 제정하였다. 또한 1919년 말 상하이[上海]에 육군무관학교를 설립하여 군사 간부를 양성하고, 만주 지역의 독립군을 관할하에 두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 계획은 지역 간 차이 및 재정적 문제 등으로 인해 어려움이 컸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임시정부는 군사위원회를 설치하여 한국광복군 창설 계획을 세웠다. 이에 따라 4개 지대를 편성하고, 5개의 징모분처(徵募分處)를 설치해 병력을 모집하였다.
광복군에 입대한 여성 대원에 대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독립운동가 집안 출신 여성, 독립운동가와의 결혼을 계기로 입대한 여성, 국내에서 활동하다가 일제 경찰을 피해 중국 등지로 망명을 간 여성, 기생 출신으로 입대한 여성 등 다양한 사례가 확인된다. 사회적 계층 역시 다양하였으며, 입대 동기는 여성 권리 신장, 일제에 의한 가족 구성원의 사망, 친분이 있는 독립운동가의 권유 등이었다. 활동 내용을 살펴보면, 남성 대원들처럼 초모활동, 교육과 훈련, 선전, 한미 군사 합작 및 전략 첩보 활동, 국내진입작전과 정진대 활동 등에 참여하면서 세탁, 재봉, 구호대 등의 일도 수행하였다.
박금녀의 경우 1945년 2월 광복군 제3지대에 합류하여, 구이더[歸德] 지구에서 박재곤(朴載坤), 이헌일(李憲一), 김응주(金應柱), 김봉현(金鳳賢) 등과 초모 및 선전 활동에 참여하였다. 1945년 8월 광복 직후부터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는 일본군 내의 한적사병(韓籍士兵)을 인수하여 광복군으로 편입시키고, 한인 교포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중국 주요 지역에 특파단을 파견하였다. 박금녀는 이때 쉬저우[徐州] 지구 특파단의 일원으로 활동하였다. 귀국 후 어려운 생활을 이어가다가 1992년 7월 28일 사망하였다.
1982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