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숙영은 일제강점기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여 항일운동을 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20년 평안남도 평원군에서 태어났으며, 가족 관계는 알려지지 않았다. 중국으로 건너가게 된 경위 등도 파악되지 않는다. 광복군 제2지대 제2구대 제3분대에 입대하여 활동하였다. 광복군에 입대한 여성 대원들은 남성 대원들처럼 초모활동, 교육과 훈련, 선전, 한미 군사 합작 및 전략 첩보 활동, 국내진입작전과 정진대 활동 등에 참여하면서 동시에 세탁, 재봉, 구호대 등의 일도 수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숙영 또한 유사한 활동을 수행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20년 5월 22일 평안남도 평원군(平原郡) 영유면(永柔面) 어은리(漁隱里)에서 태어났다. 가족 관계 및 중국으로 건너가게 된 경위 등은 알려지지 않았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군대를 창설한다는 계획 아래, 1919년에 「대한민국육군임시군제(大韓民國陸軍臨時軍制)」를 제정하였다. 또한 1919년 말 상하이[上海]에 육군무관학교를 설립하여 군사 간부를 양성하고, 만주 지역의 독립군을 관할하에 두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 계획은 지역 간 차이 및 재정적 문제 등으로 인해 어려움이 컸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임시정부는 군사위원회를 설치하여 한국광복군 창설 계획을 세웠다. 이에 따라 4개 지대를 편성하고, 5개의 징모분처(徵募分處)를 설치해 병력을 모집하였다.
광복군에 입대한 여성 대원에 대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독립운동가 집안 출신 여성, 독립운동가와의 결혼을 계기로 입대한 여성, 국내에서 활동하다가 일제 경찰을 피해 중국 등지로 망명을 간 여성, 기생 출신으로 입대한 여성 등 다양한 사례가 확인된다. 사회적 계층 역시 다양하였으며, 입대 동기는 여성 권리 신장, 일제에 의한 가족 구성원의 사망, 친분이 있는 독립운동가의 권유 등이었다. 활동 내용을 살펴보면, 남성 대원들처럼 초모활동, 교육과 훈련, 선전, 한미 군사 합작 및 전략 첩보 활동, 국내진입작전과 정진대 활동 등에 참여하면서 세탁, 재봉, 구호대 등의 일도 수행하였다.
이같은 상황 속에서 김숙영은 광복군 제2지대 제2구대 제3분대에 입대하여 활동하였다. 그녀의 입대 경위 및 활동 내용은 정확하게 알려지지는 않는다. 1944년 당시 제2지대 지대장은 이범석(李範奭), 제2구대장은 노태준(盧泰俊), 제3분대장은 박영보였다. 제2지대의 활동 지역은 산시성[山西省], 허난성[河南省], 허베이성[河北省] 일대로, 당시 일본군 점령 지역 및 후방 지역이었다.
1982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