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마리아는 일제강점기 미국 하와이에서 대한인부인구제회 조직에 참여하고 독립운동 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865년 평양에서 태어났으며, 1905년 5월경 하와이로 이민 갔다. 이민 후 사탕수수 농장 및 세탁업 등에 종사하다가, 1913년 대한인부인회 창설에 참여하였다. 1919년 하와이 각지의 부인회를 통합하여 출범한 대한인부인구제회에도 참여하였다.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하고 재해 피해민에게 후원금을 모집하여 보내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201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1865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남편은 동향 출신의 강익진(康翊晉)이며, 2남 1녀를 낳았다.
1905년 5월경 자녀 교육을 위해 하와이 이민을 결정하였다. 그해 6월 하와이에 도착해 키파훌루(Kipahulu) 사탕수수농장 노동자로 일하다가, 4개월 후 호놀룰루(Honolulu) 에와(Ewa) 사탕수수농장으로 이주하였다. 이후 딸, 며느리와 함께 세탁업 및 수선업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1909년 2월 대한인국민회 하와이지방총회에서 주최한 일본의 한국 강제 병합 반대 행사에 의연금을 기탁하였다. 1913년에는 일화(日貨) 배척, 한국어 교육, 기독교 전도 등을 목적으로 하는 호놀룰루 대한인부인회[Korean Women's Association] 창설에 참여하였다. 1914년 대한인부인회 재무로 활동하며 국내외 재난 동포 구제금 모금 사업에 앞장섰다.
1919년 3·1운동 소식이 하와이에 전해지자, 3월 15일부터 하와이 각지의 부인 대표들과 함께 독립운동 후원을 목적으로 조직 통합을 논의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4월 1일 각 부인회를 통합한 대한인부인구제회(大韓人婦人救濟會)[Korean Ladies Relief Society]가 결성되었다. 황마리아는 대한인부인구제회를 통해 대한민국임시정부 및 국내의 각종 재해 피해민에게 후원금을 보내는 활동을 이어 나갔다. 1936년에는 대한인부인구제회 회장 자격으로 대한민국임시정부에 군인 양성을 위한 후원금 100달러를 보내기도 하였다.
이 외에도 1928년 호놀룰루 감리교회 부인보조회 부회장, 1934년 하와이 와히아와 미감리교회 부인보조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1930년에는 하와이 한인 정치 기관 수립을 목표로 했던 하와이 한인협회에 발기인으로 참여하기도 하였다. 1937년 8월 5일 사망하였다.
201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