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단체는 “임시정부로 집중시키는 것이 곧 독립의 정신이요 민족통일의 경로”임을 주장한 1월 30일자 취지서에서 활동방향으로 3대 강령을 다음과 같이 제정하였다.
즉 ① 임시정부로 중력을 기성(일이 이루어질 것을 기약함)함, ② 운동의 방략은 최후 1인까지 분투함, ③ 독립당 통일을 기성함이라 정하였다. 이는 통일된 민족운동의 방향을 임시정부로 결집시키는데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단체는 위원제로 운영되었고, 임원은 위원장에 조용하, 재무에 김윤배, 서기 김진호가 맡았다. 임시위원으로 최두욱·조광원·이원순·신국겸·정운서·박상하·이상호·강영효·박종수·정원명·김리제 등이 맡았다. 이 단체에 참가한 사람들은 모두 대조선독립단원들과 하와이내 중립 측 사람들이었다.
이 가운데 독립단 측 사람들이 한인협회 결성에 적극 참여한 것은 박용만 사후 구심점을 잃은 독립단을 새롭게 정비하려는 의도가 적극 반영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처음 40여 명의 회원으로 출발해 두 달도 채 못 되어 80여 명으로 확대되었다. 그러나 통일운동 사업은 활발히 전개되지 못하였다.
이 단체가 결성된 직후 이승만이 전면에 나서 동지회 중심의 통일운동을 전개해 한인협회 위원 11명이 동지회측에 가담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동지회와 교민단간의 알력으로 남아 있던 회원들도 대거 교민단측에 합류함으로써 스스로 해산되고 말았다.
하지만 이 단체의 결성은 하와이 한인 사회에 민족독립을 위해 한인단체의 통일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는 당위성을 전파함으로써 1930년대 미주 한인사회의 통일운동 전개에 큰 원동력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