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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노는 국회의원, 국회징계자격위원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발췌개헌, 사사오입 개헌 등 이승만의 정치권력을 강화하는 활동에 일조한 정치인이다. 1905년 경북 칠곡 출생으로 일본 도쿄농업대학에서 수학한 후 경북 달성군청에서 근무했다. 해방 후 청년운동에 참여하였으며 1948년 제헌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되었다. 1950년, 1954년, 1958년 민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었다. 1954년 9월 이승만의 3선 개헌을 위한 ‘사사오입 개헌’을 통과시키는 데 일조했다. 1958년 4대 민의원 선거에서는 부정행위로 인해 기소된 후, 이듬해 대법원에서 선거무효 판결을 받았다.
김익노 (金益魯)
김익노는 국회의원, 국회징계자격위원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발췌개헌, 사사오입 개헌 등 이승만의 정치권력을 강화하는 활동에 일조한 정치인이다. 1905년 경북 칠곡 출생으로 일본 도쿄농업대학에서 수학한 후 경북 달성군청에서 근무했다. 해방 후 청년운동에 참여하였으며 1948년 제헌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되었다. 1950년, 1954년, 1958년 민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었다. 1954년 9월 이승만의 3선 개헌을 위한 ‘사사오입 개헌’을 통과시키는 데 일조했다. 1958년 4대 민의원 선거에서는 부정행위로 인해 기소된 후, 이듬해 대법원에서 선거무효 판결을 받았다.
대동청년당 묵호읍단부 단장 · 제헌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912년 12월 2일 강원도 강릉 출생으로, 1948년 5월 10일 실시한 제헌국회의원 선거에서 강원도 강릉 갑구 대동청년단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어, 6월 국회 상임위원회 운수체신위원회에 소속되었다. 1955년 자유당 조사부 차장으로 재직했으며, 1956년 9월부터 사단법인 대한군경원호회 전임 부회장을 맡아 1960년 4·19혁명 때까지 재임했다. 1997년 대한민국 헌정회 편집위원회 의장, 대한민국 건국회 상임고문 및 부회장 등으로 활동했다. 2002년 2월 9일 사망했다.
원장길 (元長吉)
대동청년당 묵호읍단부 단장 · 제헌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912년 12월 2일 강원도 강릉 출생으로, 1948년 5월 10일 실시한 제헌국회의원 선거에서 강원도 강릉 갑구 대동청년단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어, 6월 국회 상임위원회 운수체신위원회에 소속되었다. 1955년 자유당 조사부 차장으로 재직했으며, 1956년 9월부터 사단법인 대한군경원호회 전임 부회장을 맡아 1960년 4·19혁명 때까지 재임했다. 1997년 대한민국 헌정회 편집위원회 의장, 대한민국 건국회 상임고문 및 부회장 등으로 활동했다. 2002년 2월 9일 사망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자 해방 이후에 국회의원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900년 경상북도 선산군 선산면 출생으로, 1923년 4월 도쿄에서 박열(朴烈) 등과 비밀결사 불령사(不逞社)를 조직하였고, 1926년 11월 흑색청년연맹(黑色靑年聯盟)을 조직하였다. 1948년 5월 제헌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경상북도 선산에서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소속으로 당선되었다. 1972년 제헌동지회 회원으로 10월 유신을 지지하는 성명서 발표에 동참했다. 1983년 7월 5일 사망했으며,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육홍균 (陸洪均)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자 해방 이후에 국회의원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900년 경상북도 선산군 선산면 출생으로, 1923년 4월 도쿄에서 박열(朴烈) 등과 비밀결사 불령사(不逞社)를 조직하였고, 1926년 11월 흑색청년연맹(黑色靑年聯盟)을 조직하였다. 1948년 5월 제헌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경상북도 선산에서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소속으로 당선되었다. 1972년 제헌동지회 회원으로 10월 유신을 지지하는 성명서 발표에 동참했다. 1983년 7월 5일 사망했으며,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국회의원을 역임하였으며, 국회프락치사건으로 복역하다가 한국전쟁 때 납북되어 북한에서, 재북평화통일협의회 상무위원을 역임한 정치인.
이구수 (李龜洙)
국회의원을 역임하였으며, 국회프락치사건으로 복역하다가 한국전쟁 때 납북되어 북한에서, 재북평화통일협의회 상무위원을 역임한 정치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