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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함문화론은 1925년 최남선이 전개한 한국고대문화 관련 사론(史論)이다. 1920년대 일제의 어용 사학자들에 의해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한국사를 왜곡하는 식민사관이 강요되고 있었다. 이에 맞서 민족주의 사학론이 대두되었다. 특히 최남선은 한국 고대문화의 세계사적 위치를 밝히려 노력하였고, ㅂㆍㄺ[P?rk] 사상에 주목하였다. ㅂㆍㄺ[P?rk]의 가장 오랜 자형(字形)인 ‘불함’이란 말을 빌려 불함문화로 규정하였다. 인류 문화에 기여한 한민족의 문화적 독창성을 천명한 이론으로 민족주의 우파에서 제시한 가장 전형적인 역사 이론으로 평가되고 있다.
불함문화론 (不咸文化論)
불함문화론은 1925년 최남선이 전개한 한국고대문화 관련 사론(史論)이다. 1920년대 일제의 어용 사학자들에 의해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한국사를 왜곡하는 식민사관이 강요되고 있었다. 이에 맞서 민족주의 사학론이 대두되었다. 특히 최남선은 한국 고대문화의 세계사적 위치를 밝히려 노력하였고, ㅂㆍㄺ[P?rk] 사상에 주목하였다. ㅂㆍㄺ[P?rk]의 가장 오랜 자형(字形)인 ‘불함’이란 말을 빌려 불함문화로 규정하였다. 인류 문화에 기여한 한민족의 문화적 독창성을 천명한 이론으로 민족주의 우파에서 제시한 가장 전형적인 역사 이론으로 평가되고 있다.
견등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에서 활동한 『화엄일승성불묘의』, 『대승기신론동현장』 등을 저술한 승려이다. 생몰년은 미상이며, 9세기 중엽에 활동하였다. 우리나라에는 그에 관한 기록이 전혀 없고 일본에만 관련 기록이 남아 있다. 그의 저술에 일본 화엄종 주레의 저술이 인용되어 있어 일본으로 건너가 활동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의상 계통과 상통하면서도 『대승기신론』과 원효의 사상을 아우르는 입장을 보인다.
견등 (見登)
견등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에서 활동한 『화엄일승성불묘의』, 『대승기신론동현장』 등을 저술한 승려이다. 생몰년은 미상이며, 9세기 중엽에 활동하였다. 우리나라에는 그에 관한 기록이 전혀 없고 일본에만 관련 기록이 남아 있다. 그의 저술에 일본 화엄종 주레의 저술이 인용되어 있어 일본으로 건너가 활동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의상 계통과 상통하면서도 『대승기신론』과 원효의 사상을 아우르는 입장을 보인다.
중국인이 동이족에게 붙인 9가지의 종족명칭.
구이 (九夷)
중국인이 동이족에게 붙인 9가지의 종족명칭.
물을 길어 나르거나 음식물을 담아두는 동이모양의 작은 오지그릇.
방구리
물을 길어 나르거나 음식물을 담아두는 동이모양의 작은 오지그릇.
권상하는 조선 후기 『한수재집』, 『삼서집의』 등을 저술한 학자이다. 자는 치도(致道), 호는 수암(遂菴), 한수재(寒水齋), 시호는 문순(文純)이다. 1641년(인조 19)에 출생하여 1721년(경종 1)에 사망했다. 기호학파를 계승한 권상하는 호락논변(湖洛論辨)이라는 논쟁을 일으켰다. 권상하는 이이의 이통기국(理通氣局)설을 들어, 인성·물성이 서로 다르다고 말하였다. 호락논변은 인성론이 자연물에까지 확대된 것으로 조선 성리학의 이론적 발전상을 보여준다. 권상하는 청풍의 황강서원 등에 제향되었다.
권상하 (權尙夏)
권상하는 조선 후기 『한수재집』, 『삼서집의』 등을 저술한 학자이다. 자는 치도(致道), 호는 수암(遂菴), 한수재(寒水齋), 시호는 문순(文純)이다. 1641년(인조 19)에 출생하여 1721년(경종 1)에 사망했다. 기호학파를 계승한 권상하는 호락논변(湖洛論辨)이라는 논쟁을 일으켰다. 권상하는 이이의 이통기국(理通氣局)설을 들어, 인성·물성이 서로 다르다고 말하였다. 호락논변은 인성론이 자연물에까지 확대된 것으로 조선 성리학의 이론적 발전상을 보여준다. 권상하는 청풍의 황강서원 등에 제향되었다.
고전적본풀이는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봉개동 명도암 마을의 고씨 댁과 그 사돈지간인 김씨 댁에서 전해 온 조상 본풀이 서사무가이다. 아버지가 가지고 온 무색옷에 붙은 신 때문에 그 딸이 신병이 났는데, 이를 해결하려던 굿조차 아버지 때문에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해 결국 딸과 그 하녀, 굿을 주관한 심방까지 모두 죽고 만다. 조상 본풀이이면서 '동이 풀이'라는 굿 제차의 유래담이기도 하다.
고전적본풀이 (高典籍本풀이)
고전적본풀이는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봉개동 명도암 마을의 고씨 댁과 그 사돈지간인 김씨 댁에서 전해 온 조상 본풀이 서사무가이다. 아버지가 가지고 온 무색옷에 붙은 신 때문에 그 딸이 신병이 났는데, 이를 해결하려던 굿조차 아버지 때문에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해 결국 딸과 그 하녀, 굿을 주관한 심방까지 모두 죽고 만다. 조상 본풀이이면서 '동이 풀이'라는 굿 제차의 유래담이기도 하다.
숙신은 기원전 6~5세기 중원 북계를 비롯한 산둥반도 및 만주 동북부 지역에 살았던 종족이다. 식신(息愼)·직신(稷愼)이라고도 하며 조선이라는 왕조명을 갖기 이전에 고조선인들을 부르던 호칭으로도 보기도 한다. 숙신의 후손으로는 한(漢)대의 읍루(?婁), 후위(後魏)대의 물길(勿吉)과 수·당대의 말갈(靺鞨), 발해 멸망 후의 여진(女眞)이 꼽힌다. 부여에 살던 읍루족의 후손인 물길이 부여를 멸망시키고 농안지역에 이주한 물길-말갈계 집단이 고구려 멸망 이후 발해를 건국하는 주요 세력이 된다.
숙신 (肅愼)
숙신은 기원전 6~5세기 중원 북계를 비롯한 산둥반도 및 만주 동북부 지역에 살았던 종족이다. 식신(息愼)·직신(稷愼)이라고도 하며 조선이라는 왕조명을 갖기 이전에 고조선인들을 부르던 호칭으로도 보기도 한다. 숙신의 후손으로는 한(漢)대의 읍루(?婁), 후위(後魏)대의 물길(勿吉)과 수·당대의 말갈(靺鞨), 발해 멸망 후의 여진(女眞)이 꼽힌다. 부여에 살던 읍루족의 후손인 물길이 부여를 멸망시키고 농안지역에 이주한 물길-말갈계 집단이 고구려 멸망 이후 발해를 건국하는 주요 세력이 된다.
부여의 제14대(재위:286~미상) 왕.
의라 (依羅)
부여의 제14대(재위:286~미상)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