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만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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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는 오늘날 중국의 동북지방으로, 요령성 · 길림성 · 흑룡강성 및 내몽고 자치구의 동부지역을 포괄한 지역이다. 고대부터 여러 종족의 삶의 터전이었고 중국을 중심으로 보았을 때 변경지역이었다. 1870년대~1900년대까지 조선인들이 이주하여 한인사회를 이루며 항일민족운동을 벌인 곳이다. 농민으로 구성된 한인사회는 민족운동의 기반이었다. 20세기에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을 받았다. 1932년 만주국을 건국하였고 일제는 전쟁과 개발에 동원하기 위하여 조선인에 대한 정책이민을 추진하였다. 조선인은 '불령선인'에서 '개척자'로 불렸다.
만주 (滿洲)
만주는 오늘날 중국의 동북지방으로, 요령성 · 길림성 · 흑룡강성 및 내몽고 자치구의 동부지역을 포괄한 지역이다. 고대부터 여러 종족의 삶의 터전이었고 중국을 중심으로 보았을 때 변경지역이었다. 1870년대~1900년대까지 조선인들이 이주하여 한인사회를 이루며 항일민족운동을 벌인 곳이다. 농민으로 구성된 한인사회는 민족운동의 기반이었다. 20세기에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을 받았다. 1932년 만주국을 건국하였고 일제는 전쟁과 개발에 동원하기 위하여 조선인에 대한 정책이민을 추진하였다. 조선인은 '불령선인'에서 '개척자'로 불렸다.
만주제국협화회는 만주국 전역에 설치된 전인종적 주민조직이다. 1932년에 괴뢰만주국의 배후 실권자인 관동군의 구상과 지도에 의해 조직되었다, 만주국 유일의 정치적 주민조직으로 본부 중앙조직 밑에 집행기관과 결의기관을 두었다. 중앙 본부 이사로 참가한 윤상필 등 다수가 전국연합협의회 협의원으로 활동하였다. 강령은 건국정신의 현양, 민족협화의 실현, 국민생활 향상, 선덕달정(宣德達情)의 철저, 국민동원 완성이었다. 정신공작·협화공작·후생공작·선덕달정공작·조직공작·흥아공작(興亞工作)의 6개 항목을 실천 방책으로 제시하였다.
만주제국협화회 (滿洲帝國協和會)
만주제국협화회는 만주국 전역에 설치된 전인종적 주민조직이다. 1932년에 괴뢰만주국의 배후 실권자인 관동군의 구상과 지도에 의해 조직되었다, 만주국 유일의 정치적 주민조직으로 본부 중앙조직 밑에 집행기관과 결의기관을 두었다. 중앙 본부 이사로 참가한 윤상필 등 다수가 전국연합협의회 협의원으로 활동하였다. 강령은 건국정신의 현양, 민족협화의 실현, 국민생활 향상, 선덕달정(宣德達情)의 철저, 국민동원 완성이었다. 정신공작·협화공작·후생공작·선덕달정공작·조직공작·흥아공작(興亞工作)의 6개 항목을 실천 방책으로 제시하였다.
수풍댐은 평안북도 삭주군에 있는 중력식 콘크리트댐이다. 이 댐은 압록강을 가로막아 막대한 전력을 생산하는 발전설비를 갖추었다. 국경 하천인 압록강에 건설된 만큼 형식적으로나마 두 나라인 만주국과 조선총독부 사이의 협력 사업으로 진행되었고, 일본질소비료주식회사가 실질적인 개발을 맡았다. 1938년 착공해 1944년 완공된 70만㎾급 수풍댐은 아시아 최대 규모였을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손에 꼽히는 위용을 자랑하였다. 1953년 북한과 중국이 함께 한중압록강수력발전회사를 설립한 이래 현재까지 양국이 공동 관리, 운영하고 있다.
수풍댐 (水豊dam)
수풍댐은 평안북도 삭주군에 있는 중력식 콘크리트댐이다. 이 댐은 압록강을 가로막아 막대한 전력을 생산하는 발전설비를 갖추었다. 국경 하천인 압록강에 건설된 만큼 형식적으로나마 두 나라인 만주국과 조선총독부 사이의 협력 사업으로 진행되었고, 일본질소비료주식회사가 실질적인 개발을 맡았다. 1938년 착공해 1944년 완공된 70만㎾급 수풍댐은 아시아 최대 규모였을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손에 꼽히는 위용을 자랑하였다. 1953년 북한과 중국이 함께 한중압록강수력발전회사를 설립한 이래 현재까지 양국이 공동 관리, 운영하고 있다.
수풍수력발전소는 평안북도 삭주군에 있는 댐식 발전시설이다. 압록강은 일찍부터 유력한 발전소 건설지로 주목되었으나 국경 하천이라 개발에 제약이 있었다. 만주국과 조선총독부는 개발이익을 절반씩 나눈다는 조건으로 협력 사업을 진척시켰고, 수력발전소 개발에 오랜 기술력은 물론 압도적인 자금력을 가진 일본질소비료주식회사가 둘 사이를 오가며 발전소 건설을 주도하였다. 그 결과 1944년 총 70만㎾급 발전설비를 갖춘 수풍수력발전소를 건설하였다.
수풍수력발전소 (水豊水力發電所)
수풍수력발전소는 평안북도 삭주군에 있는 댐식 발전시설이다. 압록강은 일찍부터 유력한 발전소 건설지로 주목되었으나 국경 하천이라 개발에 제약이 있었다. 만주국과 조선총독부는 개발이익을 절반씩 나눈다는 조건으로 협력 사업을 진척시켰고, 수력발전소 개발에 오랜 기술력은 물론 압도적인 자금력을 가진 일본질소비료주식회사가 둘 사이를 오가며 발전소 건설을 주도하였다. 그 결과 1944년 총 70만㎾급 발전설비를 갖춘 수풍수력발전소를 건설하였다.
해방 이후 동국대학교 총장,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초대 원장 등을 역임한 교육자. 언론인, 역사학자.
이선근 (李瑄根)
해방 이후 동국대학교 총장,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초대 원장 등을 역임한 교육자. 언론인, 역사학자.
진학문은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 시기, 『요조한〔四畳半〕』, 『홍루(紅淚)』 등을 번역한 소설가이자 언론인,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1920년 『동아일보』 논설위원과 정치경제부장, 1924년 『시대일보』 편집인 겸 발행인을 지냈고, 1937년 만주국 내무국 참사관과 1945년 중추원참의로 임명되었으며, 8‧15광복 이후 경제계에 투신하여 1963년부터 한국경제인연합회 상임부회장으로 취임하였다.
진학문 (秦學文)
진학문은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 시기, 『요조한〔四畳半〕』, 『홍루(紅淚)』 등을 번역한 소설가이자 언론인,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1920년 『동아일보』 논설위원과 정치경제부장, 1924년 『시대일보』 편집인 겸 발행인을 지냈고, 1937년 만주국 내무국 참사관과 1945년 중추원참의로 임명되었으며, 8‧15광복 이후 경제계에 투신하여 1963년부터 한국경제인연합회 상임부회장으로 취임하였다.
대륙신부는 일제강점기 이식민 정책에 따라 만주에 이주한 청년 남성의 결혼난을 해결하기 위하여 결혼 알선 정책에 동원된 여성이다. 일본인 대륙신부 알선 정책은 일본인 남성의 정착을 촉진하고 일본인의 순혈을 보호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조선인의 순혈 보호는 중요하지 않았으므로 조선인 대륙신부 알선 정책은 비체계적이고 임시방편적이었으며, 노동의 역할을 부여받았다. 일제의 대륙신부 양성 정책은 국가적 목적을 위해 여성과 가정을 동원하는 정책이자 일본인과 조선인 인구에 대한 차별적인 시각을 반영한 정책이었다.
대륙신부 (大陸新婦|大陸の花嫁)
대륙신부는 일제강점기 이식민 정책에 따라 만주에 이주한 청년 남성의 결혼난을 해결하기 위하여 결혼 알선 정책에 동원된 여성이다. 일본인 대륙신부 알선 정책은 일본인 남성의 정착을 촉진하고 일본인의 순혈을 보호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조선인의 순혈 보호는 중요하지 않았으므로 조선인 대륙신부 알선 정책은 비체계적이고 임시방편적이었으며, 노동의 역할을 부여받았다. 일제의 대륙신부 양성 정책은 국가적 목적을 위해 여성과 가정을 동원하는 정책이자 일본인과 조선인 인구에 대한 차별적인 시각을 반영한 정책이었다.
양국진은 일제강점기~현대에 만주국군 장교, 대한민국 육군본부 군수국장 등을 역임한 군인이다. 1916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만주의 법정대학을 졸업한 뒤 만주국 중앙육군훈련처와 육군 군수학교를 거쳐 만주국군 상위를 지냈다. 해방 직후 경찰에 들어가 경시에 올랐다. 그 뒤 1946년 군사영어학교를 졸업하고 국방경비대 부위로 임관하였다. 육군본부 군수국장, 제2훈련소 소장, 제3군단장 등을 역임하고, 1960년 육군 중장으로 예편하였다. 전역 후 군납 업체인 대한종합식품회사 사장을 지냈으며, 1981년 사망하였다.
양국진 (楊國鎭)
양국진은 일제강점기~현대에 만주국군 장교, 대한민국 육군본부 군수국장 등을 역임한 군인이다. 1916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만주의 법정대학을 졸업한 뒤 만주국 중앙육군훈련처와 육군 군수학교를 거쳐 만주국군 상위를 지냈다. 해방 직후 경찰에 들어가 경시에 올랐다. 그 뒤 1946년 군사영어학교를 졸업하고 국방경비대 부위로 임관하였다. 육군본부 군수국장, 제2훈련소 소장, 제3군단장 등을 역임하고, 1960년 육군 중장으로 예편하였다. 전역 후 군납 업체인 대한종합식품회사 사장을 지냈으며, 1981년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