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무교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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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모는 양평학교 교사, 오산학교 교사, 오산학교 교장 등을 역임한 교육자이자 종교인, 종교철학자이다. 호는 다석(多夕)이다. 1905년 기독교 신자가 되었으며 오산학교 재직 시절 톨스토이를 연구하면서 무교회주의자가 되었다. 동서양의 정신 문화를 창조적으로 융합한 종교철학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함석헌의 스승으로 알려져 있다.
유영모 (柳永模)
유영모는 양평학교 교사, 오산학교 교사, 오산학교 교장 등을 역임한 교육자이자 종교인, 종교철학자이다. 호는 다석(多夕)이다. 1905년 기독교 신자가 되었으며 오산학교 재직 시절 톨스토이를 연구하면서 무교회주의자가 되었다. 동서양의 정신 문화를 창조적으로 융합한 종교철학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함석헌의 스승으로 알려져 있다.
함석헌은 해방 이후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 『인간혁명』, 『역사와 민족』 등을 저술한 작가이자 사상가, 민중운동가이다. 일제강점기에는 무교회주의와 긴밀한 관련을 맺으면서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심어주었다. 광복 이후에는 동서양의 종교전통을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포용적이고 개방적인 종교론을 전개하는 한편, 사회정치적으로는 민주화 및 인권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함석헌 (咸錫憲)
함석헌은 해방 이후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 『인간혁명』, 『역사와 민족』 등을 저술한 작가이자 사상가, 민중운동가이다. 일제강점기에는 무교회주의와 긴밀한 관련을 맺으면서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심어주었다. 광복 이후에는 동서양의 종교전통을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포용적이고 개방적인 종교론을 전개하는 한편, 사회정치적으로는 민주화 및 인권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조선성서연구회는 일제 강점기 무교회주의에 입각하여 성서를 연구했던 신앙단체이다. 1930년 김교신이 성서연구를 통해 조선적 기독교를 표방하며 설립했다. 1920년대 일본의 무교회주의자 우치무라 간죠의 영향을 받은 한국인 유학생, 즉 김교신, 함석헌 등이 시작한 성서 연구 모임에서 시작되었다. 1927년 김교신 주도 하에 신앙동인지 〈성서조선〉이 창간되었고, 1930년부터 월간지로 발간되며 무교회주의 운동의 중심이 되었다. 이들은 교회의 제도와 교리를 비판하며 성서를 통해 조선적 기독교를 추구했다. 일제의 탄압으로 1942년 〈성서조선〉이 폐간되고 연구회도 해산되었다.
조선성서연구회 (朝鮮聖書硏究會)
조선성서연구회는 일제 강점기 무교회주의에 입각하여 성서를 연구했던 신앙단체이다. 1930년 김교신이 성서연구를 통해 조선적 기독교를 표방하며 설립했다. 1920년대 일본의 무교회주의자 우치무라 간죠의 영향을 받은 한국인 유학생, 즉 김교신, 함석헌 등이 시작한 성서 연구 모임에서 시작되었다. 1927년 김교신 주도 하에 신앙동인지 〈성서조선〉이 창간되었고, 1930년부터 월간지로 발간되며 무교회주의 운동의 중심이 되었다. 이들은 교회의 제도와 교리를 비판하며 성서를 통해 조선적 기독교를 추구했다. 일제의 탄압으로 1942년 〈성서조선〉이 폐간되고 연구회도 해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