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민청학련"
검색결과 총 7건
해방 이후 검찰총장, 법무부장관, 중앙정보부장 등을 역임한 관료. 법조인.
신직수 (申稙秀)
해방 이후 검찰총장, 법무부장관, 중앙정보부장 등을 역임한 관료. 법조인.
도예종은 8·15광복 이후 민주화와 통일운동을 전개한 진보적 활동가이다. 4·19혁명 직후 대구 지역에서 민주민족청년동맹 경북도맹을 중심으로 활동하였으며, 1964년 제1차 인민혁명당 사건으로 투옥되었다. 1974년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으로 이듬해 사형당하였으나, 2007년 재심 결과 무죄 판결을 받았다.
도예종 (都禮鍾)
도예종은 8·15광복 이후 민주화와 통일운동을 전개한 진보적 활동가이다. 4·19혁명 직후 대구 지역에서 민주민족청년동맹 경북도맹을 중심으로 활동하였으며, 1964년 제1차 인민혁명당 사건으로 투옥되었다. 1974년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으로 이듬해 사형당하였으나, 2007년 재심 결과 무죄 판결을 받았다.
서도원은 민주화, 통일운동을 전개한 진보적 사회운동가이다. 1950년 대구매일신문 논설위원을 지냈으며 4.19혁명기에 조직된 민주민족청년동맹(민민청) 경상북도연맹 결성시 초대위원장으로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였다. 1960년대 여러 차례 공안사건에 연루돼 구속된 바 있으며, 1975년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사형을 당하였다. 2007년 1월 서도원 등에 대한 재심 결과, 국가보안법 위반, 내란 예비음모 혐의 등에 대해 무죄가 선고되었다.
서도원 (徐道源)
서도원은 민주화, 통일운동을 전개한 진보적 사회운동가이다. 1950년 대구매일신문 논설위원을 지냈으며 4.19혁명기에 조직된 민주민족청년동맹(민민청) 경상북도연맹 결성시 초대위원장으로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였다. 1960년대 여러 차례 공안사건에 연루돼 구속된 바 있으며, 1975년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사형을 당하였다. 2007년 1월 서도원 등에 대한 재심 결과, 국가보안법 위반, 내란 예비음모 혐의 등에 대해 무죄가 선고되었다.
윤한봉은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전남북 책임자로 활동하고 1980년 5월 17일 24시 비상계엄 전국 확대와 함께 내려진 수배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민주화운동가이다. 한국 사회의 민주화와 통일을 위한 운동을 전개하였다.
윤한봉 (尹漢琫)
윤한봉은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전남북 책임자로 활동하고 1980년 5월 17일 24시 비상계엄 전국 확대와 함께 내려진 수배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민주화운동가이다. 한국 사회의 민주화와 통일을 위한 운동을 전개하였다.
김근태는 대한민국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 사회운동가이자 정치가이다. 유신체제와 제5공화국의 독재정권에서 수많은 수배와 구속, 참혹한 고문과 수감 생활을 감내하며 민주화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민주화운동청년연합과 전국민족민주연합을 창립하였으며, 민주화 이후에는 정계에 입문하여 국회의원과 보건복지부 장관 등을 지냈다.
김근태 (金槿泰)
김근태는 대한민국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 사회운동가이자 정치가이다. 유신체제와 제5공화국의 독재정권에서 수많은 수배와 구속, 참혹한 고문과 수감 생활을 감내하며 민주화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민주화운동청년연합과 전국민족민주연합을 창립하였으며, 민주화 이후에는 정계에 입문하여 국회의원과 보건복지부 장관 등을 지냈다.
김상진은 대한민국의 민주화운동가로, 1975년 4월 11일 유신체제에 항거하여 할복 자살하였다. 1968년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에 입학한 후 ‘한얼'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후일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에 의해 민주화운동이 인정되었다.
김상진 (金相眞)
김상진은 대한민국의 민주화운동가로, 1975년 4월 11일 유신체제에 항거하여 할복 자살하였다. 1968년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에 입학한 후 ‘한얼'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후일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에 의해 민주화운동이 인정되었다.
조영래는 대한민국의 인권변호사로, 『전태일평전』의 집필자이자 1980년대 노동·여성·환경 관련 사건의 변론을 맡았던 인물이다. 1972년 서울대생 내란음모 사건으로 1년 6개월간 복역하고 1974년 민청학련사건으로 6년간 도피 생활을 하는 등 고초를 겪었다. 1983년 시민공익법률사무소를 개설하여 망원동 수재집단의 소송사건, 이경숙사건(여성조기정년제 철폐사건),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상봉동 진폐소송사건 등을 맡았다.
조영래 (趙英來)
조영래는 대한민국의 인권변호사로, 『전태일평전』의 집필자이자 1980년대 노동·여성·환경 관련 사건의 변론을 맡았던 인물이다. 1972년 서울대생 내란음모 사건으로 1년 6개월간 복역하고 1974년 민청학련사건으로 6년간 도피 생활을 하는 등 고초를 겪었다. 1983년 시민공익법률사무소를 개설하여 망원동 수재집단의 소송사건, 이경숙사건(여성조기정년제 철폐사건),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상봉동 진폐소송사건 등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