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 ()

현대사
인물
대한민국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 사회운동가이자 정치가.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47년 2월 14일
사망 연도
2011년 12월 30일
본관
경주(慶州)
출생지
경기도 부천
주요 저서
남영동|열린 세상으로 통하는 가냘픈 통로에서|희망의 근거|희망은 힘이 세다
주요 경력
열린우리당 의장|국회의원|보건복지부 장관
대표 상훈
로버트 케네디 인권상(1987)
관련 사건
서울대생내란음모사건 |민주화추진위원회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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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김근태는 대한민국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 사회운동가이자 정치가이다. 유신체제와 제5공화국의 독재정권에서 수많은 수배와 구속, 참혹한 고문과 수감 생활을 감내하며 민주화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민주화운동청년연합과 전국민족민주연합을 창립하였으며, 민주화 이후에는 정계에 입문하여 국회의원과 보건복지부 장관 등을 지냈다.

정의
대한민국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 사회운동가이자 정치가.
인적 사항

김근태(金槿泰)는 1947년 2월 14일 경기도 소사(지금의 부천)에서 12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광신중학교, 경기고등학교를 거쳐 1965년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하였다. 이화여자대학교 출신으로, 부평 봉제공장에 위장 취업해 활동하던 인재근(印在槿)과 1977년에 혼인하였다.

주요 활동

1967년 6월 8일 총선 부정 선거를 비판하는 시위에 참여하였다가 1979년 10 · 26사태로 제적되고 강제 징집되었다. 1970년 제대 후 복학하여 1971년 2월 서울대생내란음모사건의 배후 인물로 수배되었고,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사건(약칭 민청학련사건)으로 수배되었으며, 1975년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수배되었다.

1983년 9월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을 결성하여 초대 의장과 2대 의장을 역임하였다. 민청련은 기관지 『민주화의 길』을 펴내며 선도적인 정치 투쟁을 전개하였다. 1985년 8월 24일 서울대학교 민주화추진위원회사건의 배후 인물로 연행되어 9월 4일부터 26일까지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 기술자로 알려진 이근안 경감에게 전기 고문과 물 고문 등 참혹한 고문을 당하였다.

1987년 6월항쟁이 일어나고 13대 여소야대 국회가 출범한 후 1988년 6월 30일 2년 10개월 만에 석방되었다. 1988년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을 창립하여 정책기획실장, 집행위원장 등으로 활동하다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어 1990년 5월부터 1992년 8월까지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1995년 민주당에 입당하여 부총재로 정계에 입문하였고, 같은 해 9월 새정치국민회의 창당에 참여하여 부총재로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시작하였다. 제15대 국회의원(새정치국민회의), 제16대 국회의원( 새천년민주당), 제17대 국회의원( 열린우리당),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와 의장, 보건복지부 장관 등을 역임하였다.

2002년 16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3월 3일 민주당 최고위원 경선(2000년 8월 30일) 시기에 당의 경선 비용을 공개하고 선거 자금을 불법으로 사용하였다고 양심선언을 한 뒤 중도 사퇴하였다. 이후 고문 후유증이 악화되어 2007년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고, 오랜 투병 끝에 합병증으로 2011년 12월 30일 사망하였다. 장례식은 사회장으로 치러졌고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에 안장되었다.

사상과 저술

김근태는 숱한 고문과 인권 탄압, 수배와 도배, 수감 생활 등을 감수하며 박정희 정부와 유신체제, 전두환 정부와 제5공화국의 군사독재에 저항하였고, 노태우 정부에서는 기층 민중이 참여하는 민주 세력의 통합에 헌신하여 민주화운동의 선구자로 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정계에 입문한 이후에는 인권과 민주주의가 인간의 가치이며 희망이라는 자신의 뜻을 제도 정치권에서 충분히 펼치지 못하였다. 저서로 『남영동』, 『희망의 근거』, 『희망은 힘이 세다』 등이 있다.

상훈과 추모

김근태의 아내 인재근은 1985년 김근태 민청련 의장에 대한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의 고문을 미국 언론과 인권 단체에 폭로하였다. 이 사건으로 김근태와 인재근은 1987년 로버트 케네디 인권상을 공동 수상하였다. 김근태는 1988년 독일의 함부르크 재단에서 '세계의 양심수'로 선정되었다. 인재근은 김근태 사후에 그의 지역구인 도봉구에서 19대 국회부터 3선을 하였다. 2012년 6월 김근태와 인재근은 제2회 ‘진실의힘’ 인권상을 수상하였다.

김근태가 고문을 당한 남영동 대공분실 건물은 현재 민주인권기념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고인의 뜻을 기리기 위한 인권의학연구소‧김근태기념치유센터, 김근태재단 등이 설립되어 운영되고 있다.

참고문헌

단행본

김근태, 『희망은 힘이 세다』(다우, 2001)
김근태, 『희망의 근거』(당대, 1995)
김근태, 『남영동』(중원문화, 1984)

인터넷 자료

김근태재단(https://gtf.or.kr)
민주인권기념관(https://dhrm.or.kr)
인권의학연구소‧김근태기념치유센터(https://imhr.or.kr)
집필자
김정한(서강대학교 트랜스내셔널인문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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