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대한민국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 사회운동가이자 정치가.
인적 사항
주요 활동
1983년 9월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을 결성하여 초대 의장과 2대 의장을 역임하였다. 민청련은 기관지 『민주화의 길』을 펴내며 선도적인 정치 투쟁을 전개하였다. 1985년 8월 24일 서울대학교 민주화추진위원회사건의 배후 인물로 연행되어 9월 4일부터 26일까지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 기술자로 알려진 이근안 경감에게 전기 고문과 물 고문 등 참혹한 고문을 당하였다.
1987년 6월항쟁이 일어나고 13대 여소야대 국회가 출범한 후 1988년 6월 30일 2년 10개월 만에 석방되었다. 1988년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을 창립하여 정책기획실장, 집행위원장 등으로 활동하다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어 1990년 5월부터 1992년 8월까지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1995년 민주당에 입당하여 부총재로 정계에 입문하였고, 같은 해 9월 새정치국민회의 창당에 참여하여 부총재로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시작하였다. 제15대 국회의원(새정치국민회의), 제16대 국회의원(새천년민주당), 제17대 국회의원(열린우리당),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와 의장, 보건복지부 장관 등을 역임하였다.
2002년 16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3월 3일 민주당 최고위원 경선(2000년 8월 30일) 시기에 당의 경선 비용을 공개하고 선거 자금을 불법으로 사용하였다고 양심선언을 한 뒤 중도 사퇴하였다. 이후 고문 후유증이 악화되어 2007년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고, 오랜 투병 끝에 합병증으로 2011년 12월 30일 사망하였다. 장례식은 사회장으로 치러졌고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에 안장되었다.
사상과 저술
상훈과 추모
김근태가 고문을 당한 남영동 대공분실 건물은 현재 민주인권기념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고인의 뜻을 기리기 위한 인권의학연구소‧김근태기념치유센터, 김근태재단 등이 설립되어 운영되고 있다.
참고문헌
단행본
- 김근태, 『희망은 힘이 세다』(다우, 2001)
- 김근태, 『희망의 근거』(당대, 1995)
- 김근태, 『남영동』(중원문화, 1984)
인터넷 자료
- 김근태재단(https://gtf.or.kr)
- 민주인권기념관(https://dhrm.or.kr)
- 인권의학연구소‧김근태기념치유센터(https://imhr.or.kr)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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