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1991년 노태우 정권의 반민주적 통치에 저항한 대학생 활동가.
인적 사항
주요 활동
명지대학교 경제학과 강경대(姜慶大) 학생이 1991년 4월 26일 백골단의 폭행으로 사망한 후 전국적으로 강경대를 추모하고 노태우 정권의 폭력성을 비판하는 집회와 시위가 전개되었다. 박승희는 4월 29일 2시 전남대학교에서 개최된 ‘강경대 살인 만행 규탄 및 살인 정권 폭력 정권 노태우 정권 퇴진을 위한 2만 학우 결의대회’에 참석하고, 3시경 전남대학교 본부(용봉관) 뒤쪽에서 분신하였다.
박승희의 분신은 강경대의 죽음이 1991년 5월 투쟁으로 이어지는 주요 계기가 되었다. 박승희 이후에 5월 1일 안동대학교 김영균, 5월 3일 경원대학교 천세용, 5월 8일 김기설, 5월 10일 윤용하, 5월 18일 이정순, 전라남도 보성고등학교 김철수, 광주 운전기사 차태권, 5월 22일 광주 정상순, 6월 8일 인천 노동자 이진희, 6월 15일 인천 택시 노동자 석광수 등 학생, 빈민, 노동자 등 11명이 ‘노태우 퇴진’을 요구하며 분신하였으며, 5월 6일 한진중공업 박창수 노조위원장의 의문사 사건, 5월 25일 성균관대학교 학생 김귀정이 시위 도중 폭력 진압으로 사망하는 사건도 발생하였다. 그러나 1991년 5월 투쟁은 검찰이 조작한 ‘유서대필사건’으로 인해 급속히 동력을 상실하였다.
박승희는 전남대학교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면서 의사소통이 가능해지자 “노태우 정권 타도, 미국 놈들 몰아내자.”라고 손가락 글씨로 구호를 적기도 하였다. 5월 19일 강경대 시신 운구가 경찰 병력과 충돌하며 광주 시내로 진입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박승희가 사망하자 광주 시민들과 학생들은 경찰 저지선을 뚫고 강경대 운구가 금남로 도청 노제를 진행할 수 있게 하였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단행본
- 김정한, 『대중과 폭력: 1991년 5월의 기억』(개정판) (후마니타스, 2021)
- 전재호, 김원, 김정한, 『91년 5월 투쟁과 한국의 민주주의』(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04)
신문
- 「더 바보였던 승희는 먼저 떠났고 덜 바보였던 우린…」(『오마이뉴스』(2021. 4. 29.)
인터넷 자료
- 박승희장학재단(http://박승희장학재단.org)
- 박승희정신계승사업회(https://www.facebook.com/cosmos91)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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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한국의 군인·정치가. 제13대 대통령(재임 1988~1993). 내무부 장관, 국회의원 등을 지냈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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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1991년 당시 명지대생 강경대 씨의 사망에 항의하면서 분신한 김기설 씨의 유서를 전민련 총무부장이던 강기훈 씨가 대필했다는 혐의로 구속돼 복역했던 사건이다. 강기훈 씨는 2015년 5월 재심 끝에 대법원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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