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박정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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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양 친필 편지는 초대 주미 전권공사 박정양이 1888년 5월 2일, 조선에 파견된 연무공원의 군사 교관 존 리에게 보낸 편지이다. 편지지와 편지 봉투는 'LEGATION OF KOREA, WASHINGTON'이 인쇄된 공사관 전용지이다. 조선 군대를 정예병으로 양성해 달라고 당부하는 내용을 편지지 오른쪽에 한문으로 적었고, 왼쪽에는 영문으로 간단하게 안부를 묻는 내용을 썼다. 구한말 미국 공관원이 쓴 현존하는 유일본으로 사료적 가치가 높다.
박정양 친필 편지 (朴定陽 親筆 便紙)
박정양 친필 편지는 초대 주미 전권공사 박정양이 1888년 5월 2일, 조선에 파견된 연무공원의 군사 교관 존 리에게 보낸 편지이다. 편지지와 편지 봉투는 'LEGATION OF KOREA, WASHINGTON'이 인쇄된 공사관 전용지이다. 조선 군대를 정예병으로 양성해 달라고 당부하는 내용을 편지지 오른쪽에 한문으로 적었고, 왼쪽에는 영문으로 간단하게 안부를 묻는 내용을 썼다. 구한말 미국 공관원이 쓴 현존하는 유일본으로 사료적 가치가 높다.
독립협회는 1896년 경성에서 민족주의·민주주의·근대화운동을 전개한 정치·사회 단체이다. 한국 최초의 근대적 사회 정치 단체로 독립문 건립 기구를 표방하여 창립된 후,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다가 해산되었다. 자강을 통한 자주 독립을 주장하며, 내부에 황제권을 중심으로 한 점진적 개혁 노선과 관료에 의한 권력 독점을 지향한 노선이 병존하였다. 「헌의6조」를 제출하여 중추원관제 개편이라는 성과를 얻었으나, 구제(舊制) 복구를 주장하는 보수 세력의 반발을 받았고, 급진파의 과격한 활동을 황제권 강화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한 고종에 의해 해산되었다.
독립협회 (獨立協會)
독립협회는 1896년 경성에서 민족주의·민주주의·근대화운동을 전개한 정치·사회 단체이다. 한국 최초의 근대적 사회 정치 단체로 독립문 건립 기구를 표방하여 창립된 후,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다가 해산되었다. 자강을 통한 자주 독립을 주장하며, 내부에 황제권을 중심으로 한 점진적 개혁 노선과 관료에 의한 권력 독점을 지향한 노선이 병존하였다. 「헌의6조」를 제출하여 중추원관제 개편이라는 성과를 얻었으나, 구제(舊制) 복구를 주장하는 보수 세력의 반발을 받았고, 급진파의 과격한 활동을 황제권 강화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한 고종에 의해 해산되었다.
조선 후기에, 대흥군수, 연안부사, 서흥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박종여 (朴宗輿)
조선 후기에, 대흥군수, 연안부사, 서흥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경상도관찰사, 한성부판윤 등을 역임한 문신.
김세호 (金世鎬)
조선 후기에, 경상도관찰사, 한성부판윤 등을 역임한 문신.
주미한국공사는 1887년부터 1906년까지 자주외교와 친미정책을 펼치기 위해 미국에 파견된 공사관이다. 갑신정변 후 중국이 조선의 국정 전반에 간섭하자, 조선은 자주권 행사의 일환으로 박정양을 주미전권공사로 임명하였다. 그후 이하영·이완용·이채연 등이 대리공사로 임명되었다. 일본에 의해 외교권이 박탈될 때까지 미국에 주재하면서 외교 현안을 처리하고 중국과 일본 등의 내정간섭과 침략을 견제하기 위한 자주외교를 펼쳤다. 정부의 요직에 발탁되어 갑오개혁·독립협회운동 등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으나 일부는 친일파로 변신하였다.
주미한국공사 (駐美韓國公使)
주미한국공사는 1887년부터 1906년까지 자주외교와 친미정책을 펼치기 위해 미국에 파견된 공사관이다. 갑신정변 후 중국이 조선의 국정 전반에 간섭하자, 조선은 자주권 행사의 일환으로 박정양을 주미전권공사로 임명하였다. 그후 이하영·이완용·이채연 등이 대리공사로 임명되었다. 일본에 의해 외교권이 박탈될 때까지 미국에 주재하면서 외교 현안을 처리하고 중국과 일본 등의 내정간섭과 침략을 견제하기 위한 자주외교를 펼쳤다. 정부의 요직에 발탁되어 갑오개혁·독립협회운동 등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으나 일부는 친일파로 변신하였다.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신촌동에 있는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소속 의학전문박물관.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동은의학박물관 (延世大學校 醫科大學 東隱醫學博物館)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신촌동에 있는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소속 의학전문박물관.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은 1877년 빅토리아 양식으로 지어진 주택으로 미국 워싱턴 DC 워싱턴에 위치한 대한제국 공사관 건물로 미국 국가사적지이다. 16년 동안 공사관으로 사용되었던 곳으로 당시 재외 공사관으로는 유일하게 단독 건물이었다. 1887년에 초대 주미 전권공사 박정양이 미국 국무차관이였던 브라운에게 구입하였다. 현재까지 원형이 잘 보존된 이 건물은 로간 서클에 있던 빅토리아 양식의 건물 중에서 외관이 뛰어났다고 알려졌다. 미국과의 독자적인 자주 외교를 지향하였지만 일제에 빼앗겼던 대한제국시기의 대표적인 외교 관련 유적이다.
주미대한제국공사관 (駐美大韓帝國公使館)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은 1877년 빅토리아 양식으로 지어진 주택으로 미국 워싱턴 DC 워싱턴에 위치한 대한제국 공사관 건물로 미국 국가사적지이다. 16년 동안 공사관으로 사용되었던 곳으로 당시 재외 공사관으로는 유일하게 단독 건물이었다. 1887년에 초대 주미 전권공사 박정양이 미국 국무차관이였던 브라운에게 구입하였다. 현재까지 원형이 잘 보존된 이 건물은 로간 서클에 있던 빅토리아 양식의 건물 중에서 외관이 뛰어났다고 알려졌다. 미국과의 독자적인 자주 외교를 지향하였지만 일제에 빼앗겼던 대한제국시기의 대표적인 외교 관련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