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북성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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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범은 일제강점기, 조선노농총동맹과 북풍회, 만주 정통단에서 활동한 사회주의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이다. 부산 출신으로, 재일 사상단체인 코스모구락부 회장을 지냈고, 1923년 1월 북성회에 참여하였다. 1924년 1월 부산노동동맹회 집행위원, 3월 남선노농동맹 창립대회 임시의장, 4월 조선노농총동맹 창립대회 전형위원 및 상무집행위원에 선임되었다. 비밀결사 고려총국 국내부와 까엔당에 하였고, 사상단체 건설사 북풍회에 참여하였다. 1926년 중국 지린〔吉林〕에서 무장단체 정통단(正統團)을 결성하여 단장이 되었다.
김종범 (金鍾範)
김종범은 일제강점기, 조선노농총동맹과 북풍회, 만주 정통단에서 활동한 사회주의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이다. 부산 출신으로, 재일 사상단체인 코스모구락부 회장을 지냈고, 1923년 1월 북성회에 참여하였다. 1924년 1월 부산노동동맹회 집행위원, 3월 남선노농동맹 창립대회 임시의장, 4월 조선노농총동맹 창립대회 전형위원 및 상무집행위원에 선임되었다. 비밀결사 고려총국 국내부와 까엔당에 하였고, 사상단체 건설사 북풍회에 참여하였다. 1926년 중국 지린〔吉林〕에서 무장단체 정통단(正統團)을 결성하여 단장이 되었다.
변희용은 일제강점기 청년운동 및 신간회운동에 참여한 사회주의운동가, 독립운동가로 해방 후 성균관대학교 총장을 역임하였다. 경상북도 고 령출신. 게이오(慶應)대학을 졸업했다. 일본 사상단체인 신인회, 효민회, 코스모구락부, 십월회, 북성회 등에 가입해서 활동했다. 『전진(前進)』의 편집 발행인이었다. 1927년 신간회 고령지회 지회장에 선임되었다. 1945년 9월 한국민주당 결성에 참여했고. 1947년 잡지 [재건]의 주간이 되었다. 1960년 4월혁명 시 재경교수단 구국선언과 4․25교수 데모를 주도했다.
변희용 (卞熙瑢)
변희용은 일제강점기 청년운동 및 신간회운동에 참여한 사회주의운동가, 독립운동가로 해방 후 성균관대학교 총장을 역임하였다. 경상북도 고 령출신. 게이오(慶應)대학을 졸업했다. 일본 사상단체인 신인회, 효민회, 코스모구락부, 십월회, 북성회 등에 가입해서 활동했다. 『전진(前進)』의 편집 발행인이었다. 1927년 신간회 고령지회 지회장에 선임되었다. 1945년 9월 한국민주당 결성에 참여했고. 1947년 잡지 [재건]의 주간이 되었다. 1960년 4월혁명 시 재경교수단 구국선언과 4․25교수 데모를 주도했다.
박형병은 8일제강점기 고려공산동맹, 조선공산당 등에서 활동한 사회주의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이다.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수학 중 유학생 운동에 참가하고, 1923년 북성회를 조직했다. 귀국 후 물산장려운동을 비판하는 글을 발표하였다. 1924년 고려공산동맹에 참여하고, 1927년에는 조선공산당에 입당하였다. ML파에 반대하여 1927년 12월 서상파 조선공산당 대회에 참석하였다. 마르크스의 『임금 노동과 자본』 등을 번역하였다.
박형병 (朴衡秉)
박형병은 8일제강점기 고려공산동맹, 조선공산당 등에서 활동한 사회주의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이다.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수학 중 유학생 운동에 참가하고, 1923년 북성회를 조직했다. 귀국 후 물산장려운동을 비판하는 글을 발표하였다. 1924년 고려공산동맹에 참여하고, 1927년에는 조선공산당에 입당하였다. ML파에 반대하여 1927년 12월 서상파 조선공산당 대회에 참석하였다. 마르크스의 『임금 노동과 자본』 등을 번역하였다.
김약수는 일제강점기 조선노동공제회, 조선노동총동맹 창설에 참여한 노동운동가, 정치인이다. 1890년 부산 출생으로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이다. 1920년 한국 최초의 노동운동단체인 조선노동공제회, 이후 건설사(建設社)와 조선청년총동맹의 창설에 참여하였다. 1925년 제1차 조선공산당을 조직하여 국제공산당의 승인을 받았으나 이듬해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광복 후 좌익노선에서 이탈해 중간파 노선을 취했으며, 정부 수립 후 제헌의원과 초대 국회부의장을 지냈다. 1949년 국회프락치사건에 연루되어 수감되었다가, 6·25전쟁으로 출옥하여 월북하였다.
김약수 (金若水)
김약수는 일제강점기 조선노동공제회, 조선노동총동맹 창설에 참여한 노동운동가, 정치인이다. 1890년 부산 출생으로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이다. 1920년 한국 최초의 노동운동단체인 조선노동공제회, 이후 건설사(建設社)와 조선청년총동맹의 창설에 참여하였다. 1925년 제1차 조선공산당을 조직하여 국제공산당의 승인을 받았으나 이듬해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광복 후 좌익노선에서 이탈해 중간파 노선을 취했으며, 정부 수립 후 제헌의원과 초대 국회부의장을 지냈다. 1949년 국회프락치사건에 연루되어 수감되었다가, 6·25전쟁으로 출옥하여 월북하였다.
송봉우는 일제강점기 흑도회, 북성회, 조선공산당 등의 조직에 참여하고, 잡지 『비판』 발행을 주관한 사회주의운동가이자 언론인이며, 독립운동가이다. 1920년대 식민지 조선의 사회주의운동에 주축으로 참여하였다가 제1차 조선공산당 사건 이후 옥고를 치른 후, 잡지 『비판』 발행인으로 활약하여 1940년까지 발행하였다.
송봉우 (宋奉瑀)
송봉우는 일제강점기 흑도회, 북성회, 조선공산당 등의 조직에 참여하고, 잡지 『비판』 발행을 주관한 사회주의운동가이자 언론인이며, 독립운동가이다. 1920년대 식민지 조선의 사회주의운동에 주축으로 참여하였다가 제1차 조선공산당 사건 이후 옥고를 치른 후, 잡지 『비판』 발행인으로 활약하여 1940년까지 발행하였다.
이정윤은 일제강점기 사회주의운동가로, 『전진』을 발행하였고, 북성회에서 활동하였다. 고려공산청년동맹의 책임비서로 사회주의운동 통일을 위해 레닌주의동맹에 참가하였다. 8·15광복 전후 영등포를 거점으로 하는 적기파를 중심으로 노동운동을 전개하였다. 박헌영 중심의 조선공산당 운영에 반대하였다. 조선공산당에서 제명된 후 사회노동당에 참여하였다.
이정윤 (李廷允)
이정윤은 일제강점기 사회주의운동가로, 『전진』을 발행하였고, 북성회에서 활동하였다. 고려공산청년동맹의 책임비서로 사회주의운동 통일을 위해 레닌주의동맹에 참가하였다. 8·15광복 전후 영등포를 거점으로 하는 적기파를 중심으로 노동운동을 전개하였다. 박헌영 중심의 조선공산당 운영에 반대하였다. 조선공산당에서 제명된 후 사회노동당에 참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