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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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헌은 일제강점기 「역사교리착종담」, 「오족당봉유교론」 등을 저술한 유학자이다. 1870년(고종 7)에 출생하여 1940년에 사망하였다. 호는 진암, 백운산인으로, 유교개혁사상가, 공교운동지도자, 금문경학자로 활동하였다. 공교가 보편성, 현실성, 진보성의 현대적 가치가 있음을 강조하고, 향교식 유교가 아닌 교회식 유교의 건설을 주장하였다. 교당을 지어 공자를 섬기고 성경을 번역하여 천하에 배포해야 한다는 등 구체적 포교 방법까지 제시하였다. 이병헌의 공교 운동은 유림들의 강경한 항의에 부딪혀 실패하였다. 1926년 이후로는 공교 사상의 경학적 기초를 정비하는 데 힘썼다.
이병헌 (李炳憲)
이병헌은 일제강점기 「역사교리착종담」, 「오족당봉유교론」 등을 저술한 유학자이다. 1870년(고종 7)에 출생하여 1940년에 사망하였다. 호는 진암, 백운산인으로, 유교개혁사상가, 공교운동지도자, 금문경학자로 활동하였다. 공교가 보편성, 현실성, 진보성의 현대적 가치가 있음을 강조하고, 향교식 유교가 아닌 교회식 유교의 건설을 주장하였다. 교당을 지어 공자를 섬기고 성경을 번역하여 천하에 배포해야 한다는 등 구체적 포교 방법까지 제시하였다. 이병헌의 공교 운동은 유림들의 강경한 항의에 부딪혀 실패하였다. 1926년 이후로는 공교 사상의 경학적 기초를 정비하는 데 힘썼다.
이흘은 조선 후기, 조식 학문인 남명학의 중심지인 삼가(三嘉)〔지금의 경남 합천〕에서 활동하던 문인 학자이다. 죽정(竹亭)과 비암서당(鼻巖書堂) 등을 세워 제자 교육에 힘썼다. 조식의 위패를 봉안한 용암서원(龍巖書院) 원장을 지냈다. 정인홍과 입재(立齋) 노흠(盧欽, 1527~1601)의 다음 세대에서 남명학파를 이끌면서 임곡(林谷) 임진부(林眞怤, 1586-1657)와 창주(滄洲) 허돈(許燉, 1586-1632) 등 다음 세대로 남명학을 계승하게 하였다.
이흘 (李屹)
이흘은 조선 후기, 조식 학문인 남명학의 중심지인 삼가(三嘉)〔지금의 경남 합천〕에서 활동하던 문인 학자이다. 죽정(竹亭)과 비암서당(鼻巖書堂) 등을 세워 제자 교육에 힘썼다. 조식의 위패를 봉안한 용암서원(龍巖書院) 원장을 지냈다. 정인홍과 입재(立齋) 노흠(盧欽, 1527~1601)의 다음 세대에서 남명학파를 이끌면서 임곡(林谷) 임진부(林眞怤, 1586-1657)와 창주(滄洲) 허돈(許燉, 1586-1632) 등 다음 세대로 남명학을 계승하게 하였다.
노순은 조선 후기 조식의 문인으로, 임진왜란 때 박사제, 허자대 등과 함께 군사 800여 명을 모아 창의하였다. 그 뒤 의령에서 창의한 곽재우 부대에 합류하여, 곽재우의 휘하에서 군량을 보급하는 임무를 담당하였다. 1595년 영변 부사에 제수되었으나, 45세로 사망하였다.
노순 (盧錞)
노순은 조선 후기 조식의 문인으로, 임진왜란 때 박사제, 허자대 등과 함께 군사 800여 명을 모아 창의하였다. 그 뒤 의령에서 창의한 곽재우 부대에 합류하여, 곽재우의 휘하에서 군량을 보급하는 임무를 담당하였다. 1595년 영변 부사에 제수되었으나, 45세로 사망하였다.
「속소악부」는 조선 후기에 이유승이 지은 악부시이다. 이유승과 원세순이 편찬한 『삼가악부』에 모두 10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전한다. 「속소악부」의 형식은 대부분 칠언 절구로, 여타의 소악부와 마찬가지로 늙음에 대한 탄식 · 사랑과 이별 · 전원생활의 기쁨 등을 제재로 삼고 있다.
속소악부 (續小樂府)
「속소악부」는 조선 후기에 이유승이 지은 악부시이다. 이유승과 원세순이 편찬한 『삼가악부』에 모두 10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전한다. 「속소악부」의 형식은 대부분 칠언 절구로, 여타의 소악부와 마찬가지로 늙음에 대한 탄식 · 사랑과 이별 · 전원생활의 기쁨 등을 제재로 삼고 있다.
경상남도 합천군 합천읍 합천리에 있는 공립종합고등학교.
합천고등학교 (陜川高等學校)
경상남도 합천군 합천읍 합천리에 있는 공립종합고등학교.
경상남도 합천군 합천읍 합천리에 있는 공립중학교.
합천중학교 (陜川中學校)
경상남도 합천군 합천읍 합천리에 있는 공립중학교.
경상남도 합천군 삼가면에 있는 삼국시대 가야의 구덩식돌덧널무덤·굴식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합천 소오리 고분군 (陜川 巢梧里 古墳郡)
경상남도 합천군 삼가면에 있는 삼국시대 가야의 구덩식돌덧널무덤·굴식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합천일부리고분군(陜川一部里古墳群)은 경상남도 합천군 삼가면에 있는 원삼국시대 널무덤, 삼국시대 덧널무덤 및 돌덧널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이다. 삼가고분군과 바로 인접하며, 일부 지역은 2018년 10월 11일 ‘도기념물 확대 지정’에 의해 삼가고분군에 편입되었다. 대형 봉토분은 분포하지 않지만 삼국시대 덧널무덤과 돌덧널무덤이 다수 조사되어 삼가고분군과 함께 합천 지역 가야 문화를 규명하는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합천 일부리 고분군 (陜川 一部里 古墳群)
합천일부리고분군(陜川一部里古墳群)은 경상남도 합천군 삼가면에 있는 원삼국시대 널무덤, 삼국시대 덧널무덤 및 돌덧널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이다. 삼가고분군과 바로 인접하며, 일부 지역은 2018년 10월 11일 ‘도기념물 확대 지정’에 의해 삼가고분군에 편입되었다. 대형 봉토분은 분포하지 않지만 삼국시대 덧널무덤과 돌덧널무덤이 다수 조사되어 삼가고분군과 함께 합천 지역 가야 문화를 규명하는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경상남도 합천군 삼가면 소오리에 있는 공립초등학교.
삼가초등학교 (三嘉初等學校)
경상남도 합천군 삼가면 소오리에 있는 공립초등학교.
김기범은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합천군 삼가면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를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산청군 생비량면 출신으로 1919년 3월 23일 합천군 삼가면 장날 만세시위에 생비량면 주민들을 이끌고 참가하였다. 삼가 시위는 3월 18일 400명의 1차 시위에 이어, 3월 23일 합천군 쌍백면 · 가회면 · 삼가면, 산청군 생비량면 등이 연합하여 2차로 1만 3,000명의 대규모 만세시위로 전개되었다. 김기범은 만세시위에 앞장서다가 일경의 총격으로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김기범 (金箕範)
김기범은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합천군 삼가면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를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산청군 생비량면 출신으로 1919년 3월 23일 합천군 삼가면 장날 만세시위에 생비량면 주민들을 이끌고 참가하였다. 삼가 시위는 3월 18일 400명의 1차 시위에 이어, 3월 23일 합천군 쌍백면 · 가회면 · 삼가면, 산청군 생비량면 등이 연합하여 2차로 1만 3,000명의 대규모 만세시위로 전개되었다. 김기범은 만세시위에 앞장서다가 일경의 총격으로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공재규는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합천군 삼가면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18일, 삼가 장터에서 1차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3월 23일 합천군 쌍백면 주민 4,000여 명과 함께 쌍백면사무소를 방화한 후, 삼가 장터의 합천군 쌍백면 · 가회면 · 삼가면, 산청군 생비량면 등 1만 3000여 명의 연합 시위에 참여하였다. 일본 경찰의 총격에 항의하며 시위대에 앞장서다가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공재규 (孔在奎)
공재규는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합천군 삼가면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18일, 삼가 장터에서 1차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3월 23일 합천군 쌍백면 주민 4,000여 명과 함께 쌍백면사무소를 방화한 후, 삼가 장터의 합천군 쌍백면 · 가회면 · 삼가면, 산청군 생비량면 등 1만 3000여 명의 연합 시위에 참여하였다. 일본 경찰의 총격에 항의하며 시위대에 앞장서다가 현장에서 순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