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서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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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무계는 1910년대 서간도와 북간도에 유림들이 조직하였던 사회 단체이다. 1910년 의병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서간도 농무계는 3·1운동 이후 대한독립단에 흡수되었다. 1913년 유림들이 조직한 북간도 농무계는 간민회와 대립, 갈등하다 1914년 해산되었다.
농무계 (農務契)
농무계는 1910년대 서간도와 북간도에 유림들이 조직하였던 사회 단체이다. 1910년 의병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서간도 농무계는 3·1운동 이후 대한독립단에 흡수되었다. 1913년 유림들이 조직한 북간도 농무계는 간민회와 대립, 갈등하다 1914년 해산되었다.
광복군사령부는 1920년 대한민국임시정부 군무부에서 대한청년단연합회, 민국독립단 그리고 국내의 의용단을 통합하여 설치하려 한 서간도 지방사령부이다. 대한청년단연합회, 민국독립단 그리고 국내의 의용단을 통합하여 설치하려 하였으며, 서간도에서 조직된 광복군총영으로 개편되었다.
광복군사령부 (光復軍司令部)
광복군사령부는 1920년 대한민국임시정부 군무부에서 대한청년단연합회, 민국독립단 그리고 국내의 의용단을 통합하여 설치하려 한 서간도 지방사령부이다. 대한청년단연합회, 민국독립단 그리고 국내의 의용단을 통합하여 설치하려 하였으며, 서간도에서 조직된 광복군총영으로 개편되었다.
광복군총영은 1920년 서간도 안동현에서 조직된 대한민국임시정부 군무부 산하의 지방사령부이다. 광복단을 중심으로 민국독립단과 통합하여 조직되었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서간도에 설치하려 한 광복군사령부와는 설립 주체가 다르다. 광복군사령부가 조직되기에 앞서 광복군총영이 이미 조직되어 있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서간도 지방사령부는 광복군총영이 담당하였다.
광복군총영 (光復軍總營)
광복군총영은 1920년 서간도 안동현에서 조직된 대한민국임시정부 군무부 산하의 지방사령부이다. 광복단을 중심으로 민국독립단과 통합하여 조직되었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서간도에 설치하려 한 광복군사령부와는 설립 주체가 다르다. 광복군사령부가 조직되기에 앞서 광복군총영이 이미 조직되어 있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서간도 지방사령부는 광복군총영이 담당하였다.
서로군정서는 1919년 만주에서 조직되었던 독립군정부이다. 서간도의 무장 항일 운동 단체가 결성한 군정부(軍政府)로 남만주 일대 독립 운동 총본영이었다. 신흥중학교를 무관학교로 개편하여 독립군 간부를 양성하고 소속 독립군을 편성하였다. 일제 식민통치기관 파괴 및 민족반역자의 색출·처단, 친일 기관들을 소탕하였다. 한족 회원의 헌금으로 유지되었는데 국내에 재정 후원을 위한 조선독립 후원 의용단과 같은 비밀 결사가 조직되었다. 1922년 효과적인 항일 투쟁을 전개하기 위해 조직된 대한통군부(大韓統軍府)로 통합되었다.
서로군정서 (西路軍政署)
서로군정서는 1919년 만주에서 조직되었던 독립군정부이다. 서간도의 무장 항일 운동 단체가 결성한 군정부(軍政府)로 남만주 일대 독립 운동 총본영이었다. 신흥중학교를 무관학교로 개편하여 독립군 간부를 양성하고 소속 독립군을 편성하였다. 일제 식민통치기관 파괴 및 민족반역자의 색출·처단, 친일 기관들을 소탕하였다. 한족 회원의 헌금으로 유지되었는데 국내에 재정 후원을 위한 조선독립 후원 의용단과 같은 비밀 결사가 조직되었다. 1922년 효과적인 항일 투쟁을 전개하기 위해 조직된 대한통군부(大韓統軍府)로 통합되었다.
1910년 11월 안명근(安明根)이 서간도(西間島)에 무관학교를 설립하기 위한 자금을 모집하다가 황해도 신천지방에서 관련 인사 160명과 함께 검거된 사건.
안악사건 (安岳事件)
1910년 11월 안명근(安明根)이 서간도(西間島)에 무관학교를 설립하기 위한 자금을 모집하다가 황해도 신천지방에서 관련 인사 160명과 함께 검거된 사건.
한족회는 1919년 서간도(西間島)에서 조직된 독립운동단체이다. 서간도의 자치기관인 부민단(扶民團)이 제1차 세계대전 종결과 3 · 1운동으로 변화된 시대 상황에 따라 교육회(敎育會), 자신계(自新契)와 통합하여 확대, 개편하였다.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를 기반으로 독립군단을 편성하고 군비 확충과 군사 훈련에 힘썼다.
한족회 (韓族會)
한족회는 1919년 서간도(西間島)에서 조직된 독립운동단체이다. 서간도의 자치기관인 부민단(扶民團)이 제1차 세계대전 종결과 3 · 1운동으로 변화된 시대 상황에 따라 교육회(敎育會), 자신계(自新契)와 통합하여 확대, 개편하였다.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를 기반으로 독립군단을 편성하고 군비 확충과 군사 훈련에 힘썼다.
향약단(鄕約團)은 1919년 서간도(西間島)에서 망명 유림들이 조직한 항일독립운동단체이다. 화서학파(華西學派) 출신의 유림들이 조직하였으며, 전통적인 향약(鄕約) 활동과 무장투쟁단체의 성격을 지녔다. 정치적으로는 복벽주의(復辟主義)를 주장하였으며, 이후 대한통군부(大韓統軍府)의 결성에 참여하였다.
향약단 (鄕約團)
향약단(鄕約團)은 1919년 서간도(西間島)에서 망명 유림들이 조직한 항일독립운동단체이다. 화서학파(華西學派) 출신의 유림들이 조직하였으며, 전통적인 향약(鄕約) 활동과 무장투쟁단체의 성격을 지녔다. 정치적으로는 복벽주의(復辟主義)를 주장하였으며, 이후 대한통군부(大韓統軍府)의 결성에 참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