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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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주는 고려후기 문하찬성사, 예문관제학, 인물추변도감제조관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1337년(충숙왕 복위 6)에 태어나 1392년(공양왕 4)에 사망했다. 고려말 친원파가 득세하던 상황에서 신진사류로서 친명정책을 주장했고, 명와 왜에 직접 사절로 가는 등 담대한 외교가로서 활약했다. 성균관의 사성으로서 신진 사류를 양성하는 데도 크게 기여했다. 기울어가는 고려 국운을 바로잡고자 국가기강 정비와 민생 안정에 노력했다. 이성계의 위세와 명망이 날로 높아지고 그를 추대하려는 움직임이 있자 이들을 제거하려다가 역으로 살해당했다.
정몽주 (鄭夢周)
정몽주는 고려후기 문하찬성사, 예문관제학, 인물추변도감제조관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1337년(충숙왕 복위 6)에 태어나 1392년(공양왕 4)에 사망했다. 고려말 친원파가 득세하던 상황에서 신진사류로서 친명정책을 주장했고, 명와 왜에 직접 사절로 가는 등 담대한 외교가로서 활약했다. 성균관의 사성으로서 신진 사류를 양성하는 데도 크게 기여했다. 기울어가는 고려 국운을 바로잡고자 국가기강 정비와 민생 안정에 노력했다. 이성계의 위세와 명망이 날로 높아지고 그를 추대하려는 움직임이 있자 이들을 제거하려다가 역으로 살해당했다.
조선은 1392년부터 1910년까지 518년간 한반도에 존재한 왕조 국가이다. 국왕의 밑에서 양반관료들이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갖추어 정치를 행하였다. 농업경제를 중심으로 하는 자연경제체계가 강하였고, 양반 중심 세습신분제 사회였으나,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속에 신분제는 차츰 이완되어 갔다. 유교 문화의 위세가 계속 강해지는 가운데 서민과 여성들은 고유성을 강인하게 지켜 나갔다.
조선 (朝鮮)
조선은 1392년부터 1910년까지 518년간 한반도에 존재한 왕조 국가이다. 국왕의 밑에서 양반관료들이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갖추어 정치를 행하였다. 농업경제를 중심으로 하는 자연경제체계가 강하였고, 양반 중심 세습신분제 사회였으나,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속에 신분제는 차츰 이완되어 갔다. 유교 문화의 위세가 계속 강해지는 가운데 서민과 여성들은 고유성을 강인하게 지켜 나갔다.
이이는 조선전기 「동호문답」, 「인심도심설」, 『성학집요』 등을 저술한 학자이자 문신이다. 1536년(중종 31)에 태어나 1584년(선조 17)에 사망했다. 19세 때 금강산에 들어가 불교를 공부하기도 했으나 20세에 하산해 유학에 전념했다. 이후 총 9번의 과거에 모두 장원급제하여 구도장원공이라 불렸다. 1568년 천추사의 서장관으로 명에 다녀왔고, 1583년 병조판서가 되어 선조에게 시무육조와 십만양병설 등 개혁안을 올렸다.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도 힘썼으며 주자학의 핵심을 간추린 『성학집요』 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이이 (李珥)
이이는 조선전기 「동호문답」, 「인심도심설」, 『성학집요』 등을 저술한 학자이자 문신이다. 1536년(중종 31)에 태어나 1584년(선조 17)에 사망했다. 19세 때 금강산에 들어가 불교를 공부하기도 했으나 20세에 하산해 유학에 전념했다. 이후 총 9번의 과거에 모두 장원급제하여 구도장원공이라 불렸다. 1568년 천추사의 서장관으로 명에 다녀왔고, 1583년 병조판서가 되어 선조에게 시무육조와 십만양병설 등 개혁안을 올렸다.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도 힘썼으며 주자학의 핵심을 간추린 『성학집요』 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이색은 고려후기 대사성, 정당문학, 판삼사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1328년(충숙왕 15)에 태어나 1396년(태조 5)에 사망했다. 1352년(공민 1) 전제개혁, 국방계획, 교육진흥, 불교억제 등 시정개혁에 관한 건의문을 올렸다. 고려의 향시와 원나라의 과거에 모두 합격하고 관료의 길을 걸었다. 성균관 대사성으로서 신유학의 보급과 발전에 공헌하여 조선 초 성리학 부흥의 길을 열었다. 위화도회군으로 우왕이 쫓겨나자 조민수와 함께 창왕을 옹립하고 이성계 세력과 맞섰다. 조선 건국 후 이성계의 출사 종용을 끝내 고사했다.
이색 (李穡)
이색은 고려후기 대사성, 정당문학, 판삼사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1328년(충숙왕 15)에 태어나 1396년(태조 5)에 사망했다. 1352년(공민 1) 전제개혁, 국방계획, 교육진흥, 불교억제 등 시정개혁에 관한 건의문을 올렸다. 고려의 향시와 원나라의 과거에 모두 합격하고 관료의 길을 걸었다. 성균관 대사성으로서 신유학의 보급과 발전에 공헌하여 조선 초 성리학 부흥의 길을 열었다. 위화도회군으로 우왕이 쫓겨나자 조민수와 함께 창왕을 옹립하고 이성계 세력과 맞섰다. 조선 건국 후 이성계의 출사 종용을 끝내 고사했다.
김성일은 조선시대 통신부사, 경상우도병마절도사, 경상우도순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1538년(중종 33)에 태어나 1593년(선조 26)에 사망했다. 1574년 사가독서했고 1577년 사은사 서장관으로 명에 다녀왔다. 1590년 통신부사로 일본을 다녀와서 일본이 침입하지 않을 것이라 한 보고로 인해 임진왜란 발발 후 파직되었다. 이후 복직되어 왜군에 대한 항전을 독려하다 병으로 사망했다. 이황의 수제자로 성리학에 조예가 깊어, 『주자서절요』·『자성록』·『퇴계집』 등을 편집·간행했다. 정치적으로는 유성룡·김우옹 등과 남인을 이루었다.
김성일 (金誠一)
김성일은 조선시대 통신부사, 경상우도병마절도사, 경상우도순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1538년(중종 33)에 태어나 1593년(선조 26)에 사망했다. 1574년 사가독서했고 1577년 사은사 서장관으로 명에 다녀왔다. 1590년 통신부사로 일본을 다녀와서 일본이 침입하지 않을 것이라 한 보고로 인해 임진왜란 발발 후 파직되었다. 이후 복직되어 왜군에 대한 항전을 독려하다 병으로 사망했다. 이황의 수제자로 성리학에 조예가 깊어, 『주자서절요』·『자성록』·『퇴계집』 등을 편집·간행했다. 정치적으로는 유성룡·김우옹 등과 남인을 이루었다.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에 위치한 서원.
영주 소수서원 (榮州 紹修書院)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에 위치한 서원.
이제현은 고려후기 정당문학, 판삼사사, 정승 등을 역임한 문신·학자·문인이다. 1287년(충렬왕 13)에 태어나 1367년(공민왕 16)에 사망했다. 1314년(충숙왕 1) 상왕 충선왕의 부름을 받고 연경의 만권당에 머물면서 원의 유명한 학자·문인들과 교유하고 중국 내륙 여행을 하며 학문과 식견을 넓혔다. 관료로서 고려가 원의 부마국이라는 현실을 인정하고 그 한계 안에서 국가의 존립과 사회모순의 시정을 위해 노력했다. 성리학 도입에 공이 컸고, 『익재집』을 남겼으며 시·사에 뛰어나 고려 한문학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제현 (李齊賢)
이제현은 고려후기 정당문학, 판삼사사, 정승 등을 역임한 문신·학자·문인이다. 1287년(충렬왕 13)에 태어나 1367년(공민왕 16)에 사망했다. 1314년(충숙왕 1) 상왕 충선왕의 부름을 받고 연경의 만권당에 머물면서 원의 유명한 학자·문인들과 교유하고 중국 내륙 여행을 하며 학문과 식견을 넓혔다. 관료로서 고려가 원의 부마국이라는 현실을 인정하고 그 한계 안에서 국가의 존립과 사회모순의 시정을 위해 노력했다. 성리학 도입에 공이 컸고, 『익재집』을 남겼으며 시·사에 뛰어나 고려 한문학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언적은 조선전기 예조판서, 형조판서, 좌찬성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1491년(성종 22)에 태어나 1553년(명종 8)에 사망했다. 김안로의 등용을 반대하다가 관직에서 쫓겨나 7년간 성리학 연구에 전념했다. 복직 후 좌찬성에 이르렀으나 을사사화가 발생하여 추국하는 역할이 주어지자 스스로 관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양재역벽서사건에 무고하게 연루되어 유배됐고 유배지에서 많은 저술을 남긴 후 세상을 떴다. 조선시대 성리학의 방향과 성격을 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고, 주희의 주리론적 입장을 정통으로 확립하여 이황에게 전해준 인물이다.
이언적 (李彦迪)
이언적은 조선전기 예조판서, 형조판서, 좌찬성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1491년(성종 22)에 태어나 1553년(명종 8)에 사망했다. 김안로의 등용을 반대하다가 관직에서 쫓겨나 7년간 성리학 연구에 전념했다. 복직 후 좌찬성에 이르렀으나 을사사화가 발생하여 추국하는 역할이 주어지자 스스로 관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양재역벽서사건에 무고하게 연루되어 유배됐고 유배지에서 많은 저술을 남긴 후 세상을 떴다. 조선시대 성리학의 방향과 성격을 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고, 주희의 주리론적 입장을 정통으로 확립하여 이황에게 전해준 인물이다.
서경덕은 조선전기 『화담집』을 저술한 학자이다. 1489년(성종 20)에 태어나 1546년(명종 1)에 사망했다. 1519년 현량과에 추천을 받았으나 사양하고 개성 화담에 서재를 세우고 연구와 교육에 힘썼다. 이후 어머니의 요청으로 생원시에 응시하여 장원 급제했으나 벼슬을 단념했다. 이보다 기를 중시하는 독자적인 기일원론을 완성하여 주기론의 선구자가 되었다. 인간의 죽음도 우주의 기에 환원된다는 사생일여를 주장하여 불교의 인간생명 적멸론을 배격했다. 황진이의 유혹을 물리친 일화가 전해지며, 박연폭포·황진이와 함께 송도삼절로 불린다.
서경덕 (徐敬德)
서경덕은 조선전기 『화담집』을 저술한 학자이다. 1489년(성종 20)에 태어나 1546년(명종 1)에 사망했다. 1519년 현량과에 추천을 받았으나 사양하고 개성 화담에 서재를 세우고 연구와 교육에 힘썼다. 이후 어머니의 요청으로 생원시에 응시하여 장원 급제했으나 벼슬을 단념했다. 이보다 기를 중시하는 독자적인 기일원론을 완성하여 주기론의 선구자가 되었다. 인간의 죽음도 우주의 기에 환원된다는 사생일여를 주장하여 불교의 인간생명 적멸론을 배격했다. 황진이의 유혹을 물리친 일화가 전해지며, 박연폭포·황진이와 함께 송도삼절로 불린다.
대대로 내려오는 그 집안의 사회적 신분이나 지위.
문벌 (門閥)
대대로 내려오는 그 집안의 사회적 신분이나 지위.
안향은 고려후기 제25대 충렬왕 때 원나라에서 성리학을 도입한 문신이다. 1243년(고종 30)에 태어나 1306년(충렬왕 32)에 사망했다. 1260년(원종 1)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진출했다. 무신집권과 원의 간섭 등 국내외적 위기를 해결할 대안으로 주자학을 생각하고 1289년 왕을 호종하여 원에 가서 주자서를 손수 베끼고 주자의 화상을 그려왔다. 이어 공자 사당인 문묘 설치를 위한 준비와 인재양성을 위한 재정적 기반으로 섬학전 설치를 주도했다. 1542년(중종 37)에 풍기군수 주세붕이 사우와 백운동서원을 세워 그를 기렸다.
안향 (安珦)
안향은 고려후기 제25대 충렬왕 때 원나라에서 성리학을 도입한 문신이다. 1243년(고종 30)에 태어나 1306년(충렬왕 32)에 사망했다. 1260년(원종 1)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진출했다. 무신집권과 원의 간섭 등 국내외적 위기를 해결할 대안으로 주자학을 생각하고 1289년 왕을 호종하여 원에 가서 주자서를 손수 베끼고 주자의 화상을 그려왔다. 이어 공자 사당인 문묘 설치를 위한 준비와 인재양성을 위한 재정적 기반으로 섬학전 설치를 주도했다. 1542년(중종 37)에 풍기군수 주세붕이 사우와 백운동서원을 세워 그를 기렸다.
김종직은 조선전기 병조참판, 홍문관제학, 공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1431년(세종 13)에 태어나 1492년(성종 23)에 사망했다. 정몽주와 길재의 학통을 계승하여 김굉필-조광조로 이어지는 조선시대 도학 정통의 중추적 역할을 했다. 세조의 왕위찬탈을 풍자해 지은 「조의제문」이 무오사화가 일어나는 원인이 되어 사후에 부관참시되었다가 중종반정으로 신원되었다. 화려한 문장보다는 정의를 숭상하고, 시비를 분명히 밝히려는 의리를 중요하게 여겼다. 문장에 뛰어나 『점필재집(佔畢齋集)』을 비롯한 많은 시문과 일기를 남겼다.
김종직 (金宗直)
김종직은 조선전기 병조참판, 홍문관제학, 공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1431년(세종 13)에 태어나 1492년(성종 23)에 사망했다. 정몽주와 길재의 학통을 계승하여 김굉필-조광조로 이어지는 조선시대 도학 정통의 중추적 역할을 했다. 세조의 왕위찬탈을 풍자해 지은 「조의제문」이 무오사화가 일어나는 원인이 되어 사후에 부관참시되었다가 중종반정으로 신원되었다. 화려한 문장보다는 정의를 숭상하고, 시비를 분명히 밝히려는 의리를 중요하게 여겼다. 문장에 뛰어나 『점필재집(佔畢齋集)』을 비롯한 많은 시문과 일기를 남겼다.
모든 중생을 교화하고, 번뇌를 끊고, 법문을 배워 최상의 불도를 이루겠다는 4가지 서원을 가리키는 불교교리. 총원.
사홍서원 (四弘誓願)
모든 중생을 교화하고, 번뇌를 끊고, 법문을 배워 최상의 불도를 이루겠다는 4가지 서원을 가리키는 불교교리. 총원.
조선후기 『옥계아집첩』, 『풍요속선』 등을 저술한 학자. 시인.
천수경 (千壽慶)
조선후기 『옥계아집첩』, 『풍요속선』 등을 저술한 학자. 시인.
조선 전기에, 우부승지, 형조참의, 좌부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이정 (李楨)
조선 전기에, 우부승지, 형조참의, 좌부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길재는 조선전기 『야은집』, 『야은속집』, 『야은언행습유록』 등을 저술한 학자이다. 1353년(공민왕 2)에 태어나 1419년(세종 1)에 사망했다. 이색·정몽주와 함께 고려의 삼은으로 불린다. 과거에 급제했지만 태학에서 생도들을 가르치는 직만 맡다가, 고려가 망할 조짐을 보이자 노모를 모셔야 한다는 핑계로 벼슬을 버리고 고향인 선산으로 돌아갔다. 조선왕조가 들어서서도 두 왕을 섬기지 않는다는 글을 올려 자세를 흩트리지 않았고, 경전 토론과 성리학 강해, 후학 교육에만 힘썼다. 그의 학통은 김종직·김굉필·정여창·조광조로 이어졌다.
길재 (吉再)
길재는 조선전기 『야은집』, 『야은속집』, 『야은언행습유록』 등을 저술한 학자이다. 1353년(공민왕 2)에 태어나 1419년(세종 1)에 사망했다. 이색·정몽주와 함께 고려의 삼은으로 불린다. 과거에 급제했지만 태학에서 생도들을 가르치는 직만 맡다가, 고려가 망할 조짐을 보이자 노모를 모셔야 한다는 핑계로 벼슬을 버리고 고향인 선산으로 돌아갔다. 조선왕조가 들어서서도 두 왕을 섬기지 않는다는 글을 올려 자세를 흩트리지 않았고, 경전 토론과 성리학 강해, 후학 교육에만 힘썼다. 그의 학통은 김종직·김굉필·정여창·조광조로 이어졌다.
이수광은 조선시대 공조참판, 대사헌, 이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1563년(명종 18)에 태어나 1628년(인조 6)에 사망했다. 세 차례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고 인조반정 후 고위직을 지내며 시무책 12조를 올렸다. 임진왜란·정묘호란·광해군 재위기의 정치적 갈등 같은 어려운 정국에도 당쟁에 휩쓸리지 않았다. 1614년(광해군 6)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인 『지봉유설』을 편찬하면서 서양문물과 『천주실의』 등 천주교 교리를 처음으로 소개했다. 조선후기 실학파의 선구적 인물로, 사상사·철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가진다.
이수광 (李睟光)
이수광은 조선시대 공조참판, 대사헌, 이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1563년(명종 18)에 태어나 1628년(인조 6)에 사망했다. 세 차례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고 인조반정 후 고위직을 지내며 시무책 12조를 올렸다. 임진왜란·정묘호란·광해군 재위기의 정치적 갈등 같은 어려운 정국에도 당쟁에 휩쓸리지 않았다. 1614년(광해군 6)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인 『지봉유설』을 편찬하면서 서양문물과 『천주실의』 등 천주교 교리를 처음으로 소개했다. 조선후기 실학파의 선구적 인물로, 사상사·철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가진다.
향전은 조선 후기 향촌 사회에서 정치 · 사회 · 경제적 이해관계를 둘러싸고 발생한 분쟁이다. 시기와 지역 특성에 따라 전개 양상이 달랐는데, 18세기 전후 정치 · 사회 · 경제적 변화로 사족 내부 분열과 하층민의 도전이 심화되었다. 주체별로 사족 및 이향 간, 적서 및 신 · 구향 간, 사족과 수령의 대립 등으로 구분된다. 내용별로 향안 입록과 향임의 선임, 서원 · 사우의 배향 · 추향 및 위패의 서차, 학통과 사우 연원, 문집 간행과 문자상의 시비, 전답 · 묘산, 제언과 보, 속사의 축조 및 사용권 문제 등이 확인된다.
향전 (鄕戰)
향전은 조선 후기 향촌 사회에서 정치 · 사회 · 경제적 이해관계를 둘러싸고 발생한 분쟁이다. 시기와 지역 특성에 따라 전개 양상이 달랐는데, 18세기 전후 정치 · 사회 · 경제적 변화로 사족 내부 분열과 하층민의 도전이 심화되었다. 주체별로 사족 및 이향 간, 적서 및 신 · 구향 간, 사족과 수령의 대립 등으로 구분된다. 내용별로 향안 입록과 향임의 선임, 서원 · 사우의 배향 · 추향 및 위패의 서차, 학통과 사우 연원, 문집 간행과 문자상의 시비, 전답 · 묘산, 제언과 보, 속사의 축조 및 사용권 문제 등이 확인된다.
사림파는 조선 전기 산림에 묻혀 유학 연구에 힘쓰던 문인들이 훈구파와 대립하면서 중앙 정치에 진출해 지배층이 됐다고 평가된 세력이다. 사림파는 조선 성종 때부터 중앙정부에 진출하여 종래의 관료들인 훈구파를 비판하여 사화에 희생되기도 하였으나, 선조 때에 이르러서 그 기반을 확고히 하였다.
사림파 (士林派)
사림파는 조선 전기 산림에 묻혀 유학 연구에 힘쓰던 문인들이 훈구파와 대립하면서 중앙 정치에 진출해 지배층이 됐다고 평가된 세력이다. 사림파는 조선 성종 때부터 중앙정부에 진출하여 종래의 관료들인 훈구파를 비판하여 사화에 희생되기도 하였으나, 선조 때에 이르러서 그 기반을 확고히 하였다.
조선 전기에, 인순부윤, 평안도관찰사, 판중추원사 등을 역임한 문신.
기건 (奇虔)
조선 전기에, 인순부윤, 평안도관찰사, 판중추원사 등을 역임한 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