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성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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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고구려 건국 초기 오이, 협보와 함께 많은 공적을 세운 관리. 공로자.
마리 (摩離)
삼국시대 고구려 건국 초기 오이, 협보와 함께 많은 공적을 세운 관리. 공로자.
노객은 고구려 왕이 백제나 신라 왕을 칭하거나 고구려 신하가 왕을 높이기 위해 자신을 낮추어 부른 호칭이다. 「광개토왕비문」, 「모두루묘지」, 「충주고구려비」에 나온다. 광개토왕비문과 충주고구려비에 나온 노객은 백제 왕과 신라 왕을 뜻한다. 모두루묘지에 나온 노객은 고구려의 관료인 모두루가 왕에 대해 자신을 낮춰 표현한 것이다. 노객은 본래 속민이나 노예를 뜻하지만 고구려에서는 신하라는 의미로 쓰였다. 고구려가 주변국에 비해 우월하다는 의식 곧, 고구려적 천하관에 따라 사용된 것이다.
노객 (奴客)
노객은 고구려 왕이 백제나 신라 왕을 칭하거나 고구려 신하가 왕을 높이기 위해 자신을 낮추어 부른 호칭이다. 「광개토왕비문」, 「모두루묘지」, 「충주고구려비」에 나온다. 광개토왕비문과 충주고구려비에 나온 노객은 백제 왕과 신라 왕을 뜻한다. 모두루묘지에 나온 노객은 고구려의 관료인 모두루가 왕에 대해 자신을 낮춰 표현한 것이다. 노객은 본래 속민이나 노예를 뜻하지만 고구려에서는 신하라는 의미로 쓰였다. 고구려가 주변국에 비해 우월하다는 의식 곧, 고구려적 천하관에 따라 사용된 것이다.
삼국시대 백제의 달솔로서 일본에 불교를 전수한 귀족.
노리사치계 (怒利斯致契)
삼국시대 백제의 달솔로서 일본에 불교를 전수한 귀족.
공주 공산성은 충남 공주시 산성동에 있는 백제 웅진기의 왕성(王城)이다. 그래서 당시에는 웅진성(熊津城)이라 불렀다. 성벽은 현재 동벽 일부가 토성이고 나머지는 석성으로 되어 있는데, 그에 따라 백제 때에는 토성으로 축조하였다가 조선시대 때 석성으로 개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웅진기에는 왕성이고, 사비기에는 북방성(北方城)이었으며, 통일신라 때는 웅천주(熊川州)의 치소성이기도 했다. 임진왜란 이후 충청 감영(監營)이 충주에서 공주로 옮겨질 때 감영이 성내에 있었고, 인조 임금이 이괄의 난을 피해 이곳으로 피신하기도 하였다.
공주 공산성 (公州 公山城)
공주 공산성은 충남 공주시 산성동에 있는 백제 웅진기의 왕성(王城)이다. 그래서 당시에는 웅진성(熊津城)이라 불렀다. 성벽은 현재 동벽 일부가 토성이고 나머지는 석성으로 되어 있는데, 그에 따라 백제 때에는 토성으로 축조하였다가 조선시대 때 석성으로 개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웅진기에는 왕성이고, 사비기에는 북방성(北方城)이었으며, 통일신라 때는 웅천주(熊川州)의 치소성이기도 했다. 임진왜란 이후 충청 감영(監營)이 충주에서 공주로 옮겨질 때 감영이 성내에 있었고, 인조 임금이 이괄의 난을 피해 이곳으로 피신하기도 하였다.
삼국시대 백제의 관부.
법부 (法部)
삼국시대 백제의 관부.
신라 진흥왕대에 백제와의 전쟁에서 활약한 삼년산군(지금의 충청북도 보은) 출신의 지방 유력자이다. 554년 백제가 신라를 정벌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관산성(지금의 충청북도 옥천) 전투 때 백제의 성왕을 붙잡아 참살함으로써 신라군이 대승을 거두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도도 (都刀)
신라 진흥왕대에 백제와의 전쟁에서 활약한 삼년산군(지금의 충청북도 보은) 출신의 지방 유력자이다. 554년 백제가 신라를 정벌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관산성(지금의 충청북도 옥천) 전투 때 백제의 성왕을 붙잡아 참살함으로써 신라군이 대승을 거두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관산성전투는 554년에 관산성에서 백제와 신라가 싸워 백제가 대패한 전투이다. 관산성은 지금의 충청북도 옥천이다. 이 전투는 고구려의 정치적 혼란을 계기로 백제, 신라, 가야가 연합하여 한강 유역을 공격한 데서 시작되었다. 이 결과 백제는 한강 하류를, 신라는 한강 상류를 자치하였다. 그러나 신라 진흥왕은 백제가 차지한 한강 하류 지역을 공격하여 점령하였다. 이것이 직접적인 동기가 되어 관산성에서 전투가 일어났다. 성왕이 신라의 기습공격으로 전사하며 패배하였다. 이후 나제동맹이 완전히 깨져 양국은 적대관계가 지속되었다.
관산성전투 (管山城戰鬪)
관산성전투는 554년에 관산성에서 백제와 신라가 싸워 백제가 대패한 전투이다. 관산성은 지금의 충청북도 옥천이다. 이 전투는 고구려의 정치적 혼란을 계기로 백제, 신라, 가야가 연합하여 한강 유역을 공격한 데서 시작되었다. 이 결과 백제는 한강 하류를, 신라는 한강 상류를 자치하였다. 그러나 신라 진흥왕은 백제가 차지한 한강 하류 지역을 공격하여 점령하였다. 이것이 직접적인 동기가 되어 관산성에서 전투가 일어났다. 성왕이 신라의 기습공격으로 전사하며 패배하였다. 이후 나제동맹이 완전히 깨져 양국은 적대관계가 지속되었다.
북한 평양직할시 역포구역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 제1대 동명성왕의 능. 왕릉.
동명왕릉 (東明王陵)
북한 평양직할시 역포구역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 제1대 동명성왕의 능. 왕릉.
삼국시대 때, 고구려에서 비류부장 등을 역임한 관리.
구도 (仇都)
삼국시대 때, 고구려에서 비류부장 등을 역임한 관리.
삼국시대 고구려의 제1대 동명성왕으로부터 '중실씨'라는 성을 하사받은 관리. 공로자.
무골 (武骨)
삼국시대 고구려의 제1대 동명성왕으로부터 '중실씨'라는 성을 하사받은 관리. 공로자.
538년부터 660년까지 불린 백제의 별칭.
남부여 (南扶餘)
538년부터 660년까지 불린 백제의 별칭.
충청남도 청양군 목면 계봉산(鷄鳳山)에 있는 삼국시대 에 창건된 사찰.
계봉산 계봉사 (鷄鳳山 鷄鳳寺)
충청남도 청양군 목면 계봉산(鷄鳳山)에 있는 삼국시대 에 창건된 사찰.
문왕은 남북국시대 발해의 제3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737~793년이며 무왕의 아들로 이름은 대흠무이다. 발해국이 성장함에 따라 중경현덕부·상경용천부·동경용원부 등 주로 만주 동부에 위치한 요충지로 천도를 거듭했다. 왕권 강화를 위해 당으로부터 율령을 받아들여 중앙과 지방의 통치제도를 정비했다. 관직에 대응되는 관품제도를 정리하여 관료제를 확립하기도 했다. 문왕이 사용한 대흥보력금륜성법대왕이라는 존호에는 불교의 전륜성왕 이념을 이용해 왕권 강화를 도모한 흔적이 들어 있다. 일본과 수차례 사신을 교환하며 외교관계를 유지했다.
문왕 (文王)
문왕은 남북국시대 발해의 제3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737~793년이며 무왕의 아들로 이름은 대흠무이다. 발해국이 성장함에 따라 중경현덕부·상경용천부·동경용원부 등 주로 만주 동부에 위치한 요충지로 천도를 거듭했다. 왕권 강화를 위해 당으로부터 율령을 받아들여 중앙과 지방의 통치제도를 정비했다. 관직에 대응되는 관품제도를 정리하여 관료제를 확립하기도 했다. 문왕이 사용한 대흥보력금륜성법대왕이라는 존호에는 불교의 전륜성왕 이념을 이용해 왕권 강화를 도모한 흔적이 들어 있다. 일본과 수차례 사신을 교환하며 외교관계를 유지했다.
성골은 신라시대 골품제도(骨品制度)의 최고위 신분계급이다. 제1골이라고도 한다. 중앙집권적 귀족국가로 발전해 가면서 형성된 골품제에서 가장 높은 신분으로 왕족 중에서도 일부만이 차지하였다. 성골 신분의 성립이나 존재를 해석하기 위한 자료가 미비하여 많은 이설(異說)이 있다. 성골을 지칭하는 왕족집단이 있었다는 견해와 왕족 내 혈연집단의 분지화로 다른 왕족과 구별하기 위해 내세워졌다는 견해 등이 있다. 왕족으로서 진골보다 상위의 신분이며 진덕여왕을 끝으로 성골 계통이 사라졌다는 데에는 대다수의 연구자들이 동의하고 있다.
성골 (聖骨)
성골은 신라시대 골품제도(骨品制度)의 최고위 신분계급이다. 제1골이라고도 한다. 중앙집권적 귀족국가로 발전해 가면서 형성된 골품제에서 가장 높은 신분으로 왕족 중에서도 일부만이 차지하였다. 성골 신분의 성립이나 존재를 해석하기 위한 자료가 미비하여 많은 이설(異說)이 있다. 성골을 지칭하는 왕족집단이 있었다는 견해와 왕족 내 혈연집단의 분지화로 다른 왕족과 구별하기 위해 내세워졌다는 견해 등이 있다. 왕족으로서 진골보다 상위의 신분이며 진덕여왕을 끝으로 성골 계통이 사라졌다는 데에는 대다수의 연구자들이 동의하고 있다.
위덕왕은 삼국시대 백제의 제27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554∼598년이다. 한강 하류지역 회복을 둘러싸고 벌어진 관산성 전투에서 대패해 성왕이 전사하자 즉위했다. 태자로서 이 전쟁을 적극 주장했기 때문에 즉위 초 패전으로 인한 혼란수습에 어려움을 겪었으나 귀족세력과의 합의를 통해 체제정비에 전념했다. 불교이념을 통한 배타적인 왕족의식의 고양, 국왕의 권력기반인 22부사제의 강화, 역사서 「백제본기」 편찬 등으로 왕권기반이 강화되었다. 신라·고구려에는 적대 정책을 취하고 북제·북주·수와는 활발한 외교를 펼쳐 국제적 위상도 되찾았다.
위덕왕 (威德王)
위덕왕은 삼국시대 백제의 제27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554∼598년이다. 한강 하류지역 회복을 둘러싸고 벌어진 관산성 전투에서 대패해 성왕이 전사하자 즉위했다. 태자로서 이 전쟁을 적극 주장했기 때문에 즉위 초 패전으로 인한 혼란수습에 어려움을 겪었으나 귀족세력과의 합의를 통해 체제정비에 전념했다. 불교이념을 통한 배타적인 왕족의식의 고양, 국왕의 권력기반인 22부사제의 강화, 역사서 「백제본기」 편찬 등으로 왕권기반이 강화되었다. 신라·고구려에는 적대 정책을 취하고 북제·북주·수와는 활발한 외교를 펼쳐 국제적 위상도 되찾았다.
남북국시대 발해의 제5대 성왕의 연호.
중흥 (中興)
남북국시대 발해의 제5대 성왕의 연호.
졸본(卒本)은 중국 랴오닝성 환런현에 있던 고구려의 첫 번째 도성이다. 오녀산성과 하고성자토성 등 고구려시대의 성 유적과 함께 고력묘자촌 고분군, 상고성자 고분군, 망강루 고분군 등 고구려 초기의 돌무지무덤 고분군이 밀집해 있다.
졸본 (卒本)
졸본(卒本)은 중국 랴오닝성 환런현에 있던 고구려의 첫 번째 도성이다. 오녀산성과 하고성자토성 등 고구려시대의 성 유적과 함께 고력묘자촌 고분군, 상고성자 고분군, 망강루 고분군 등 고구려 초기의 돌무지무덤 고분군이 밀집해 있다.
신라시대 골품제도를 구성하는 신분계급의 하나.
진골 (眞骨)
신라시대 골품제도를 구성하는 신분계급의 하나.
진흥왕은 삼국시대 신라의 제24대(재위: 540~576) 왕이다. 재위 기간에 불교를 진흥하는 한편, 화랑도를 창설하고 한강 유역을 차지하여 신라의 삼국 통일 기틀을 마련하였다. 진흥왕은 정복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여 이전보다 3배나 넓은 영토를 개척하였다.
진흥왕 (眞興王)
진흥왕은 삼국시대 신라의 제24대(재위: 540~576) 왕이다. 재위 기간에 불교를 진흥하는 한편, 화랑도를 창설하고 한강 유역을 차지하여 신라의 삼국 통일 기틀을 마련하였다. 진흥왕은 정복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여 이전보다 3배나 넓은 영토를 개척하였다.
행인국은 고구려 초기, 두만강 중류에서 함강북도 산간지대까지 자리하였던 나라이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 보이는 여러 작은 나라 가운데 하나이다. 동명성왕 대에 고구려가 차지하고 성읍으로 삼았는데, 태백산 동남쪽에 있었다고 한다. 태백산은 지금의 백두산으로, 행인국은 두만강 중류에서 함경북도 산간지대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행인국 (荇人國)
행인국은 고구려 초기, 두만강 중류에서 함강북도 산간지대까지 자리하였던 나라이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 보이는 여러 작은 나라 가운데 하나이다. 동명성왕 대에 고구려가 차지하고 성읍으로 삼았는데, 태백산 동남쪽에 있었다고 한다. 태백산은 지금의 백두산으로, 행인국은 두만강 중류에서 함경북도 산간지대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