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송국리_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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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송국리 선사 취락지는 충청남도 부여군 초촌면에 있는 우리나라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대규모 취락유적이다. 1974년 비파형동검이 부장된 돌널무덤을 통해 학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후 총 25차에 걸친 학술 발굴이 진행되면서 대지 조성 흔적, 대지 구획 시설, 목주 열, 대형 굴립주 건물지와 같은 특징적인 유구 및 시설이 확인되고 있다. 부여송국리선사취락지에서 찾은 집터와 무덤, 토기와 석기 등은 우리나라 청동기시대 중기 문화를 대표하는 이른바 송국리 유형으로 설정되어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부여 송국리 선사 취락지 (扶餘 松菊里 先史 聚落址)
부여 송국리 선사 취락지는 충청남도 부여군 초촌면에 있는 우리나라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대규모 취락유적이다. 1974년 비파형동검이 부장된 돌널무덤을 통해 학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후 총 25차에 걸친 학술 발굴이 진행되면서 대지 조성 흔적, 대지 구획 시설, 목주 열, 대형 굴립주 건물지와 같은 특징적인 유구 및 시설이 확인되고 있다. 부여송국리선사취락지에서 찾은 집터와 무덤, 토기와 석기 등은 우리나라 청동기시대 중기 문화를 대표하는 이른바 송국리 유형으로 설정되어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이후 집터와 독무덤·굴식돌방무덤 관련 생활유적.
공주 안영리 유적 (公州 安永里 遺蹟)
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이후 집터와 독무덤·굴식돌방무덤 관련 생활유적.
검단리형토기는 한반도 동남해안 지방에서 출토된 청동기시대 토기이다. 울산 검단리 유적에서 출토된 토기에서 유래하였다. 울산 신평, 방기리, 교동리, 연암동, 창평동 등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청동기시대 전기의 복합계 무늬에서 형식이 변화하여 나타나는 것으로 이해된다. 깊은바리모양 토기 아가리 부분에 침선무늬가 낟알 모양으로 다양한 무늬가 새겨지고 손잡이가 달리기도 한다. 그 밖에 적색 마연 항아리, 울산형 주거지, 동북형 돌칼, 흙으로 만든 단면 타원형 혹은 네모형의 어망추 물질 자료가 결합된 유물을 검단리 유형이라고 일컫는다.
검단리형토기 (檢丹里形土器)
검단리형토기는 한반도 동남해안 지방에서 출토된 청동기시대 토기이다. 울산 검단리 유적에서 출토된 토기에서 유래하였다. 울산 신평, 방기리, 교동리, 연암동, 창평동 등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청동기시대 전기의 복합계 무늬에서 형식이 변화하여 나타나는 것으로 이해된다. 깊은바리모양 토기 아가리 부분에 침선무늬가 낟알 모양으로 다양한 무늬가 새겨지고 손잡이가 달리기도 한다. 그 밖에 적색 마연 항아리, 울산형 주거지, 동북형 돌칼, 흙으로 만든 단면 타원형 혹은 네모형의 어망추 물질 자료가 결합된 유물을 검단리 유형이라고 일컫는다.
서천봉선리유적(舒川鳳仙里遺蹟)은 충청남도 서천군 시초면 봉선리에 있는 청동기시대~백제시대에 형성된 복합유적이다. 2003년 서천~공주 간 고속도로 공사 중 처음 확인되어 발굴 조사되었다. 금강 하구로 유입되는 길산천 충적평야를 동으로 마주하는 구릉지 사면에 자리한다. 청동기시대 처음 취락이 형성된 후 원삼국시대에 들어 지역의 중심 묘역으로 발전하였고, 백제 시기에도 그 성격이 유지되었다. 2006년 고속도로에 편입되지 않은 서쪽 구릉 일대를 사적으로 지정 · 보호하고 있다.
서천 봉선리 유적 (舒川 鳳仙里 遺蹟)
서천봉선리유적(舒川鳳仙里遺蹟)은 충청남도 서천군 시초면 봉선리에 있는 청동기시대~백제시대에 형성된 복합유적이다. 2003년 서천~공주 간 고속도로 공사 중 처음 확인되어 발굴 조사되었다. 금강 하구로 유입되는 길산천 충적평야를 동으로 마주하는 구릉지 사면에 자리한다. 청동기시대 처음 취락이 형성된 후 원삼국시대에 들어 지역의 중심 묘역으로 발전하였고, 백제 시기에도 그 성격이 유지되었다. 2006년 고속도로에 편입되지 않은 서쪽 구릉 일대를 사적으로 지정 · 보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