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충청남도 서천군 시초면 봉선리에 있는 청동기시대~백제시대에 형성된 복합유적.
발굴경위 및 결과
고속도로가 통과하는 일대는 금강 하구로 흘러드는 기산천에 의해 형성된 길고 좁은 충적평야(沖積平野)를 동쪽에 두고 있는 구릉 지역의 산록에 해당된다. 충적평야는 일제강점기에 저수지가 조성되어 지금은 일부만 남아 있다.
이러한 입지는 농경이 본격화된 청동기시대 이래 취락으로 선호되는데, 이 유적은 평면원 원형의 집터를 특징으로 하는 청동기시대 후기 송국리 유형 시기의 취락으로 시작되었다. 그러한 마을 가운데 규모가 큰 것은 원삼국시대 이래 지역 중심지로 성장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유적은 그 유형에 해당된다.
변천
원삼국시대에 해당되는 집터는 10기에 불과하지만, 분묘는 주구묘(周溝墓: 무덤 주위에 도랑을 파서 돌린 분묘) 12기가 확인되었다. 주구묘군은 현재의 읍면 소재지별 1개소 정도 분포하고 있어 지역 중심 묘역으로 볼 수 있다.
백제시대에는 집터 39기, 저장공 93기 등 취락의 기능과 관련된 유구와 함께 굴식 돌방무덤 6기, 구덩식 돌덧널무덤 44기, 널무덤 9기 등이 확인되었다. 그 가운데 굴식 돌방무덤은 지역 유력자의 가족묘로서 구덩식 돌덧널무덤에 비해 그 위상이 높다.
분묘와 주거지가 함께 나오는 경우는 특이한데, 이 유적의 경우 주거지 수에 비해 저장공이 더 많아 수취와 재분배 등의 기능을 가진 취락으로 볼 수 있다.
형태와 특징
유적 외곽은 마치 성벽처럼 낮은 토축 장체를 돌렸고, 서사면 일대는 성토 등 기법으로 정지하여 목곽고, 저장공, 지상 건물지 등 제사용품 창고 시설 및 건물지가 있고, 동쪽 정상부에는 3단으로 추정되는 제단이 조성되어 있다. 출토 유물로 보면 한성기 말 · 웅진기 초에 조성이 시작되어 사비 시기까지 이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단행본
- 이창호 외, 『서천 봉선리유적 III』(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 서천군, 2020)
- 이호경 외, 『서천 봉선리유적 II』(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 서천군, 2019)
- 이창호 외, 『서천 봉선리유적 시굴조사』(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 서천군, 2016)
- 이훈 외, 『서천 봉선리유적』(충남역사문화연구원, 2006)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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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하천 주변에 모래, 자갈, 진흙 따위가 쌓여 생긴 평야.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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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깬돌이나 판돌을 잇대어 널을 만들어서 쓴 무덤. 주로 청동기 시대에 썼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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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깬돌로 널을 안치하는 널방(玄室)을 만들고 외부로 통하는 널길(羨道)를 만든 뒤 흙으로 씌운 무덤 양식.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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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주검을 위에서 수직으로 넣도록, 옆으로 트인 창이나 입구 없이 돌로 네 벽을 짠 무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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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구덩이를 파고 시체를 직접 넣거나 목관이나 목곽에 시체를 넣고 그 위에 흙을 쌓아 올린 무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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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나무로 만든 저장 시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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