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의 이름은 ‘금남표해록(錦南漂海錄)’이라고도 하는데, 일본에서 번역된 것은 ‘당토행정기(唐土行程記)’ · ‘통속표해록(通俗漂海錄)’ 등으로도 일컬어진다.
국내본은 목판 인본(印本) 3권 2책의 한문본과 3권 3책의 국역 필사본 「표ᄒᆡ록」이 있다. 지은이는 음력 1487년 11월 12일에 추쇄(推刷) 경차관(敬差官)으로 제주도에 부임하여 2개월쯤 근무하던 중 부친상을 당하였는데, 1488년 윤1월 3일 제주를 떠나 고향 나주(羅州)로 가다가 뜻밖의 풍랑을 만났기 때문에 바다를 표류하게 된다.
작품의 저술동기는 지은이가 시종(侍從)들을 포함한 일행 42인을 거느리고 중국의 절강성 영파부(浙江省 寧波府) 해안에 표착(漂着)하여 온갖 고난을 겪은 뒤, 명나라의 호의로 북경(北京)과 요동(遼東) 및 의주(義州)를 거쳐 6월 14일 서울로 돌아와 성종을 알현(謁見)하였을 때 성종의 명을 받아 한문으로 지어 올리게 된 것이다.
이 작품의 중요한 내용은 풍랑을 만나 표류하면서 배 안에서 미신을 믿는 무식한 아랫것들과 상주(喪主)로서 죄인으로 자처한 지은이와의 많은 갈등, 왜구를 만난 일, 표류하다가 영파부 바닷가에 도착한 뒤에 왜구로 오인을 받아 붙잡혀 사형 당할 위기에 중국 관리를 만나 신분과 표해 원인을 밝힌 뒤 북경으로 옮겨지게 된 일, 중국 대륙을 종단하여 북쪽으로 올라오며 보고 듣고 느낀 갖가지 일들을 기록한 것이다.
또 중국의 해로(海路) · 기후 · 산천 · 도로 · 관부(官府) · 고적 · 풍속 · 민요 등 폭넓은 영역에 걸쳐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특히, 중국 농촌에서 논밭에 물을 퍼올리는 수차(水車)를 보고 그 제작과 이용법을 배운 일을 기록하고 있다. 또한 3월 28일부터 4월 23일까지 북경에서 머무르며 경험한 일들, 4월 24일 북경을 출발하여 요동을 거치며 얻은 견문, 6월 4일 압록강을 건너 의주에 도착하기까지의 이정(里程) 등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이 작품은 왕명에 의하여 지어졌기 때문에 서술에서도 지은이 스스로를 가리킬 때 ‘신(臣)’이라고 기록하여 보고문 같은 성격도 띠고 있다. 현재 전하고 있는 표해 기록문 중 가장 오래된 귀중한 것이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