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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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사설화」는 송사 사건의 발생, 경과, 판결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설화이다. 「송사설화」는 해결자인 판결자가 서사의 중심 축이 되며, 판결자와 그 판결 방식에 따라 「송사설화」의 성격이 달라진다. 「송사설화」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는 재판의 판결자인 원님이 사건을 지혜롭게 해결하는 것이다. 특정 인물이 원님의 역할을 하기도 하는데, 박문수, 황희, 고창녕 등이 대표적이다. 원님이 아닌 여성이나 아이가 사건을 해결하는 경우도 있으며, 이러한 유형은 약자가 지혜로 강자를 이긴다는 아이러니를 통해 무능한 판관을 비판하려는 의도가 있다.
송사설화 (訟事說話)
「송사설화」는 송사 사건의 발생, 경과, 판결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설화이다. 「송사설화」는 해결자인 판결자가 서사의 중심 축이 되며, 판결자와 그 판결 방식에 따라 「송사설화」의 성격이 달라진다. 「송사설화」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는 재판의 판결자인 원님이 사건을 지혜롭게 해결하는 것이다. 특정 인물이 원님의 역할을 하기도 하는데, 박문수, 황희, 고창녕 등이 대표적이다. 원님이 아닌 여성이나 아이가 사건을 해결하는 경우도 있으며, 이러한 유형은 약자가 지혜로 강자를 이긴다는 아이러니를 통해 무능한 판관을 비판하려는 의도가 있다.
『송사전』은 조선시대 정조가 『송사』를 저본으로 오류를 수정하고 번잡한 내용을 산삭하여 1791년에 편찬한 송나라 역사서이다. 1343년에 편찬된 『송사』는 수많은 오류와 중복 서술 때문에 가장 혹평을 받았던 역사서이다. 정조는 『송사』를 개수하여 편목을 정리하고 필삭하여 1791년에 150권 61책으로 완성하였다. 『송사』에서 「열전」에 포함시켰던 후비를 「본기」로 편입시키고 『송사』에 없는 「유민전」을 새로 설정하는 등 체재와 내용에서 뚜렷한 특징을 보인다. 이 책은 정조가 초고를 작성했고, 개정 과정에 관여하였기 때문에 정조의 사관이 투영된 역사서라고 할 수 있다.
송사전 (宋史筌)
『송사전』은 조선시대 정조가 『송사』를 저본으로 오류를 수정하고 번잡한 내용을 산삭하여 1791년에 편찬한 송나라 역사서이다. 1343년에 편찬된 『송사』는 수많은 오류와 중복 서술 때문에 가장 혹평을 받았던 역사서이다. 정조는 『송사』를 개수하여 편목을 정리하고 필삭하여 1791년에 150권 61책으로 완성하였다. 『송사』에서 「열전」에 포함시켰던 후비를 「본기」로 편입시키고 『송사』에 없는 「유민전」을 새로 설정하는 등 체재와 내용에서 뚜렷한 특징을 보인다. 이 책은 정조가 초고를 작성했고, 개정 과정에 관여하였기 때문에 정조의 사관이 투영된 역사서라고 할 수 있다.
『결송유취』는 1649년(효종 즉위년) 김백간이 편찬하고 아들인 김태정이 『사송유취』 를 후대에 수정 보완하여 고을의 수령들이 소송을 하는 데 도움을 주도록 편찬한 법제서이다. 이 책은 고을 수령이었던 김백간이 편찬한 책을 1585년(선조 18)에 전라도관찰사로 부임한 그의 아들이 간행한 『사송유취』 를 1649년에 한두 글자만 바꿔서 출간한 실무 지침서이다. 내용이 『사송유취』와 똑같아서 구별할 수 없다.
결송유취 (決訟類聚)
『결송유취』는 1649년(효종 즉위년) 김백간이 편찬하고 아들인 김태정이 『사송유취』 를 후대에 수정 보완하여 고을의 수령들이 소송을 하는 데 도움을 주도록 편찬한 법제서이다. 이 책은 고을 수령이었던 김백간이 편찬한 책을 1585년(선조 18)에 전라도관찰사로 부임한 그의 아들이 간행한 『사송유취』 를 1649년에 한두 글자만 바꿔서 출간한 실무 지침서이다. 내용이 『사송유취』와 똑같아서 구별할 수 없다.
「와사옥안」은 조선 후기 유일하게 이두로 표기된 작자 및 창작 연대 미상의 고전소설이다. 조선 후기 살인사건 송사(訟事)에서 반드시 수행되어야 했던 검험, 즉 피해자 시신 조사와 목격자 및 참고인 조사 등의 양상을 매우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형상화한 유일한 송사형 우화소설 작품으로서 의의가 있다.
와사옥안 (蛙蛇獄案)
「와사옥안」은 조선 후기 유일하게 이두로 표기된 작자 및 창작 연대 미상의 고전소설이다. 조선 후기 살인사건 송사(訟事)에서 반드시 수행되어야 했던 검험, 즉 피해자 시신 조사와 목격자 및 참고인 조사 등의 양상을 매우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형상화한 유일한 송사형 우화소설 작품으로서 의의가 있다.
「서대주전」은 작자 · 연대 미상의 고전소설이다. 뇌물을 수수한 부정한 원님으로 인해 도둑인 서대주와 피해자인 타남주의 송사에서 서대주가 승리한다는 내용을 통해 인간 사회, 특히 재판관을 비롯한 관리들의 무능과 부정 부패를 신랄하게 풍자한 송사형 우화소설이다.
서대주전 (鼠大州傳)
「서대주전」은 작자 · 연대 미상의 고전소설이다. 뇌물을 수수한 부정한 원님으로 인해 도둑인 서대주와 피해자인 타남주의 송사에서 서대주가 승리한다는 내용을 통해 인간 사회, 특히 재판관을 비롯한 관리들의 무능과 부정 부패를 신랄하게 풍자한 송사형 우화소설이다.
「서동지전」은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이다. 당나라 태종 때 큰 공을 세웠으면서 어질고 후덕한 성품을 지닌 서대주와 그의 은혜를 입고도 거짓으로 소송을 건 간악한 다람쥐의 모습을 통해, 당대의 사회적 현실을 풍자하고 배은망덕한 인간들에 대한 경계를 주제로 한 송사형 우화소설이다.
서동지전 (鼠同知傳)
「서동지전」은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이다. 당나라 태종 때 큰 공을 세웠으면서 어질고 후덕한 성품을 지닌 서대주와 그의 은혜를 입고도 거짓으로 소송을 건 간악한 다람쥐의 모습을 통해, 당대의 사회적 현실을 풍자하고 배은망덕한 인간들에 대한 경계를 주제로 한 송사형 우화소설이다.
「서옥기」는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 소설이다. 무리를 이끌고 쌀 창고를 침범한 늙은 쥐가 무고한 84 종의 동식물을 끌어들여, 세 차례의 공방을 벌이는데 이를 통해 자신의 죄를 남에게 전가시키려 한다는 내용이다. 교활하고도 비굴한 인간들의 행동을 신랄하게 풍자한 송사형 우화소설이다.
서옥기 (鼠獄記)
「서옥기」는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 소설이다. 무리를 이끌고 쌀 창고를 침범한 늙은 쥐가 무고한 84 종의 동식물을 끌어들여, 세 차례의 공방을 벌이는데 이를 통해 자신의 죄를 남에게 전가시키려 한다는 내용이다. 교활하고도 비굴한 인간들의 행동을 신랄하게 풍자한 송사형 우화소설이다.
「정수경전」은 조선 후기 작자 미상의 고전소설이다. 구활자본의 제목은 옥중금낭, 신랑의 보쌈이다. 필사본 제목은 정수경전·정두경전·김요문전, 경판본 완판본 제목은 정수경전 등이다. 과거를 보러 떠난 정수경은 문복하는 판수에게 세 번의 액운을 점괘로 받고 보쌈을 당해 이 소저와 인연을 맺고 도움을 받아 살아난다. 과거 급제 후 김 정승의 딸과 혼인하지만, 첫날밤 신부가 살해당하자 범인으로 지목된다. 국문을 당하고 옥고를 치르던 중 점괘에서 이른 대로 옥낭의 종이를 진상하여 수수께끼를 공표하고 이를 푼 이 소저의 추리로 혐의를 벗는다.
정수경전 (鄭壽景傳)
「정수경전」은 조선 후기 작자 미상의 고전소설이다. 구활자본의 제목은 옥중금낭, 신랑의 보쌈이다. 필사본 제목은 정수경전·정두경전·김요문전, 경판본 완판본 제목은 정수경전 등이다. 과거를 보러 떠난 정수경은 문복하는 판수에게 세 번의 액운을 점괘로 받고 보쌈을 당해 이 소저와 인연을 맺고 도움을 받아 살아난다. 과거 급제 후 김 정승의 딸과 혼인하지만, 첫날밤 신부가 살해당하자 범인으로 지목된다. 국문을 당하고 옥고를 치르던 중 점괘에서 이른 대로 옥낭의 종이를 진상하여 수수께끼를 공표하고 이를 푼 이 소저의 추리로 혐의를 벗는다.
화랑세기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학자 김대문이 화랑들의 행적을 모아 엮은 전기이다. 김대문은 진골귀족으로 성덕왕 때 한산주 도독이 되어 이 책을 지었다고 한다. 이 책은 『고승전』 과 함께 김대문의 중요한 저술로 꼽히나 『삼국사기』에 한 구절이 인용되어 있을 뿐 현존하지 않는다. 이 책의 화랑은 그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던 진흥왕대부터 통일을 완성한 문무왕대까지로 화랑제도의 본래 모습을 가장 잘 전해 주는 기록으로 보고 있다. 1989년에 필사본이 발견된 후 박창화에 의한 위작설이 제기되는 등 진위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화랑세기 (花郎世記)
화랑세기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학자 김대문이 화랑들의 행적을 모아 엮은 전기이다. 김대문은 진골귀족으로 성덕왕 때 한산주 도독이 되어 이 책을 지었다고 한다. 이 책은 『고승전』 과 함께 김대문의 중요한 저술로 꼽히나 『삼국사기』에 한 구절이 인용되어 있을 뿐 현존하지 않는다. 이 책의 화랑은 그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던 진흥왕대부터 통일을 완성한 문무왕대까지로 화랑제도의 본래 모습을 가장 잘 전해 주는 기록으로 보고 있다. 1989년에 필사본이 발견된 후 박창화에 의한 위작설이 제기되는 등 진위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