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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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이나 불전의 문 또는 불상 등을 지키는 불교의 수호신. 인왕역사.
금강역사 (金剛力士)
사찰이나 불전의 문 또는 불상 등을 지키는 불교의 수호신. 인왕역사.
지구와 다른 행성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대기현상을 연구하는 학문. 대기과학.
기상학 (氣象學)
지구와 다른 행성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대기현상을 연구하는 학문. 대기과학.
『묵죽화책』은 조선 초기의 화가로 추정되는 이수문이 그린 화첩이다. 현재 일본의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현재 마쓰다이라 고토가 소장하고 있다. 1424년에 그린 화책으로 총 10장의 대나무 그림으로 이루어져 있다. 보통 문인화가의 간결하고 서예적인 묵죽과 달리 바위·언덕·벼랑·비·바람· 달 등을 배경으로 밀집된 죽림의 모습을 그렸다. 맨 마지막 장의 왼편 상단에는 관기(款記)와 화가의 서명이 있다. 이 관기를 통해 종래 명나라 사람이라고 여겼던 이수문을 조선인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이 화책은 화가 이수문의 국적 문제를 규명해 볼 수 있는 유력한 단서이다.
묵죽화책 (墨竹畵冊)
『묵죽화책』은 조선 초기의 화가로 추정되는 이수문이 그린 화첩이다. 현재 일본의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현재 마쓰다이라 고토가 소장하고 있다. 1424년에 그린 화책으로 총 10장의 대나무 그림으로 이루어져 있다. 보통 문인화가의 간결하고 서예적인 묵죽과 달리 바위·언덕·벼랑·비·바람· 달 등을 배경으로 밀집된 죽림의 모습을 그렸다. 맨 마지막 장의 왼편 상단에는 관기(款記)와 화가의 서명이 있다. 이 관기를 통해 종래 명나라 사람이라고 여겼던 이수문을 조선인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이 화책은 화가 이수문의 국적 문제를 규명해 볼 수 있는 유력한 단서이다.
조선 전기의 학자, 길재의 시문과 후인들이 언급한 기록들을 엮어 1858년에 간행한 시문집.
야은선생언행습유 (冶隱先生言行拾遺)
조선 전기의 학자, 길재의 시문과 후인들이 언급한 기록들을 엮어 1858년에 간행한 시문집.
1630년(인조 8) 전후 수문관청(守門將廳) 소속 수문장들이 가진 계회를 기념해 제작한 계회도이다. 2010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산으로 지정되었다. 상부에 전서체로 “수문장계회도(守門將契會圖)”라 묵서한 제목, 그리고 중앙부의 계회 장면이 담긴 그림, 하단부의 좌목(座目)까지 3부분으로 구성되었다. 전 · 현직 수문장들이 한 자리에 모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모임 날짜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참여자들의 재임 시기로 미루어 1630년(인조 8)을 전후한 때, 즉 1627년(인조 5)부터 1631년(인조 9) 사이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수문장계회도 (守門將契會圖)
1630년(인조 8) 전후 수문관청(守門將廳) 소속 수문장들이 가진 계회를 기념해 제작한 계회도이다. 2010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산으로 지정되었다. 상부에 전서체로 “수문장계회도(守門將契會圖)”라 묵서한 제목, 그리고 중앙부의 계회 장면이 담긴 그림, 하단부의 좌목(座目)까지 3부분으로 구성되었다. 전 · 현직 수문장들이 한 자리에 모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모임 날짜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참여자들의 재임 시기로 미루어 1630년(인조 8)을 전후한 때, 즉 1627년(인조 5)부터 1631년(인조 9) 사이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수산제는 경상남도 밀양시 하남읍의 옛 수산현에 있던 고대 수리 시설이다. 김제 벽골제, 제천 의림지와 함께 삼한시대 3대 수리 시설로 알려져 있다. 기록상으로 고려 후기에 김방경이 제방을 쌓고 관개를 하여 일본 정벌을 위한 군량미를 비축하였다는 것과 1467년(세조 13)에 조석문이 제방을 수축하여 국둔전을 만들었다는 사실 등이 전한다. 하지만 임진왜란 이후 황폐화하였다. 고종 때 다시 제방을 증축하였고, 갑오개혁 이후 관유지가 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사유지가 되어 농지로 개간되는 등 변화를 겪어 현재 본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수산제 (守山堤)
수산제는 경상남도 밀양시 하남읍의 옛 수산현에 있던 고대 수리 시설이다. 김제 벽골제, 제천 의림지와 함께 삼한시대 3대 수리 시설로 알려져 있다. 기록상으로 고려 후기에 김방경이 제방을 쌓고 관개를 하여 일본 정벌을 위한 군량미를 비축하였다는 것과 1467년(세조 13)에 조석문이 제방을 수축하여 국둔전을 만들었다는 사실 등이 전한다. 하지만 임진왜란 이후 황폐화하였다. 고종 때 다시 제방을 증축하였고, 갑오개혁 이후 관유지가 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사유지가 되어 농지로 개간되는 등 변화를 겪어 현재 본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