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승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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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예수교장로회는 조선예수교장로회 공의회를 모체로 출범한 한국 장로교의 한 교단이다. 1912년 조선예수교장로회라는 이름으로 창설되었지만 1959년 에큐메니칼 신학 수용 문제를 둘러싸고 예장통합측과 분립하면서 독자적인 교단으로 출범하였다. 여성 목사 안수를 인정하지 않는 등 신학적으로 보수 노선을 견지하고 있다. 한국 장로교를 넘어 개신교 교단 중 가장 큰 교세를 지니고 있지만 교단의 정체성과 한국의 전통문화를 적절히 조화시키는 과제를 지니고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大韓←Jesus敎長老會)
대한예수교장로회는 조선예수교장로회 공의회를 모체로 출범한 한국 장로교의 한 교단이다. 1912년 조선예수교장로회라는 이름으로 창설되었지만 1959년 에큐메니칼 신학 수용 문제를 둘러싸고 예장통합측과 분립하면서 독자적인 교단으로 출범하였다. 여성 목사 안수를 인정하지 않는 등 신학적으로 보수 노선을 견지하고 있다. 한국 장로교를 넘어 개신교 교단 중 가장 큰 교세를 지니고 있지만 교단의 정체성과 한국의 전통문화를 적절히 조화시키는 과제를 지니고 있다.
일제강점기 조선신학교 초대원장을 역임한 교육자.
김대현 (金大鉉)
일제강점기 조선신학교 초대원장을 역임한 교육자.
조선예수교장로회총회에서 1910년 2월에 창간하여 1914년 8월 제5권 제33호로 폐간한 회보. 개신교회보.
예수교회보 (←Jesus敎會報)
조선예수교장로회총회에서 1910년 2월에 창간하여 1914년 8월 제5권 제33호로 폐간한 회보. 개신교회보.
박성춘(1862 철종13~1933)은 일제강점기 승동교회 장로, 경기충청노회 재정위원 등으로 활동한 개신교인이다. 백정의 아들로 태어나 백정이 되었다. 1894년 무렵 중병에 걸렸을 때, 무어 선교사가 데려온 에비슨의 치료를 받고 나은 후 교회에 출석하였다. 기독교를 통해 ‘만민평등’의 기치를 깨달은 박성춘은 백정 해방운동을 전개하였다. 1898년 독립협회가 주최한 관민공동회에 시민 대표로 나가 ‘충군애국’을 주제로 연설하였다. 1911년 인사동 건립된 승동교회 장로로 선출되었고, 경기충청노회 재정위원으로도 활약했다.
박성춘 (朴晟春)
박성춘(1862 철종13~1933)은 일제강점기 승동교회 장로, 경기충청노회 재정위원 등으로 활동한 개신교인이다. 백정의 아들로 태어나 백정이 되었다. 1894년 무렵 중병에 걸렸을 때, 무어 선교사가 데려온 에비슨의 치료를 받고 나은 후 교회에 출석하였다. 기독교를 통해 ‘만민평등’의 기치를 깨달은 박성춘은 백정 해방운동을 전개하였다. 1898년 독립협회가 주최한 관민공동회에 시민 대표로 나가 ‘충군애국’을 주제로 연설하였다. 1911년 인사동 건립된 승동교회 장로로 선출되었고, 경기충청노회 재정위원으로도 활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