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3·1운동 당시 「십이인 등의 장서」를 작성하여 조선총독부에 보낸 장로교 목사.
인적사항
주요 활동
1911년 양주군 퇴계원(현 남양주시 퇴계원)으로 이주하여 퇴계원교회 장로로 활동하고, 이듬해에 평양 장로회신학교에 입학하여 1916년에 졸업하였다. 그해 경충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으며, 1917년에 승동교회 위임목사로 부임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났을 때 서울 안동교회 목사 김백원(金百源), 정주교회 장로 조형균(趙衡均), 의주교회 집사 문일평(文一平) 등과 함께 「십이인 등의 장서(十二人 等의 狀書)」(또는 「조선독립애원서」)를 작성하여 3월 12일 조선총독부에 보낸 뒤 만세 시위를 벌였다.
이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뒤 건강이 좋지 않아 목회를 잠시 중단하였다가 1922년부터 1929년까지 피어선기념성경학원 원감으로 재임하였다.
그 외에 용산교회(1922-1924), 양평정교회(1934), 시흥구역(1938), 도림정교회(1939) 목사로 근무하였고, 경기충청노회장(1916), 경기노회장(1931), 장감연합전도국장(1925) 등을 지냈다.
참고문헌
단행본
- 김양선, 『한국기독교사연구』 (기독교문사, 1971)
- 차재명 편, 『조선예수교장로회사기』 상 (신문내교회당, 1928)
논문
- 류금주, 「차상진의 사역과 그 역사적 위치」(『피어선신학논단』 3-2, 피어선기념성경연구원,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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