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일제강점기, 일제의 종교 정책에 협력한 감리교 목사.
인적사항
주요 활동
김응태는 1931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에서 재일 교포들의 기독교 신앙운동에 힘쓰다가 귀국하여 공주 지방 감리사로 있으면서 대전교회를 발전시켰으며, 인천 내리교회, 창영교회에서 시무하기도 하였다. 기독교조선감리교단 경기남교구장(1941년), 일본기독교조선감리교단 전도국장(1943년), 조선기독교단 부통리자(1945년) 등의 요직을 맡아 일제에 협력하였으며, 총리원 이사, 연합공의회 서기, 교단 총대 등을 역임하였다.
김응태는 1955년 3월 호헌파가 별도로 조직한 총회에서 감독으로 추대되어 4년 동안 호헌파의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그는 1959년 은퇴하여 인천에서 여생을 보내며 율목교회를 돕다가 1971년 사망하여 경기도 화성군 장안면 수촌리 선영에 안장되었다.
참고문헌
원전
- 『기독교미감리회조선연회록(基督敎美監理會朝鮮年會錄)』 (1919)
- 『기독교조선감리회제8회중부연회록(基督敎朝鮮監理會第8回中部年會錄)』 (1941)
단행본
- 기독교대한감리회 역사위원회, 『한국감리교인물사전』 (기독교대한감리회, 2002)
- 김양선, 『한국기독교해방십년사(韓國基督敎解放十年史)』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종교교육부, 1956)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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