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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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
인물
일제강점기 의주군의 백마교회, 북하동교회, 상단교회 등에서 목회한 목사.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78년(고종 15)
사망 연도
미상
출생지
평안북도 박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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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의주군의 백마교회, 북하동교회, 상단교회 등에서 목회한 목사.
내용

평안북도 박천 출신. 27세 때 기독교에 입교하였고, 1911년 평양 장로회신학교에 입학하였다. 1915년 졸업하면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평안북도 의주군의 영산시(永山市)교회, 경상남도 울산교회·김해읍교회, 다시 의주군의 백마교회·북하동교회·상단교회 등에서 시무하였다.

1937년부터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가 극심해지자 정면에서 맞서서 반대운동을 펴나가기 시작하여 교회시무를 사임하고 채정민(蔡庭敏)·주남선(朱南善)·한상동(韓尙東) 등과 함께 조직적으로 항거하였다.

이로 인하여 1939년 육군형법위반 혐의로 구속되어 평양형무소에서 7년 동안 복역하다가 광복을 맞아 석방되었다. 출옥 후 옥중에서 순교한 주기철목사의 평양산정현(山亭峴)교회에서 다른 동지들과 함께 교회정화운동을 전개하였으며, 한국교회재건의 기본원칙을 발표하였다.

이 원칙을 따르는 교회들은 1949년 5월독로회(獨老會)를 조직하여 신사참배 교회의 비정통성을 공격하였다. 여기에는 평안도와 황해도지역의 30여개 교회가 가담하였는데, 이것이 이른바 혁신 복구파(革新復舊派)이다.

이들은 북한5도 연합노회(北韓五道聯合老會)와 단절하고 독자적인 노선을 취하였다. 그의 교회재건운동은 남한의 고려파 운동과 상응되는 성격을 지닌다. 6·25 때 죽은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태양신(太陽神)과 싸운 이들』(안용준, 세종문화사, 1972)
『한국기독교해방십년사(韓國基督敎解放十年史)』(김양선,대한예수교장로회종교교육부,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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