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일원(歸一園)은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하나님 나라의 복지를 이 땅에 실현하는 것을 주1으로 삼아 사회 복지 주2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지역 주3와 더불어 모든 사회 복지 활동의 모범을 보여주기 위해서 설립되었다.
귀일원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다음과 같다. 1948년 10월 여순사건으로 전라남도 지역에 고아들이 늘어나자 1949년 ‘맨발의 성자’ 이현필은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봉하리 청소골에 초가집 1채를 마련하고, 제자 김준호와 정귀주로 하여금 고아 8명을 돌보도록 하였다. 1950년 1월 최흥종, 정인세, 백영흠, 김천배 등 광주 기독교 유지들이 동광원이라는 고아원을 설립하자 청소골 고아들이 그곳으로 합류했다. 광복 전부터 이현필에게 신앙 훈련을 받아온 제자들이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동광원의 보모와 교사로 일하게 되었다.
한편 이현필은 1951년 화학산에서 묵언 수도하는 중에 찾아 온 동광원 원장 정인세에게 “광주역을 헤매는 사람들을 데려다 따뜻하게 대접하고 하룻밤씩 재워 보내는 운동을 하시오. 이것이 귀일원 운동입니다.”라고 하였다. ‘귀일’은 “한분이신 하나님께 돌아가자.”, “하룻밤씩 재워 보내자.”는 뜻을 담고 있다. 그때부터 동광원은 고아원 사역 외에 광주역과 광주 시내를 배회하는 주4과 주5들을 데려다 먹이고 재워주는 구제 활동을 시작했다. 귀일원 운동은 1954년 동광원 폐쇄 후에도 지속되었다.
이현필 사망 1년 후인 1965년 2월에 백춘성 장로가 주6 수도 공동체 자산을 기반으로 재단 주7 귀일원 설립 주8를 받고, 초대 이사장 겸 원장에 오북환, 총무에 김은연이 취임하여 봉선동에서 주9 수용 주10로 사회 복지 사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으며, 이현필의 제자인 동광원 자매들이 초기 수용자들을 돌보았다. 이로써 동광원과 귀일원은 주11 수련과 그 실천의 장으로 밀접한 상호 보완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다.
이후 귀일원 재단 법인은 1973년 2월 사회 복지 주12으로 변경되었고, 시설도 1985년 5월 정신 주13 수용 보호 시설로 용도 변경이 이루어졌다. 1999년 10월 귀일원은 귀일정신요양원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지적 장애인 생활 시설로 귀일민들레집을 신설했으며, 2004년 2월에는 장애인 직업 재활 주14로 귀일향기일굼터를 개설하였다. 2003년에 시설을 대대적으로 증축하며 귀일복지관을 주15, 2009년 귀일원 설립 60주년을 맞아 귀일원 역사관을 개관하였다. 2010년에는 『귀일원 60년사: 맨발의 섬김으로 피어오르는 사랑 1949~2009』를 간행하였다.
귀일원의 역대 이사장은 오북환(19652003), 김준호(20032005), 오세휘(2005현재) 등이고, 역대 원장(귀일원-귀일정신요양원)은 오북환(19651969), 정인세(19691988), 김은연(19881991), 복은순(19911999), 이채영(19992001), 나숙자(2001~현재) 등이다. 2014년 귀일원에는 26명이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으며, 귀일정신요양원과 귀일민들레집, 귀일향기일굼터 등 3개 시설에 수용된 장애인 240명을 직원 60명이 돌보고 있다. 2019년 창립 70주년 기념 세미나가 있었고, 귀일정신요양원 생활관이 증축되었다. 또 2020년에는 귀일향기일굼터 반려동물 유치원 사업장이 구축되고 아울러 귀일향기일굼터의 업태(제조업, 주16와 종목(쇼핑백, 식품 소분업)이 추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