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광원은 1950년 설립된 사회복지 기관이자 기독교 수도공동체이다. 기독교동광원수도회라고도 한다. 이현필이 1943년 남원에서 노동과 기도, 성경공부 중심의 수도 생활을 시작하였다. 1949년 주택과 부지를 마련하며 수도공동체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1950년 광주에 동광원이란 고아원을 설립하기로 하였다. 동광원은 수도공동체와 사회복지 기관의 기능을 수행했다. 기독교계와 사회의 비판으로, 1954년 8월 전라남도 행정당국이 동광원을 폐쇄하였다. 수도공동체로서 동광원은 1980년 남원으로 본원을 옮기고, 대외적으로 기독교동광원수도회란 명칭을 사용하였다.
‘맨발의 성자’라고 불리는 동광원 창설자 이현필(李鉉弼)은 스승 이세종의 가르침에 따라 1940년 출가하여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화학산 청소골에 들어가 기도와 성경공부에 전념하였다.
그는 2년 넘게 독수도(獨修道)하면서 깨달은 진리를 주변 사람들에게 전하기 시작하였는데, 기성 제도권 교회의 강단 설교와 목회에 실망을 느끼고 있던 신도들 가운데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제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1943년 봄 남원읍 오북환 집사가 인도하던 신앙 집회에 가서 성경공부를 인도한 결과, 오북환을 비롯한 서재선, 강남순, 강화선 등이 가족 단위로 남원 지리산 서리내와 갈보리, 화순 오감산, 곡성 등지에 흩어져 노동과 기도, 성경공부 중심의 수도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8·15해방이 되자 이현필은 흩어져 있던 제자들을 광주로 모았다. 이들은 처음에는 양림동 기독교청년회관과 양림교회 유치원(영양원)에서 생활하였지만, 1949년 방림동과 봉선동에 부지와 주택을 마련함으로 수도공동체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이현필은 여순사건 이후 전라남도 지역 고아들이 늘어나자, 1949년 화순군 도암면 봉하리 청소골에 초가집 마련하고 제자 김준호와 정귀주로 하여금 고아 8명을 돌보게 하였다.
1950년 1월 최흥종 목사와 정인세, 김천배, 백영흠, 최영욱 등 광주 지역 기독교 지도자와 유지들이 고아원을 설립하기로 하고 그 명칭을 동광원이라 하였다.
그 무렵 화학산에서 묵언 수도하고 있던 이현필은 고아원 설립을 망설이던 정인세에게 성경 말씀(야고보 1장 27절)을 적어 보내 동광원이 추구할 사회구제(고아와 과부를 돌봄)와 수도영성(세속에 물들지 않음)의 가치를 제시하였고, 그동안 훈련시킨 제자들을 고아원의 보모와 교사로 보냈다.
이때부터 이현필의 수도공동체에 동광원이란 명칭이 붙여지게 되었다. 이때부터 동광원은 수도공동체와 사회복지기관으로 두 가지 기능을 함께 수행했다.
6·25전쟁 후 고아가 급증하여 동광원의 수용인원이 6백 명을 넘게 되자 세속적 학문과 문화를 배제하고 수도원처럼 운용하는 동광원에 대한 기독교계와 사회의 비판이 점증하였다. 이에 1954년 8월 전라남도 행정당국은 동광원을 폐쇄하고 수용되었던 고아들을 도내 각 고아원에 분산 수용하였다. 이로써 고아원으로서 동광원은 사라졌다.
하지만 수도공동체로서의 동광원 명칭은 계속 남아 이현필과 그의 제자들에 의해 전라남도 광주와 화순, 남원, 나주, 해남, 함평, 진도, 그리고 경기도 능곡과 벽제에 동광원 수도공동체가 형성되었다.
1964년 3월 이현필이 별세한 후 동광원은 정인세와 오북환, 김준호, 정귀주, 강남순, 김은연, 김금남, 복은순, 박공순 등 남녀 제자들에 의해 수도공동체로서 기능을 계속 유지하였다
동광원 신조는 다음과 같다. ①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따라 은총으로 순결하게 산다. ②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모든 이웃을 사랑한다. ③ 지향이 같은 형제자매들이 모여 공동체 생활을 한다. ④ 모든 교파를 초월해서 담이 없이 산다. ⑤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가운데서 돌아본다.
또한 동광원의 동광원 생활 원칙은 다음과 같다. ① 정절을 지킬 것(순결), ② 가난하게 살 것(청빈), ③ 순명할 것(순명), ④. 깨끗한 사랑으로 교제할 것, ⑤ 부지런히 일해서 자급자족할 것이다.
동광원은 1980년 정인세 주선으로 남원시 대산면 운교리에 부지(147,400㎡)를 마련하고 본원을 그곳으로 옮기면서 대외적으로 기독교동광원수도회란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동광원 분원은 벽제(고양시 덕양구 벽제동)와 화순(화순군 도암면 호암리 중촌) 두 곳이다.
매년 1월에는 수도원 식구들만 모이는 ‘공동체 가족총회’, 8월에는 수도원에 살다가 세속으로 나가 사는 삼온회 회원들도 함께 참석하는 ‘여름 수양회’를 개최하고 있다. 동광원 수도생들이 많을 때는 220명까지 되었으나 2014년 현재 동광원(원장 김금남)에는 40명이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