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년 나라의 운명을 걱정하던 박승봉, 유성준 등을 중심으로 기호학교(지금의 중앙 중고등학교)가 설립되었고, 그 이듬해인 1909년에 김창제의 집에서 안동교회가 시작되었다. 양반마을인 북촌에서 외국인 선교사의 직접적인 개입 없이 한국인들만으로 시작한 교회였다는 점이 특징이다. 안동교회 설립의 주역들은 신앙과 교육에서 이 나라의 미래를 확신했는데, 박승봉은 “기독교가 아니면 나라를 구할 수 없다. 그리고 학교를 세워야만 백성들을 빨리 깨우칠 수 있다. 부산에서 신의주까지, 서울에서 회령까지 철로가 난다 하니 정거장이 서는 읍촌마다 교회와 학교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렇게 교회는 나라의 미래를 염려하며 준비해 갔던 양반들의 주도로 세워졌다.
또한 양반들이 많이 모이기는 했지만 옛 전통을 지키려 하기 보다는 오히려 개혁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 활동으로 초대목사 한석진의 개혁적인 목회와 웅장한 예배당 건축, 목사 김백원과 장로 박승봉의 3·1독립운동에서의 개인적인 활약, 창립 주역 중 하나인 김창제의 기독교 문화운동, 장로 이윤재의 한글 운동, 집사 유억겸의 연희전문학교 교장 및 과도정부의 문교부장으로서의 헌신, YWCA 및 절제운동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권사 유각경의 활약 등이 있다.
해방과 6·25전쟁으로 안동교회도 어려움을 겪었으나, 1979년 창립 70주년을 기념하여 새 성전 기공과 이듬해의 헌당은 교회 약진의 계기가 되었다. 1980년대 후반에는 영성 개발에 주력하였는데, 이는 교회의 성장과 그 표출로서의 선교에는 반드시 먼저 교회 내적인 신앙의 단련이 있어야 한다는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1990년대에 들어 한국 교회와 사회, 민족의 문제를 교회의 중심문제로 설정해 이를 해결하고자 관심을 기울였고, 1990년대 후반에는 기독교 문화선교에 노력하였다. 그러한 활동으로 농촌교회와 협력하고, 병원 선교 등을 통해 국내 선교활동을 진행하며, 또한 통일을 대비하여 북한선교를 담당하는 북방선교와 해외(몽골, 미얀마) 선교를 진행하고 있다. 2009년에는 창립 100주년 기념행사와 함께, 멕시코에 선교사를 파견하는 등 해외 활동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2014년에는 창립 105주년 기념 역사자료 전시회를 개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