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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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는 고려후기에서 조선전기에 걸쳐 정제된 우리나라 고유의 정형시이다. 3장 45자 내외로 구성되며, 유학자들의 정신과 정서를 표출하기에 적합한 형식이었다. 보통 장구장단이나 무릎장단에 맞추어 시조창으로 노래하는데, 조선후기에는 관현악 반주를 동반하고 전문가객이 노래를 전담하는 가곡창으로 발전했다. 김천택이 당시까지 구전으로만 전해지던 시조들을 수집하여 『청구영언』을 편찬한 이래 가집과 시조집이 속속 편찬되었다. 20세기에 들어 노래를 하지 않게 되어 음악적 특성은 사라졌지만 문학 갈래로서의 특성은 현대시조로 이어지고 있다.
시조 (時調)
시조는 고려후기에서 조선전기에 걸쳐 정제된 우리나라 고유의 정형시이다. 3장 45자 내외로 구성되며, 유학자들의 정신과 정서를 표출하기에 적합한 형식이었다. 보통 장구장단이나 무릎장단에 맞추어 시조창으로 노래하는데, 조선후기에는 관현악 반주를 동반하고 전문가객이 노래를 전담하는 가곡창으로 발전했다. 김천택이 당시까지 구전으로만 전해지던 시조들을 수집하여 『청구영언』을 편찬한 이래 가집과 시조집이 속속 편찬되었다. 20세기에 들어 노래를 하지 않게 되어 음악적 특성은 사라졌지만 문학 갈래로서의 특성은 현대시조로 이어지고 있다.
윤선도는 조선시대 공조좌랑, 한성부서윤, 사헌부지평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문인이다. 1587년(선조 20)에 태어나 1671년(현종 12)에 사망했다. 성균관 유생 시절부터 권신을 규탄하는 소를 올려 유배되기도 했다. 효종의 대군 시절 스승이었다. 남인 가문에서 태어나 집권 세력인 서인에 강력하게 맞서 왕권의 확립과 강화를 주장하다가 20여 년의 유배 생활과 19년의 은거생활을 했다. 병자호란 때 왕이 항복하자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막대한 유산을 바탕으로 보길도에 별서를 짓고 생활하며 「어부사시사」 등 탁월한 문학작품을 남겼다.
윤선도 (尹善道)
윤선도는 조선시대 공조좌랑, 한성부서윤, 사헌부지평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문인이다. 1587년(선조 20)에 태어나 1671년(현종 12)에 사망했다. 성균관 유생 시절부터 권신을 규탄하는 소를 올려 유배되기도 했다. 효종의 대군 시절 스승이었다. 남인 가문에서 태어나 집권 세력인 서인에 강력하게 맞서 왕권의 확립과 강화를 주장하다가 20여 년의 유배 생활과 19년의 은거생활을 했다. 병자호란 때 왕이 항복하자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막대한 유산을 바탕으로 보길도에 별서를 짓고 생활하며 「어부사시사」 등 탁월한 문학작품을 남겼다.
온조왕은 삼국시대 백제의 제1대 왕이다. 주몽과 졸본부여 왕의 둘째 딸 사이에서 큰아들 비류(沸流)에 이어 태어난 둘째 아들로 보고 있다. 온조가 위례성을 도읍으로 삼아 나라를 세운 시기는 서기전 1세기(서기전 18년) 또는 3세기 후반으로 보는 등 견해 차이가 있다. 온조왕 대의 마한 병합 기사는 백제가 성장해가는 과정에서 점차적으로 이루어졌던 일을 온조왕 연간의 일로 소급해 놓은 것이므로 절대 연대를 믿기 어렵다.
온조왕 (溫祚王)
온조왕은 삼국시대 백제의 제1대 왕이다. 주몽과 졸본부여 왕의 둘째 딸 사이에서 큰아들 비류(沸流)에 이어 태어난 둘째 아들로 보고 있다. 온조가 위례성을 도읍으로 삼아 나라를 세운 시기는 서기전 1세기(서기전 18년) 또는 3세기 후반으로 보는 등 견해 차이가 있다. 온조왕 대의 마한 병합 기사는 백제가 성장해가는 과정에서 점차적으로 이루어졌던 일을 온조왕 연간의 일로 소급해 놓은 것이므로 절대 연대를 믿기 어렵다.
단군고기는 단군신화와 고조선의 개국 사실을 기록한 역사서이다. 이 책의 내용은 『삼국유사』 권1 고조선조에 나오고 이 기록이 가장 오래되었다. 내용의 차이는 있지만 『제왕운기』·『응제시주』·『세종실록』 지리지에도 이 책을 인용하여 기록하고 있다. 이 책의 내용에 대해 일제강점기 일본인 학자들은 인용된 기록의 차이 등을 이유로 조작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단군고기는 오랜 세월 전승된 우리 민족의 시조 신앙으로 문화의 전승 면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국조 단군의 행적인 역사 기록으로 보아야 하는 동시에, 신화로서 바라보아야 한다.
단군고기 (壇君古記)
단군고기는 단군신화와 고조선의 개국 사실을 기록한 역사서이다. 이 책의 내용은 『삼국유사』 권1 고조선조에 나오고 이 기록이 가장 오래되었다. 내용의 차이는 있지만 『제왕운기』·『응제시주』·『세종실록』 지리지에도 이 책을 인용하여 기록하고 있다. 이 책의 내용에 대해 일제강점기 일본인 학자들은 인용된 기록의 차이 등을 이유로 조작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단군고기는 오랜 세월 전승된 우리 민족의 시조 신앙으로 문화의 전승 면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국조 단군의 행적인 역사 기록으로 보아야 하는 동시에, 신화로서 바라보아야 한다.
조선전기 형조참판, 호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문인.
이현보 (李賢輔)
조선전기 형조참판, 호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문인.
북한 평양직할시 역포구역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 제1대 동명성왕의 능. 왕릉.
동명왕릉 (東明王陵)
북한 평양직할시 역포구역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 제1대 동명성왕의 능. 왕릉.
소악부는 우리나라의 가요를 한시 절구로 번역한 악부시이다. 고려의 속요나 조선의 시조와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형식은 기본적으로 5자나 7자로 이루어진다. 대표적으로 고려의 이제현이 지은 작품으로 「처용가」, 「서경별곡」, 「정과정」이 있다.
소악부 (小樂府)
소악부는 우리나라의 가요를 한시 절구로 번역한 악부시이다. 고려의 속요나 조선의 시조와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형식은 기본적으로 5자나 7자로 이루어진다. 대표적으로 고려의 이제현이 지은 작품으로 「처용가」, 「서경별곡」, 「정과정」이 있다.
조선시대 『수남방옹유고』를 저술한 시인.
정훈 (鄭勳)
조선시대 『수남방옹유고』를 저술한 시인.
조선 전기에, 대동승, 삼등, 함흥 등 8고을의 수령을 역임한 문신.
양사언 (楊士彦)
조선 전기에, 대동승, 삼등, 함흥 등 8고을의 수령을 역임한 문신.
신라오묘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에서 시조 혁거세묘·신궁과 함께 설행한 유교적 종묘제이다. 『삼국사기』 제사지에는 시조 혁거세묘·신궁과 혜공왕 대에 처음 정한 5묘를 종묘로 규정하였다. 중대에 무열왕계가 새로이 5묘제를 수용한 것은, 그들의 왕통이 지증-법흥-진흥-진지-문흥을 잇는 대종(大宗)으로, 소종(小宗)인 ‘진평-선덕-진덕’의 중고기 왕실과 구분함으로써 정통성을 내세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혜공왕 대에는 5묘제에 기왕의 종법제 원리와 조공종덕의 원리를 더하였고, 애장왕 대에는 이를 지키면서 사실상 7묘제를 지향하였다.
신라 오묘 (新羅 五廟)
신라오묘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에서 시조 혁거세묘·신궁과 함께 설행한 유교적 종묘제이다. 『삼국사기』 제사지에는 시조 혁거세묘·신궁과 혜공왕 대에 처음 정한 5묘를 종묘로 규정하였다. 중대에 무열왕계가 새로이 5묘제를 수용한 것은, 그들의 왕통이 지증-법흥-진흥-진지-문흥을 잇는 대종(大宗)으로, 소종(小宗)인 ‘진평-선덕-진덕’의 중고기 왕실과 구분함으로써 정통성을 내세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혜공왕 대에는 5묘제에 기왕의 종법제 원리와 조공종덕의 원리를 더하였고, 애장왕 대에는 이를 지키면서 사실상 7묘제를 지향하였다.
고려전기 고려개국공신 1등에 책록된 공신.
복지겸 (卜智謙)
고려전기 고려개국공신 1등에 책록된 공신.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56대 경순왕의 다섯째 아들인 왕자.
김석 (金錫)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56대 경순왕의 다섯째 아들인 왕자.
해방 이후 『초적』, 『의상』, 『느티나무의 말』 등을 저술한 시인.
김상옥 (金相沃)
해방 이후 『초적』, 『의상』, 『느티나무의 말』 등을 저술한 시인.
고려전기 대광, 태사삼중대광 등을 역임한 무신.
박술희 (朴述熙)
고려전기 대광, 태사삼중대광 등을 역임한 무신.
신궁은 신라시대에 시조(始祖)를 제사하던 성소(聖所)이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의 기록을 근거로 5세기 말에서 6세기 초에 설치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박혁거세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설과 김씨왕조에 의해 설립되었으므로 김알지 등 김씨 왕에게 제사지냈다는 설이 있다. 이외에 초월적 신화적 존재로서 곡령(穀靈) 또는 태양신이라는 주장도 있다. 왕이 즉위한 다음 해 또는 후년 봄에 신궁에서 즉위의례를 거행하였다. 6세기 후반 일본의 이세신궁(伊勢神宮)의 성립과 야와타신[八幡神]신앙의 토대가 되었다는 견해도 있다.
신궁 (神宮)
신궁은 신라시대에 시조(始祖)를 제사하던 성소(聖所)이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의 기록을 근거로 5세기 말에서 6세기 초에 설치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박혁거세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설과 김씨왕조에 의해 설립되었으므로 김알지 등 김씨 왕에게 제사지냈다는 설이 있다. 이외에 초월적 신화적 존재로서 곡령(穀靈) 또는 태양신이라는 주장도 있다. 왕이 즉위한 다음 해 또는 후년 봄에 신궁에서 즉위의례를 거행하였다. 6세기 후반 일본의 이세신궁(伊勢神宮)의 성립과 야와타신[八幡神]신앙의 토대가 되었다는 견해도 있다.
장가에 대비하여 악장의 길이가 그보다 짧은 모든 종류의 가곡.
단가 (短歌)
장가에 대비하여 악장의 길이가 그보다 짧은 모든 종류의 가곡.
개항기 때, 공조판서, 형조판서, 판의금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세보 (李世輔)
개항기 때, 공조판서, 형조판서, 판의금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해방 이후 『청저집』, 『석류』 등을 저술한 시인. 시조시인.
이영도 (李永道)
해방 이후 『청저집』, 『석류』 등을 저술한 시인. 시조시인.
해방 이후 「가사」 전승자로 지정된 예능보유자. 가곡·가사명인.
정경태 (鄭坰兌)
해방 이후 「가사」 전승자로 지정된 예능보유자. 가곡·가사명인.
고려 전기에, 첨사부녹사, 우정언, 우승선, 태자소보 등을 역임한 문신.
김존중 (金存中)
고려 전기에, 첨사부녹사, 우정언, 우승선, 태자소보 등을 역임한 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