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식민지_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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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3월에 제정, 공포된 「농공은행조례」에 의거해 전국 주요 도시에 설립되었던 지방은행.
농공은행 (農工銀行)
1906년 3월에 제정, 공포된 「농공은행조례」에 의거해 전국 주요 도시에 설립되었던 지방은행.
조선건축회는 1922년 4월 30일에 한반도 내 일본인 건축인들에 의해 결성된 건축단체이다. 발기 당시 회원들 대부분은 총독부의 관리·건축가·시공자 등 건축 관계자들이었다. 한인으로는 김응순이 유일했다. 9명의 이사가 있었으며 회장은 모두 총독부 건축 관료들이었다. 『조선과 건축』이라는 기관지를 발행했다. 조선건축회 활동은 1929년까지 경성의 도시문제와 주택문제에 집중되었다. 이 단체는 2차 세계대전 종전으로 일본이 패망할 때까지 존재했다. 이들의 기관지는 조선총독부의 정책과 일인들의 건축 활동을 연구하는 자료로 이용된다.
조선건축회 (朝鮮建築會)
조선건축회는 1922년 4월 30일에 한반도 내 일본인 건축인들에 의해 결성된 건축단체이다. 발기 당시 회원들 대부분은 총독부의 관리·건축가·시공자 등 건축 관계자들이었다. 한인으로는 김응순이 유일했다. 9명의 이사가 있었으며 회장은 모두 총독부 건축 관료들이었다. 『조선과 건축』이라는 기관지를 발행했다. 조선건축회 활동은 1929년까지 경성의 도시문제와 주택문제에 집중되었다. 이 단체는 2차 세계대전 종전으로 일본이 패망할 때까지 존재했다. 이들의 기관지는 조선총독부의 정책과 일인들의 건축 활동을 연구하는 자료로 이용된다.
조선교육령은 1911년 조선총독부에서 제정한 식민지 조선의 교육정책과 방침에 대한 칙령이다. 몇 차례 수시 부분 개정이 이루어졌으나 제정 및 제정 수준의 전면적인 개정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크게 4차례 제개정되었다. 1911년 8월 23일 조선교육령이 제정, 공포되었고, 1922년 2월 6일 제2차 조선교육령이 개정되었다. 1938년 3월 4일 제3차 조선교육령이 공포되고, 1943년 3월 8일 제4차 조선교육령이 공포되었다. 1945년 7월 1일자로 전시교육령이 공포되었으나 시행되지 못했다.
조선교육령 (朝鮮敎育令)
조선교육령은 1911년 조선총독부에서 제정한 식민지 조선의 교육정책과 방침에 대한 칙령이다. 몇 차례 수시 부분 개정이 이루어졌으나 제정 및 제정 수준의 전면적인 개정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크게 4차례 제개정되었다. 1911년 8월 23일 조선교육령이 제정, 공포되었고, 1922년 2월 6일 제2차 조선교육령이 개정되었다. 1938년 3월 4일 제3차 조선교육령이 공포되고, 1943년 3월 8일 제4차 조선교육령이 공포되었다. 1945년 7월 1일자로 전시교육령이 공포되었으나 시행되지 못했다.
허천강수력발전소는 함경남도 허천군에 있는 유역변경식 수력발전소이다. 일본질소비료주식회사가 개발을 주도한 세 번째 수력발전소로, 1936년 착공해 1943년 제4발전소까지 완공해 총 34만㎾의 발전설비를 갖추었다. 생산된 전력 중 2/3만 공공용 전원으로 식민지 조선의 전력 체계에 편입되었고, 나머지 1/3은 흥남비료공장에서 독점으로 사용하였다.
허천강수력발전소 (虛川江水力發電所)
허천강수력발전소는 함경남도 허천군에 있는 유역변경식 수력발전소이다. 일본질소비료주식회사가 개발을 주도한 세 번째 수력발전소로, 1936년 착공해 1943년 제4발전소까지 완공해 총 34만㎾의 발전설비를 갖추었다. 생산된 전력 중 2/3만 공공용 전원으로 식민지 조선의 전력 체계에 편입되었고, 나머지 1/3은 흥남비료공장에서 독점으로 사용하였다.
「전억망 일대기」는 1933년 최영수가 『동아일보』에 연재한 네칸만화이다. 식민지 조선의 빈곤한 지식인의 표상인 「전억망 일대기」는 실업편, 연애편, 무자막, 종결편 총 4편의 시리즈로 구성되었다. 근대적 문물에 빛나는 경성의 속물적 인간 군상과 그 이면에 가려진 비참한 조선 민중의 현실을 풍자했다. 스스로를 룸펜이라 자조하는 전억망은 시대적 상황을 고민하고 비판적 시선으로 세태를 읽어내며 당대 독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전억망 일대기 (전억망 一代記)
「전억망 일대기」는 1933년 최영수가 『동아일보』에 연재한 네칸만화이다. 식민지 조선의 빈곤한 지식인의 표상인 「전억망 일대기」는 실업편, 연애편, 무자막, 종결편 총 4편의 시리즈로 구성되었다. 근대적 문물에 빛나는 경성의 속물적 인간 군상과 그 이면에 가려진 비참한 조선 민중의 현실을 풍자했다. 스스로를 룸펜이라 자조하는 전억망은 시대적 상황을 고민하고 비판적 시선으로 세태를 읽어내며 당대 독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세모만화는 1919년 12월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에 게재된 만화이다. 식민지 조선의 세모 풍경을 한 칸으로 그린 만평을 의미한다. 『매일신보』는 1910년대 초반부터 식민지 조선의 세모 풍경과 세태를 담은 삽화를 꾸준히 게재해왔으나, 이처럼 '세모만화'라는 명칭으로 등장한 것은 1919년이 처음이다. 작자 미상이며, 1919년 12월에 잠시 등장했다가 ‘시절만화’로 대체된다.
세모만화 (歲暮漫畵)
세모만화는 1919년 12월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에 게재된 만화이다. 식민지 조선의 세모 풍경을 한 칸으로 그린 만평을 의미한다. 『매일신보』는 1910년대 초반부터 식민지 조선의 세모 풍경과 세태를 담은 삽화를 꾸준히 게재해왔으나, 이처럼 '세모만화'라는 명칭으로 등장한 것은 1919년이 처음이다. 작자 미상이며, 1919년 12월에 잠시 등장했다가 ‘시절만화’로 대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