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신상옥"
검색결과 총 7건
1985년 북한에서 신상옥 감독이 강경애의 원작을 각색하여 만든 극영화.
소금
1985년 북한에서 신상옥 감독이 강경애의 원작을 각색하여 만든 극영화.
신필름은 1960년 신상옥 감독이 설립한 한국의 첫 번째 기업형 영화사이다. 미국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사를 모델로 하여 영화 제작에 필요한 인력을 자체 조달하기 위해 신상옥이 건설했다. 자신의 아내인 최은희를 비롯해 김승호, 신영균, 이예춘, 남궁원, 태현실 등을 전속 배우로 채용했다. 용산에 지어진 1천 평 규모의 촬영소에 촬영 스튜디오와 녹음실, 편집실, 영사실, 부설 연기자 양성소 등을 만들었다. 1961년부터 1970년까지 총 102편을 제작했으며, 신필름 아래에 있던 안양필름이 제작한 영화까지 합하면 150편이 넘는다.
신필름 (申Film)
신필름은 1960년 신상옥 감독이 설립한 한국의 첫 번째 기업형 영화사이다. 미국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사를 모델로 하여 영화 제작에 필요한 인력을 자체 조달하기 위해 신상옥이 건설했다. 자신의 아내인 최은희를 비롯해 김승호, 신영균, 이예춘, 남궁원, 태현실 등을 전속 배우로 채용했다. 용산에 지어진 1천 평 규모의 촬영소에 촬영 스튜디오와 녹음실, 편집실, 영사실, 부설 연기자 양성소 등을 만들었다. 1961년부터 1970년까지 총 102편을 제작했으며, 신필름 아래에 있던 안양필름이 제작한 영화까지 합하면 150편이 넘는다.
영화제작 과정에서 연기·촬영·녹음·편집과정 등을 지휘하고 감독하는 총책임자.
영화감독 (映畵監督)
영화제작 과정에서 연기·촬영·녹음·편집과정 등을 지휘하고 감독하는 총책임자.
신상옥은 해방 이후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연산군」, 「빨간 마후라」 등의 작품에 관여한 영화인으로 영화감독이자 영화제작자이다. 본명은 신태서이다. 1950년대 중반부터 「꿈」, 「젊은 그들」, 「무영탑」, 「성춘향」, 「벙어리 삼룡이」 등 다양한 작품을 연출했다. 1978년 홍콩에서 납북되어 북한에서 활동하다가 1986년에 북한을 탈출하였다. 2006년에 사망했다. 뛰어난 테크닉으로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연출한 영화감독으로 영화산업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사후 한국 영화계에 끼친 지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신상옥 (申相玉)
신상옥은 해방 이후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연산군」, 「빨간 마후라」 등의 작품에 관여한 영화인으로 영화감독이자 영화제작자이다. 본명은 신태서이다. 1950년대 중반부터 「꿈」, 「젊은 그들」, 「무영탑」, 「성춘향」, 「벙어리 삼룡이」 등 다양한 작품을 연출했다. 1978년 홍콩에서 납북되어 북한에서 활동하다가 1986년에 북한을 탈출하였다. 2006년에 사망했다. 뛰어난 테크닉으로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연출한 영화감독으로 영화산업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사후 한국 영화계에 끼친 지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1985년 북한에서 신상옥 감독이 고려시대 민담을 기초로 만든 극영화.
불가사리
1985년 북한에서 신상옥 감독이 고려시대 민담을 기초로 만든 극영화.
한운사(韓雲史) 원작, 신상옥(申相玉) 감독의 35㎜ 천연색 영화.
빨간 마후라 (빨간 mahurâ)
한운사(韓雲史) 원작, 신상옥(申相玉) 감독의 35㎜ 천연색 영화.
한국전쟁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한운사의 소설 『이 생명 다하도록』(1960)을 신상옥 감독이 영화화한 신상옥 프로덕션 10주년 기념작.
이 생명 다하도록 (이 生命 다하도록)
한국전쟁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한운사의 소설 『이 생명 다하도록』(1960)을 신상옥 감독이 영화화한 신상옥 프로덕션 10주년 기념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