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김해(金海). 본명은 김말봉(金末鳳). 부산 출생. 일신여학교(日新女學校)를 3년 수료한 뒤 서울에 와 1918년 정신여학교(貞信女學校)를 졸업하였다.
그 뒤 황해도 재령(載寧)의 명신학교(明信學校) 교원으로 근무하다가, 1920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다시 고등학교 과정을 거쳐 1927년 교토[京都]에 있는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 영문과를 졸업하였다. 1927년 귀국하여 중외일보 기자로 취직, 전상범(全尙範)과 결혼하였다.
이 무렵까지 문학에 대하여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나 기자로서 쓴 탐방기나 수필이 주위의 호평을 받자, 1932년 보옥(步玉)이라는 필명으로 『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망명녀(亡命女)」라는 단편소설로 응모, 당선됨으로써 문단에 등단하였다.
이어서 「고행(苦行)」 · 「편지」 등을 발표했고, 1935년 『 동아일보』에 장편소설 「밀림(密林)」을, 1937년 『 조선일보』에 「찔레꽃」을 연재함으로써, 일약 통속소설가로서의 자리를 굳히게 되었다.
전상범과 사별한 뒤, 이종하(李鍾河)와 재혼, 부산에 살면서 광복 때까지 작품활동을 중단하였다. 광복 후 서울로 올라와 작품활동을 다시 시작하여 1945년 「카인의 시장(市場)」과 「화려한 지옥(地獄)」 등을 발표하는 한편 사회운동, 즉 공창폐지운동(公娼廢止運動)과 박애원(博愛院) 경영 등의 일을 하였다.
1949년 하와이 시찰여행을 하고 온 뒤, 한국전쟁 때는 부산에서 피난생활을 하던 문인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1952년 베니스에서 열린 세계예술가대회에 참석하는 등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도 왕성한 작품활동을 전개하였다.
「태양의 권속(眷屬)」 · 「파도에 부치는 노래」 · 「새를 보라」 · 「바람의 향연(饗宴)」 · 「푸른 날개」 · 「옥합을 열고」 · 「찬란한 독배(毒盃)」 · 「생명(生命)」 · 「길」 · 「사슴」 · 「장미의 고향」 등을 잇달아 발표하였다.
1954년 우리나라 기독교 최초의 여성 장로(長老)가 되었다.
처음부터 흥미 중심의 통속소설, 즉 애욕의 갈등 속에서도 건전하고 정의가 이기는 모랄을 지니되,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쓴다는 신조를 가진 소설가였다.
대체적으로 순수문학에만 집착하는 문단을 향하여 “순수귀신(純粹鬼神)을 버리라.”고까지 하였으나, 그러한 주장은 아직도 일반화되고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