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양녕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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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온은 조선전기 호조판서, 좌군총제, 판한성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375년(우왕 1)에 태어나 1418년(세종 즉위)에 사망했고, 세종의 장인이다. 고려조정에서 벼슬을 하다가 아버지 심덕부와 함께 조선 창업에 참여하여 간관의 직무를 맡아보았다. 세종이 즉위하자 국구로서 영의정이 되어 정치의 실권을 가까이하기에 이르렀다. 1418년에 사은사로 명나라에 가게 되었는데, 이때 동생이 상왕 태종의 병권장악을 비난한 것이 화근이 되어, 이듬해 귀국 도중에 의주에서 체포되어 수원으로 압송, 사사되었다. 문종 때에 관직이 복위되었다.
심온 (沈溫)
심온은 조선전기 호조판서, 좌군총제, 판한성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375년(우왕 1)에 태어나 1418년(세종 즉위)에 사망했고, 세종의 장인이다. 고려조정에서 벼슬을 하다가 아버지 심덕부와 함께 조선 창업에 참여하여 간관의 직무를 맡아보았다. 세종이 즉위하자 국구로서 영의정이 되어 정치의 실권을 가까이하기에 이르렀다. 1418년에 사은사로 명나라에 가게 되었는데, 이때 동생이 상왕 태종의 병권장악을 비난한 것이 화근이 되어, 이듬해 귀국 도중에 의주에서 체포되어 수원으로 압송, 사사되었다. 문종 때에 관직이 복위되었다.
1456년 왕세자와 5공신 및 그 자손들과 함께 회맹하여 천지산천과 종묘사직에 고하고 연명한 것을 모아 엮은 관찬서.
오공신회맹문 (五功臣會盟文)
1456년 왕세자와 5공신 및 그 자손들과 함께 회맹하여 천지산천과 종묘사직에 고하고 연명한 것을 모아 엮은 관찬서.
조선전기 중추원부사, 동지중추부사, 동지중추원사 등을 역임한 무신.
이사검 (李思儉)
조선전기 중추원부사, 동지중추부사, 동지중추원사 등을 역임한 무신.
조선시대 선무공신 3등에 책록된 공신. 무신.
이순신 (李純信)
조선시대 선무공신 3등에 책록된 공신. 무신.
조선 중기에, 공조참판, 형조판서, 우참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축 (李軸)
조선 중기에, 공조참판, 형조판서, 우참찬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후기 이극선이 양녕대군의 행적과 지덕사에 관한 기록을 모아 1876년에 간행한 전기.
지덕지 (至德誌)
조선후기 이극선이 양녕대군의 행적과 지덕사에 관한 기록을 모아 1876년에 간행한 전기.
조서안은 조선 전기 세종~세조 대 병조참판, 황해도관찰사, 개성부 유수, 지중추원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개국공신 조반의 아들이다. 세종 대 문과에 급제해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세종 대 대간으로 있으면서 양녕대군을 멀리해야 한다는 내용의 상소를 자주 올렸고, 승지 직에 제수되었다. 명나라에 사은사로 파견되었으며, 문종과 단종 즉위 후에도 도관찰사 직과 개성부유수 등에 임명되었다. 생활이 검소하였고, 사대부의 풍모를 지녔던 인물로 주변의 높은 평가를 받았던 인물이다.
조서안 (趙瑞安)
조서안은 조선 전기 세종~세조 대 병조참판, 황해도관찰사, 개성부 유수, 지중추원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개국공신 조반의 아들이다. 세종 대 문과에 급제해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세종 대 대간으로 있으면서 양녕대군을 멀리해야 한다는 내용의 상소를 자주 올렸고, 승지 직에 제수되었다. 명나라에 사은사로 파견되었으며, 문종과 단종 즉위 후에도 도관찰사 직과 개성부유수 등에 임명되었다. 생활이 검소하였고, 사대부의 풍모를 지녔던 인물로 주변의 높은 평가를 받았던 인물이다.
효령대군은 조선시대 제3대 태종의 둘째 아들인 왕자이다. 1396년(태조 5)에 태어나 1486년(성종 17)에 사망했다. 동생인 충녕대군이 세자로 책봉된 뒤, 선가에 적을 두고 불교를 숭상했다. 1429년(세종 11) 관악사 삼창을 비롯하여 회암사 중수를 건의하고 원각사 창건 시에는 조성도감 도제조로 활동하는 등 여러 불사를 주관했다. 『법화경』과 『금강경』 등 불경을 언해하고 간행했다. 왕실족보 관리, 종헌관 활동 등 종친 활동에도 적극 나섰으며, 세종 대에서 성종 대에 걸쳐 극진한 존경과 대우를 받으며 살다가 9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효령대군 (孝寧大君)
효령대군은 조선시대 제3대 태종의 둘째 아들인 왕자이다. 1396년(태조 5)에 태어나 1486년(성종 17)에 사망했다. 동생인 충녕대군이 세자로 책봉된 뒤, 선가에 적을 두고 불교를 숭상했다. 1429년(세종 11) 관악사 삼창을 비롯하여 회암사 중수를 건의하고 원각사 창건 시에는 조성도감 도제조로 활동하는 등 여러 불사를 주관했다. 『법화경』과 『금강경』 등 불경을 언해하고 간행했다. 왕실족보 관리, 종헌관 활동 등 종친 활동에도 적극 나섰으며, 세종 대에서 성종 대에 걸쳐 극진한 존경과 대우를 받으며 살다가 9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