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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길 소영자 유적은 중국 길림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 연길시 소영진 소영촌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덤군이다. 1937년 일본 관동군이 채석 작업을 하던 중 유물을 발견하면서 조사되기 시작하였다. 수백 기의 돌널무덤이 축조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마제 석기 및 타제 석기, 각종 뼈로 만든 도구, 인골 등이 출토되었다. 출토된 유물의 일부는 현재 서울대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소영자 유적의 형성 연대는 두만강 유역 청동기 중기의 가장 이른 단계로 여겨진다. 이 유적은 선사시대 무덤군 가운데 일제 강점기에 발굴 조사가 이루어진 거의 유일한 유적으로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연길 소영자 유적 (延吉 小營子 遺蹟)
연길 소영자 유적은 중국 길림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 연길시 소영진 소영촌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덤군이다. 1937년 일본 관동군이 채석 작업을 하던 중 유물을 발견하면서 조사되기 시작하였다. 수백 기의 돌널무덤이 축조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마제 석기 및 타제 석기, 각종 뼈로 만든 도구, 인골 등이 출토되었다. 출토된 유물의 일부는 현재 서울대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소영자 유적의 형성 연대는 두만강 유역 청동기 중기의 가장 이른 단계로 여겨진다. 이 유적은 선사시대 무덤군 가운데 일제 강점기에 발굴 조사가 이루어진 거의 유일한 유적으로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해방 이후에 결성된 중국 길림성 지역의 정치 단체.
길림조선인해방동맹 (吉林朝鮮人解放同盟)
해방 이후에 결성된 중국 길림성 지역의 정치 단체.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는 성 베네딕도의 수도 규칙을 따르는 올리베따노 연합회의 부산 자립 수녀회이다. 1931년부터 활동한 ‘연길 성 십자가 수녀원’이 모태다. 해방 후 수녀원이 폐쇄되자 한국인 수녀 14명이 월남해 청주와 부산 등에서 활동을 재개했다. 1951년 부산에서 성 분도자선병원을 개원했고, 교육과 사회복지 활동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1973년 공식 명칭을 정했고, 1981년 교황청으로부터 자립 수녀회로 독립했다. 1990년부터 해외 진출을 시작했다. 2012년 현재 한국의 12개 교구와 6개국에서 사회복지, 교육, 의료 활동에 종사하고 있다.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Olivetano 聖 Benedictus 修女會)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는 성 베네딕도의 수도 규칙을 따르는 올리베따노 연합회의 부산 자립 수녀회이다. 1931년부터 활동한 ‘연길 성 십자가 수녀원’이 모태다. 해방 후 수녀원이 폐쇄되자 한국인 수녀 14명이 월남해 청주와 부산 등에서 활동을 재개했다. 1951년 부산에서 성 분도자선병원을 개원했고, 교육과 사회복지 활동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1973년 공식 명칭을 정했고, 1981년 교황청으로부터 자립 수녀회로 독립했다. 1990년부터 해외 진출을 시작했다. 2012년 현재 한국의 12개 교구와 6개국에서 사회복지, 교육, 의료 활동에 종사하고 있다.
간도교회는 대한제국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천주교인들이 활동했던 간도 지역의 천주교조직이자 신앙공동체이다. 1897년 원산 본당 브레 신부의 순방으로 간도 지역의 천주교 조직이 건설되었으며, 이듬해 대교동 공소가 설정되었다. 1899년까지 각지에 공소와 교우촌, 그리고 가톨릭 교리와 한글을 가르치는 소규모 학교가 세워졌다. 이후 화룡서숙과 덕흥학교, 대립자 해성학교 등이 설립되었다. 1921년 조선 원산교구로 이관되었고, 1928년 연길지목구로 분리되었다. 간도교회는 북간도 지역에서 한국 천주교회의 독립운동을 주도하고 애국심을 고양시켰다고 평가받고 있다.
간도교회 (間島敎會)
간도교회는 대한제국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천주교인들이 활동했던 간도 지역의 천주교조직이자 신앙공동체이다. 1897년 원산 본당 브레 신부의 순방으로 간도 지역의 천주교 조직이 건설되었으며, 이듬해 대교동 공소가 설정되었다. 1899년까지 각지에 공소와 교우촌, 그리고 가톨릭 교리와 한글을 가르치는 소규모 학교가 세워졌다. 이후 화룡서숙과 덕흥학교, 대립자 해성학교 등이 설립되었다. 1921년 조선 원산교구로 이관되었고, 1928년 연길지목구로 분리되었다. 간도교회는 북간도 지역에서 한국 천주교회의 독립운동을 주도하고 애국심을 고양시켰다고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