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패망 이후 길림성 일대에 거주하였던 조선인들은 곳곳에서 해방동맹을 결성하였다. 그 뒤 길림성 조선인 민주동맹으로 통합되었으나 별다른 기능을 하지 못한 채 해체되었다.
일본의 패망으로 치안이 무너지자, 만주의 여러 곳에서는 비적(匪賊)이 횡행하고 민족간의 갈등이 심해졌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많은 조선인들은 그 때까지 일구었던 삶의 토대를 버리고 귀국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귀국하는 대신 삶의 터전을 지키고자 하였던 조선인들은 각지에서 정치 혹은 군사 단체를 건립하였다. 장춘(長春) 길림(吉林) 일대의 조선인들도 각각 조선인 해방동맹을 결성하였다. 조선인 해방동맹은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조선인을 대표하는 기구로써 조선인의 이익을 위하여 활동하였다.
1946년 봄에 만주에서 국민당과 공산당 사이의 내전이 치열해지자, 중국 공산당의 결정에 의해서 이들 여러 단체는 통일전선체적 성격을 갖는 길림성 조선인 민주연맹으로 재편성되었다. 조선혁명당에서 활동한 바 있던 이호원은 이 단체의 책임자가 되었다. 그 뒤 국민당 군대가 장춘을 점령하고 길림으로 쳐들어오면서 길림성 조선인 민주연맹은 연길(延吉)로 이동하였다. 하지만 길림성 조선인 민주연맹의 주요 기능은 농민, 노동 등 중국 공산당의 여러 단체에게 이관되었기 때문에, 토지개혁을 보조하거나 전선에 나간 군인 가족의 원호(援護) 등 보조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 뒤 농촌에서 계급투쟁이 강화되면서, 민족 성격을 지닌 길림성 조선인 민주연맹은 거의 역할을 하지 못하다가 1947년 5월경 해체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