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북도에서 출생하였다. 본명은 최석용(崔錫湧)이고, 우강 최석순의 동생이다.
상해 동남의학원을 졸업하였고, 경성제국대학 의과에서 실습한 적이 있다. 중국 사천성 만현(萬縣)에서 병원을 운영하면서 조선민족혁명당(朝鮮民族革命黨) 만현 특구 책임을 맡기도 하였다. 1941년 1월 초에 조선의용대(朝鮮義勇隊) 주력 부대는 중경(重慶)을 떠나 화북(華北)으로 갔는데, 최성오는 이들이 만현에 도착하자 잠자리와 음식을 제공하는 등 융숭하게 대접하였다. 조선의용대 대원들은 이날 노래 경연과 연극 공연 등 오락회를 가졌고, 최성오는 대원 전원에게 흉부 엑스레이 검사를 실시하여 결과를 알려주기도 하였다.
1942년에 인도에 주둔한 영국군 총사령부가 조선민족혁명당에게 공작원 파견을 요청하자, 김원봉(金元鳳)의 명령으로 주세민(周世敏)과 함께 인도로 가서 영국군과 협상하였다. 그 뒤 대한민국임시의정원 비서장을 맡는 등 항일운동에 매진하였지만, 해방 이후의 행적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