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열단 단원으로 조선의용대와 한국광복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함경북도 출신으로 별명은 김운학(金雲學)이다.
미국에서 거주하다가 중국으로 와서 남경(南京) 중앙대학을 졸업하였다. 그 뒤 의열단(義烈團)에 가담하였고, 1933년 9월에 조선혁명간부학교 2기로 입학하여 1934년 3월에 졸업하였으며, 곧바로 중앙육군군관학교(中央陸軍軍官學校) 낙양분교(洛陽分校)에 들어갔다.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장개석이 이끄는 국민정부는 1937년 12월에 중앙육군군관학교 성자분교(星子分校, 이후 강릉분교)에 한인반을 설치하였는데, 이곳에서 번역관으로 활동하였다. 1938년 10월에 조선의용대가 창설되자 가담하였고, 같은 해 말에는 조선의용대 대본부를 따라 광서성 계림(桂林)으로 이동한 뒤 중국의 요청을 받아들여 일본군 포로를 대상으로 한 교육 사업에 관여하였다.
1942년에는 조선민족혁명당 당수 김원봉(金元鳳)의 지시에 의해 최성오(崔省吾)와 함께 인도로 가서 조선의용대와 영국군의 합작문제를 협상하였다. 그 뒤 조선의용대 일부와 한국광복군이 통합하면서 한국광복군 제1대에서 활동하였다. 해방 후에는 남한으로 귀국하여 조선민족혁명당 중앙집행위원, 민주주의민족전선 중앙위원회 상무위원을 맡아 활동하였다. 뒤에 월북하여 북한 외무성 미해방구 담당부장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