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담양 출신이다.
1919년 3·1독립운동 이후 만주로 망명하여 애국청년혈성단(愛國靑年血誠團)에 가입하였고, 서무부장에 임명되어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그 뒤 남경(南京)으로 옮겨와 의열단(義烈團)에 가입하였고, 황포군관학교(黃埔軍官學校) 4기를 졸업한 뒤 중국군 고급장교를 지냈다. 1931년 3월∼1936년에는 의열단 간부학교에서 전술학 교관을 역임하였다. 1935년에는 조선민족혁명당(朝鮮民族革命黨)에 가입하여 사천성에서 김원봉(金元鳳) 등과 함께 제1특별구당부를 조직하였다. 1940년에 조선의용대 전방공작대원으로 임명되어 활동하다가, 조선의용대가 한국광복군에 편입되자 제1지대 제1구대장으로 선임되었다. 중국군과 긴밀한 협조 아래 일본 점령지역에 대한 초모(招募) 공작 및 대적(對敵) 선전공작, 일본군포로 심문과 일본문서 번역, 적의 정보수집 등의 임무를 맡았고, 신임대원에 대한 교육을 수행하였다. 그러나 광복 후에 귀국하지 못한 채 상해에서 사망하였다.
1977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