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흑보안총대 조선독립대대 ( )

정치
단체
중국 북만주 지역의 조선인이 만든 군대.
이칭
이칭
조선의용군 제3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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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중국 북만주 지역의 조선인이 만든 군대.
개설

조선의용군 일원인 주덕해 등이 해방 후 하얼빈으로 이동한 뒤 조선의용군 제3지대를 만들기 전에 흡수한 조선인 부대로, 북만주 지역 조선인들을 보호하고 반국민당 투쟁을 전개하였다.

연원 및 변천

중국 관내지방에서 활동하였던 조선의용군은 해방 후 만주의 거점 도시인 심양(瀋陽)으로 이동하였다. 심양의 회의 결정에 따라 조선의용군은 다시 남만주, 연변(延邊), 북만주 등으로 나뉘어 나아가 머물렀다. 그 가운데 주덕해(朱德海, 1911∼1972)가 이끄는 19명은 북만주의 거점 도시인 하얼빈(哈爾賓)으로 옮겼다. 해방 후에 하얼빈을 비롯한 북만주 여러 곳에는 조선인들이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부대를 만들었고, 이를 통합하여 길흑보안총대 조선독립대대라고 불렀다. 주덕해 일행은 1945년 11월 25일에 이 부대를 재편성하여 빈현(賓縣) 배극도에서 조선의용군 제3지대를 결성하였다. 지대장은 이상조가 맡았다.

그 뒤 조선의용군 제3지대는 북만주 여러 곳에서 조선인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활동을 펴 나가면서 반국민당 투쟁을 전개하였다. 특히 국민당 지방부대와 맞서 목란현성(木蘭縣城) 전투에 가담하고 통하(通河) 방정(方正) 공격전에 참전하기도 하였다. 한편 사리툰 전투에서는 많은 대원이 일시에 전사하는 상황을 맞기도 하였다. 1946년 봄에 중국공산당의 방침 결정에 따라 조선의용군 제3지대는 동북민주련군 송강군구 독립8단으로 재편성되었고, 그 뒤 다른 부대와 합쳐 동북민주련군 독립 11사단으로 발전하였다.

역할과 평가

길흑보안총대 조선독립대대는 일본의 항복으로 치안이 무너지고 비적(匪賊)이 횡행하며 민족간의 항쟁이 심하던 때에 북만주에 거주하는 조선인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역할을 다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 중국의 국공내전(國共內戰)에 끌려들어가 참여함으로써 많은 희생자를 낳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승리』(중국조선민족발자취총서 5)
『또 하나의 한국전쟁-만주 조선인의 ‘조국’과 전쟁』(염인호, 역사비평사, 2010)
『조선의용군의 밀입북과 6·25전쟁』(김중생, 명지출판사, 2000)
「조선의용군 연구-민족운동을 중심으로-」(염인호, 국민대박사학위논문, 1995)
집필자
염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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