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우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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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전라도와 경상도에 설치한 수군의 주진(主鎭).
우수영 (右水營)
조선시대 전라도와 경상도에 설치한 수군의 주진(主鎭).
해남 전라우수영(海南 全羅右水營)은 조선시대 수군 영진보성(營鎭堡城)에 설치된 전라 우도 수군의 본영이다. 앞바다는 명량(鳴梁) 또는 울돌목이라는 매우 좁은 해협이며, 전라우수영 앞으로 양도(羊島)가 있어 명량의 거친 물살을 막아준다. 또한 성의 동쪽으로 약 5㎞ 떨어진 길목이 좁아지는 곳에 원문성(轅門城)을 축조하여 육지로부터의 침입에 대비하였다. 해남 전라우수영은 1992년 전라남도 기념물 제139호로 지정되었으며, 2016년 9월 30일에 국가지정문화재(현, 국가지정유산) 사적 제535호로 지정되었다.
해남 전라우수영 (海南 全羅右水營)
해남 전라우수영(海南 全羅右水營)은 조선시대 수군 영진보성(營鎭堡城)에 설치된 전라 우도 수군의 본영이다. 앞바다는 명량(鳴梁) 또는 울돌목이라는 매우 좁은 해협이며, 전라우수영 앞으로 양도(羊島)가 있어 명량의 거친 물살을 막아준다. 또한 성의 동쪽으로 약 5㎞ 떨어진 길목이 좁아지는 곳에 원문성(轅門城)을 축조하여 육지로부터의 침입에 대비하였다. 해남 전라우수영은 1992년 전라남도 기념물 제139호로 지정되었으며, 2016년 9월 30일에 국가지정문화재(현, 국가지정유산) 사적 제535호로 지정되었다.
「우수영 부녀농요」는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우수영의 부녀자들이 밭농사 일을 하면서 부르던 민요이다. 들에 일하러 나가고 들어올 때 부르던 「길꼬내기」와 밭의 김매기에 불렀던 「김매는소리」, 「도리깨질소리」, 방아찧는 「방애타령」, 놀면서 부르는 「둥덩에타령」 등이 포함되어 있다. 1972년 제13회 한국민속예술축제에서 국무총리상을 받았으며, 1987년 8월 25일 전라남도 무형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음악적으로 「우수영 부녀농요」에는 사당패소리의 흔적이 강하게 남아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우수영 부녀농요 (右水營 婦女農謠)
「우수영 부녀농요」는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우수영의 부녀자들이 밭농사 일을 하면서 부르던 민요이다. 들에 일하러 나가고 들어올 때 부르던 「길꼬내기」와 밭의 김매기에 불렀던 「김매는소리」, 「도리깨질소리」, 방아찧는 「방애타령」, 놀면서 부르는 「둥덩에타령」 등이 포함되어 있다. 1972년 제13회 한국민속예술축제에서 국무총리상을 받았으며, 1987년 8월 25일 전라남도 무형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음악적으로 「우수영 부녀농요」에는 사당패소리의 흔적이 강하게 남아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진도 남도진성은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남동리 일원에 위치한 조선시대 수군진성이다. 1500~1501년경에 축성되어 전라우수영 임치진관 혹은 가리포진관에 소속되어 진도 남해안의 일부 권역과 서쪽 해안 등을 관할하였다. 2022년까지 7차례에 걸쳐 발굴 조사가 이루어져 축성법, 문지, 내부 시설, 선소 등이 확인되었고, 15세기~19세기의 고고 자료들이 확인되어 성곽의 축조 시기와 폐성 시기를 알려 준다.
진도 남도진성 (珍島 南桃鎭城)
진도 남도진성은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남동리 일원에 위치한 조선시대 수군진성이다. 1500~1501년경에 축성되어 전라우수영 임치진관 혹은 가리포진관에 소속되어 진도 남해안의 일부 권역과 서쪽 해안 등을 관할하였다. 2022년까지 7차례에 걸쳐 발굴 조사가 이루어져 축성법, 문지, 내부 시설, 선소 등이 확인되었고, 15세기~19세기의 고고 자료들이 확인되어 성곽의 축조 시기와 폐성 시기를 알려 준다.
고성 소을비포 성지는 경상남도 고성군 하일면 동화리에 소재하는 남해안 지역 영진 보성으로, 1491년(성종 22년)에 초축된 후 조선 후기까지 수차례 수·개축이 이루어졌다. 이 성은 해안의 서쪽으로 뻗은 구릉 9부 능선상에 석축으로 축조되었다. 성지의 평면은 동서가 길고 남북이 짧으며, 동쪽에는 남쪽으로 관통하는 도로가 개설되면서 북쪽 벽과 남쪽 벽 일부가 훼손되었다. 성의 둘레는 330m이며, 잔존 최고 높이는 4m이다. 동·서·북문이 배치되어 있고 해자(황)와 치성이 확인된다. 고지도에는 여장이 표시되어 있다.
고성 소을비포 성지 (固城 所乙非浦 城址)
고성 소을비포 성지는 경상남도 고성군 하일면 동화리에 소재하는 남해안 지역 영진 보성으로, 1491년(성종 22년)에 초축된 후 조선 후기까지 수차례 수·개축이 이루어졌다. 이 성은 해안의 서쪽으로 뻗은 구릉 9부 능선상에 석축으로 축조되었다. 성지의 평면은 동서가 길고 남북이 짧으며, 동쪽에는 남쪽으로 관통하는 도로가 개설되면서 북쪽 벽과 남쪽 벽 일부가 훼손되었다. 성의 둘레는 330m이며, 잔존 최고 높이는 4m이다. 동·서·북문이 배치되어 있고 해자(황)와 치성이 확인된다. 고지도에는 여장이 표시되어 있다.
천성진성은 강서구 천성동에 축조한 조선시대 경상우수영 소속 수군진성이다. 삼포왜란과 사량진왜변 등을 겪으면서 수군 증강을 위해 경상우수영 관할의 여러 진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1544년(중종 39)에 석축으로 쌓은 평지성이다. 평면 형태는 남북 방향이 긴 직사각형으로 전체 둘레 848m, 성벽 너비는 5m, 잔존 높이 4m 정도 규모이다. 초축 이후 북쪽과 동쪽 방향으로 성벽을 확장하였고 북·남·동쪽에는 옹성(甕城)을 두른 문지와 문지 좌우와 성벽 중간 중간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치성(雉城)을 두었고 성벽 바깥에 해자를 둘렀다.
천성진성 (天城鎭城)
천성진성은 강서구 천성동에 축조한 조선시대 경상우수영 소속 수군진성이다. 삼포왜란과 사량진왜변 등을 겪으면서 수군 증강을 위해 경상우수영 관할의 여러 진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1544년(중종 39)에 석축으로 쌓은 평지성이다. 평면 형태는 남북 방향이 긴 직사각형으로 전체 둘레 848m, 성벽 너비는 5m, 잔존 높이 4m 정도 규모이다. 초축 이후 북쪽과 동쪽 방향으로 성벽을 확장하였고 북·남·동쪽에는 옹성(甕城)을 두른 문지와 문지 좌우와 성벽 중간 중간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치성(雉城)을 두었고 성벽 바깥에 해자를 둘렀다.
전라남도 남서부에 위치한 군.
해남군 (海南郡)
전라남도 남서부에 위치한 군.
1895년에 전라도 병마절도사영, 전라좌도 수군절도사영, 전라우도 수군절도사영에서 편찬한 호남 지방의 영지(營誌)이다. 표제는 「영지 부사례(營誌附事例)」, 내제는 「전라병영영지」, 「전라좌수영영지급사례」, 「우수영영지」, 「우수영사례」이다. 좌수영에 관한 영지로는 1847년(헌종 13)에 편찬된 『호좌수영지(湖左水營誌)』가 있고, 우수영에 관한 것으로는 1851년(철종 2)에 편찬된 『호우수영지(湖右水營誌)』가 있다. 고종대 정부에서 파악하고자 했던 지방관사의 구체적인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
호남영지 (湖南營誌)
1895년에 전라도 병마절도사영, 전라좌도 수군절도사영, 전라우도 수군절도사영에서 편찬한 호남 지방의 영지(營誌)이다. 표제는 「영지 부사례(營誌附事例)」, 내제는 「전라병영영지」, 「전라좌수영영지급사례」, 「우수영영지」, 「우수영사례」이다. 좌수영에 관한 영지로는 1847년(헌종 13)에 편찬된 『호좌수영지(湖左水營誌)』가 있고, 우수영에 관한 것으로는 1851년(철종 2)에 편찬된 『호우수영지(湖右水營誌)』가 있다. 고종대 정부에서 파악하고자 했던 지방관사의 구체적인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
해방 이후 「강강술래」의 전승자로 지정된 예능보유자.
김길임 (金吉任)
해방 이후 「강강술래」의 전승자로 지정된 예능보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