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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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재유고』는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활동한 학자 박임상의 시·서(書)·서(序)·제문 등을 수록한 시문집이다. 간행 연대 미상의 석인본이다. 『민재유고』에는 구한말 의병장인 최익현, 기우만 등의 문인으로서 의병 운동에 참여했던 저자 박임상의 애국 사상과 위정척사사상이 담겨 있다. 현대 전환기의 전통 문화 계승과 애국지사들의 교류 양상을 파악할 수 있다.
민재유고 (敏齋遺稿)
『민재유고』는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활동한 학자 박임상의 시·서(書)·서(序)·제문 등을 수록한 시문집이다. 간행 연대 미상의 석인본이다. 『민재유고』에는 구한말 의병장인 최익현, 기우만 등의 문인으로서 의병 운동에 참여했던 저자 박임상의 애국 사상과 위정척사사상이 담겨 있다. 현대 전환기의 전통 문화 계승과 애국지사들의 교류 양상을 파악할 수 있다.
조선 후기에, 승문원부정자, 사간원정언, 이조정랑 등을 역임한 문신.
박기종 (朴淇鍾)
조선 후기에, 승문원부정자, 사간원정언, 이조정랑 등을 역임한 문신.
기정진은 조선 후기에「정자설」, ?이통설?, 『노사집』, 『답문유편』 등을 저술한 학자이다. 자는 대중(大中), 호는 노사(蘆沙)이다. 1798년(정조 22)에 태어나 1879년(고종 16) 사망했다. 이황·이이 이후, 독자적 궁리와 사색을 통해 이일분수의 이론에 의한 이(理)의 철학 체계를 수립하였다. 그는 우주 현상과 인간 심성 내지 도덕의 문제를 가치상 우위에 있는 이의 작용으로 해명하고자 했다. 또한 인물성동이의 문제도 이의 완전·불완전으로 설명하여 주리 또는 주기의 심성론과 인물성동이론을 종합하였다. 1927년 고산서원에 조성가 등 문인 6인과 함께 봉안되었다.
기정진 (奇正鎭)
기정진은 조선 후기에「정자설」, ?이통설?, 『노사집』, 『답문유편』 등을 저술한 학자이다. 자는 대중(大中), 호는 노사(蘆沙)이다. 1798년(정조 22)에 태어나 1879년(고종 16) 사망했다. 이황·이이 이후, 독자적 궁리와 사색을 통해 이일분수의 이론에 의한 이(理)의 철학 체계를 수립하였다. 그는 우주 현상과 인간 심성 내지 도덕의 문제를 가치상 우위에 있는 이의 작용으로 해명하고자 했다. 또한 인물성동이의 문제도 이의 완전·불완전으로 설명하여 주리 또는 주기의 심성론과 인물성동이론을 종합하였다. 1927년 고산서원에 조성가 등 문인 6인과 함께 봉안되었다.
동도서기론은 1880년대 김윤식·신기선 등이 동양의 유가적인 도와 제도를 유지하면서 근대 서구의 물질문명과 기술을 수용하고자 한 사상이다. 이 이론은 유학의 전통적 인륜 도덕으로 삼강오륜과 인의예지와 예악형정을 도로 간주하고, 서양의 물질문명적 요소로서 형기를 수용하고자 한 사상이다. 동도서기론은 대한제국이 부국강병책을 추진하면서 서양의 기뿐 아니라 민주주의 개념, 제도, 문화, 사상까지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면서, 명나라 이후의 중화사상을 계승한 소중화 의식이 붕괴하고 동도서기론도 함께 퇴색하게 되었다.
동도서기론 (東道西器論)
동도서기론은 1880년대 김윤식·신기선 등이 동양의 유가적인 도와 제도를 유지하면서 근대 서구의 물질문명과 기술을 수용하고자 한 사상이다. 이 이론은 유학의 전통적 인륜 도덕으로 삼강오륜과 인의예지와 예악형정을 도로 간주하고, 서양의 물질문명적 요소로서 형기를 수용하고자 한 사상이다. 동도서기론은 대한제국이 부국강병책을 추진하면서 서양의 기뿐 아니라 민주주의 개념, 제도, 문화, 사상까지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면서, 명나라 이후의 중화사상을 계승한 소중화 의식이 붕괴하고 동도서기론도 함께 퇴색하게 되었다.
수신사는 1876년, 조일수호조규 체결 이후부터 주일 조선공사가 파견되기 전까지 네 차례 일본에 파견한 사절단이다. 수신사란 ‘옛 우호를 닦고 신의를 두터이 하기 위해’ 파견된 사절을 의미한다. 처음에는 일본 사절 파견에 답례로 파견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통상 문제 협상, 정치적 사건 수습 등으로 사절 파견의 성격이 바뀌어 나갔다.
수신사 (修信使)
수신사는 1876년, 조일수호조규 체결 이후부터 주일 조선공사가 파견되기 전까지 네 차례 일본에 파견한 사절단이다. 수신사란 ‘옛 우호를 닦고 신의를 두터이 하기 위해’ 파견된 사절을 의미한다. 처음에는 일본 사절 파견에 답례로 파견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통상 문제 협상, 정치적 사건 수습 등으로 사절 파견의 성격이 바뀌어 나갔다.
개항기 『척양록』, 『능언』 등을 저술한 학자. 위정척사운동가.
유기일 (柳基一)
개항기 『척양록』, 『능언』 등을 저술한 학자. 위정척사운동가.
대한제국기 때, 연해주 의병세력의 통합체인 13도창의군에서 도총재로 활동하며 항일의병투쟁을 주도한 의병장.
유인석 (柳麟錫)
대한제국기 때, 연해주 의병세력의 통합체인 13도창의군에서 도총재로 활동하며 항일의병투쟁을 주도한 의병장.
유정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중시(中侍)를 역임한 외척(外戚) 대신이다. 744년(경덕왕 3) 1월 이찬(伊飡)으로 집사부(執事部)의 중시에 임명되어 745년 5월까지 재임하였다. 그의 가계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딸이 혜공왕의 비인 신보왕후(新寶王后)로, 외척(外戚) 권문(權門)이었다. 당시 그는 왕구(王舅)로서, 경덕왕과 결탁하여 그의 왕권 강화 정책에 일익을 담당하였다.
유정 (惟正)
유정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중시(中侍)를 역임한 외척(外戚) 대신이다. 744년(경덕왕 3) 1월 이찬(伊飡)으로 집사부(執事部)의 중시에 임명되어 745년 5월까지 재임하였다. 그의 가계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딸이 혜공왕의 비인 신보왕후(新寶王后)로, 외척(外戚) 권문(權門)이었다. 당시 그는 왕구(王舅)로서, 경덕왕과 결탁하여 그의 왕권 강화 정책에 일익을 담당하였다.
의병은 조선 이후부터 일제강점기 이전까지 이민족의 침략에 저항한 자발적인 백성의 군대이다. 이민족의 침략에 대응하여 자발적으로 조직하여 활동하였으며, 우리나라에서는 크게 임진왜란, 병자호란, 한말의 1, 2차 의병으로 구분할 수 있다. 각 시기에 활동한 의병은 활동 목표, 방향에 따라서 다소 성격을 달리한다. 임진왜란 때의 의병은 향병과 근왕병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이때의 의병은 일본군에 대한 저항과 국왕의 호위라는 명분에 따라 창의(倡義)하여 활동하였다. 병자호란 때의 의병은 근왕병의 성격이 강하였다.
의병 (義兵)
의병은 조선 이후부터 일제강점기 이전까지 이민족의 침략에 저항한 자발적인 백성의 군대이다. 이민족의 침략에 대응하여 자발적으로 조직하여 활동하였으며, 우리나라에서는 크게 임진왜란, 병자호란, 한말의 1, 2차 의병으로 구분할 수 있다. 각 시기에 활동한 의병은 활동 목표, 방향에 따라서 다소 성격을 달리한다. 임진왜란 때의 의병은 향병과 근왕병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이때의 의병은 일본군에 대한 저항과 국왕의 호위라는 명분에 따라 창의(倡義)하여 활동하였다. 병자호란 때의 의병은 근왕병의 성격이 강하였다.
『선종영가집(禪宗永嘉集)』은 당나라 전기의 선종 승려 현각(玄覺, 665~713)이 승려의 수행 태도와 수행법을 10가지의 주제로 이야기한 책이다. 현각이 입적한 후 재가제자인 경주자사(慶州刺史) 위정(魏靜)이 책을 편찬하였다. 국내에는 일찍부터 전해진 것으로 보이며, 1381년(우왕 7) 충주 청룡사에서 간행한 목판본이 전하고 있다. 조선 초기에는 기화(己和, 1376-1433)가 해설을 붙인 『선종영가집과주설의(禪宗永嘉集科註說誼)』(2권)를 찬술하였고, 1464년(세조 10)에는 간경도감에서 언해본을 간행하였다.
선종영가집 (禪宗永嘉集)
『선종영가집(禪宗永嘉集)』은 당나라 전기의 선종 승려 현각(玄覺, 665~713)이 승려의 수행 태도와 수행법을 10가지의 주제로 이야기한 책이다. 현각이 입적한 후 재가제자인 경주자사(慶州刺史) 위정(魏靜)이 책을 편찬하였다. 국내에는 일찍부터 전해진 것으로 보이며, 1381년(우왕 7) 충주 청룡사에서 간행한 목판본이 전하고 있다. 조선 초기에는 기화(己和, 1376-1433)가 해설을 붙인 『선종영가집과주설의(禪宗永嘉集科註說誼)』(2권)를 찬술하였고, 1464년(세조 10)에는 간경도감에서 언해본을 간행하였다.
신사척사론은 1881년 척사상소를 중심으로 전개된 위정척사운동이다. 1876년 강화도조약 체결 이후에 신사년(1881)에 개화파에 대항하기 위하여 제시된 사상이다. 일본과의 접촉으로 정부 내부에 개화사상이 침투하여 친일적인 개화파가 형성되었다. 정부에서는 황준헌의 『조선책략』을 복사하여 배포하자, 이를 계기로 위정척사론자의 척사 상소가 본격적으로 제기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척사상소는 경상도 이만손 등이 올린 영남만인소이다. 일본의 침략이 노골화되고 있던 민족적 위기상황 속에서 민족자존을 위한 주체적인 민족의식과 애국우국정신의 발로라고 평가할 수 있다.
신사척사론 (辛巳斥邪論)
신사척사론은 1881년 척사상소를 중심으로 전개된 위정척사운동이다. 1876년 강화도조약 체결 이후에 신사년(1881)에 개화파에 대항하기 위하여 제시된 사상이다. 일본과의 접촉으로 정부 내부에 개화사상이 침투하여 친일적인 개화파가 형성되었다. 정부에서는 황준헌의 『조선책략』을 복사하여 배포하자, 이를 계기로 위정척사론자의 척사 상소가 본격적으로 제기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척사상소는 경상도 이만손 등이 올린 영남만인소이다. 일본의 침략이 노골화되고 있던 민족적 위기상황 속에서 민족자존을 위한 주체적인 민족의식과 애국우국정신의 발로라고 평가할 수 있다.
『조선책략』은 청나라 황준헌이 개항기 한국이 당면한 국제적 지위를 논하고 그 대외책을 시사한 역사서이다. 1880년 일본에 수신사로 파견된 김홍집이 청국의 주일공사관 참찬관 황준헌으로부터 기증받아 고종에게 바친 책이다. 가장 주목받은 내용은, 러시아에 대한 방어책으로 친중국·결일본·연미국 함으로써 자강책을 도모하라는 것이었다. 청국의 대한간섭정책을 지원하고 일본의 대한침투전략을 시인하는 경향이 다분히 있었지만 조선의 문호 개방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 내용이 알려지자 유림을 중심으로 위정척사운동이 강하게 일어나 개화파와의 갈등이 고조되었다.
조선책략 (朝鮮策略)
『조선책략』은 청나라 황준헌이 개항기 한국이 당면한 국제적 지위를 논하고 그 대외책을 시사한 역사서이다. 1880년 일본에 수신사로 파견된 김홍집이 청국의 주일공사관 참찬관 황준헌으로부터 기증받아 고종에게 바친 책이다. 가장 주목받은 내용은, 러시아에 대한 방어책으로 친중국·결일본·연미국 함으로써 자강책을 도모하라는 것이었다. 청국의 대한간섭정책을 지원하고 일본의 대한침투전략을 시인하는 경향이 다분히 있었지만 조선의 문호 개방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 내용이 알려지자 유림을 중심으로 위정척사운동이 강하게 일어나 개화파와의 갈등이 고조되었다.
조선의 26대 국왕 고종이 병인양요(丙寅洋擾)와 신미양요(辛未洋擾)를 겪으면서 서양 세력과의 화친을 배격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 세운 비석.
척화비 (斥和碑)
조선의 26대 국왕 고종이 병인양요(丙寅洋擾)와 신미양요(辛未洋擾)를 겪으면서 서양 세력과의 화친을 배격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 세운 비석.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에 있는 조선후기 흥선대원군 집정기에 세운 비. 척화비.
청주 척화비 (淸州 斥和碑)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에 있는 조선후기 흥선대원군 집정기에 세운 비. 척화비.
1381년 충주 청룡사에서 판각한 선종의 대표적인 불교서. 선장본.
선종영가집 (禪宗永嘉集)
1381년 충주 청룡사에서 판각한 선종의 대표적인 불교서. 선장본.
『선종영가집』은 1542년(중종 37) 황해도 토산현 석두사에서 인출된 목판본 불서이다. 이 불서는 당나라 현각이 남긴 글을 당나라 위정이 편찬하고 서를 쓴 것에 송나라 행정이 주를 달고 송나라 정원이 문단을 나누고 소제목들을 붙여 간행한 책이다. 범어사 성보박물관 도서인 『선종영가집』은 목판본 2권 1책으로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아 1999년 11월 19일에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선종영가집 (禪宗永嘉集)
『선종영가집』은 1542년(중종 37) 황해도 토산현 석두사에서 인출된 목판본 불서이다. 이 불서는 당나라 현각이 남긴 글을 당나라 위정이 편찬하고 서를 쓴 것에 송나라 행정이 주를 달고 송나라 정원이 문단을 나누고 소제목들을 붙여 간행한 책이다. 범어사 성보박물관 도서인 『선종영가집』은 목판본 2권 1책으로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아 1999년 11월 19일에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