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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우기는 세종 때 발명되어 사용한 조선시대의 공식적인 우량 측정기구이다. 1440년(세종 22)을 전후하여 발명되어 1442년부터 20세기 초 일제 통감부에 의해 근대적 기상관측이 시작될 때까지 조선 왕조의 공식적인 우량 관측기구로 사용되었다. 현대의 우량계에 해당한다. 금속제 원통형 그릇에 빗물을 받아 표준화된 눈금의 자로 그 깊이를 측정했다. 같은 규격의 기구와 자를 서울의 천문관서와 지방의 관아에 설치하여 전국적으로 우량을 관측하고 보고하는 체계를 갖추어 기록을 보유했다. 첨성대, 금속활자, 한글 등과 함께 한국사의 빛나는 과학적 성취로 평가된다.
측우기 (測雨器)
측우기는 세종 때 발명되어 사용한 조선시대의 공식적인 우량 측정기구이다. 1440년(세종 22)을 전후하여 발명되어 1442년부터 20세기 초 일제 통감부에 의해 근대적 기상관측이 시작될 때까지 조선 왕조의 공식적인 우량 관측기구로 사용되었다. 현대의 우량계에 해당한다. 금속제 원통형 그릇에 빗물을 받아 표준화된 눈금의 자로 그 깊이를 측정했다. 같은 규격의 기구와 자를 서울의 천문관서와 지방의 관아에 설치하여 전국적으로 우량을 관측하고 보고하는 체계를 갖추어 기록을 보유했다. 첨성대, 금속활자, 한글 등과 함께 한국사의 빛나는 과학적 성취로 평가된다.
김병로는 해방 이후 남조선과도정부 사법부 부장, 대법원장 등을 역임한 법조인이자 정치인이다. 1887년(고종 24)에 태어나 1964년에 사망했다. 1910년 일본에 유학하여 법학을 전공했다. 귀국 후 형법과 소송법 강의를 하며 경성지방법원 소속 변호사로 개업했다. 독립운동 관련 사건을 무료 변론하며 다방면의 사회활동으로 독립운동에 공헌했다. 해방 후 한국민주당 창당에 참여했고, 남조선과도정부 사법부장, 초대 및 제2대 대법원장을 지냈다. 대법원장 재임 동안 사법부 밖에서 오는 온갖 압력과 간섭을 뿌리치고 사법권 독립의 기초를 다졌다.
김병로 (金炳魯)
김병로는 해방 이후 남조선과도정부 사법부 부장, 대법원장 등을 역임한 법조인이자 정치인이다. 1887년(고종 24)에 태어나 1964년에 사망했다. 1910년 일본에 유학하여 법학을 전공했다. 귀국 후 형법과 소송법 강의를 하며 경성지방법원 소속 변호사로 개업했다. 독립운동 관련 사건을 무료 변론하며 다방면의 사회활동으로 독립운동에 공헌했다. 해방 후 한국민주당 창당에 참여했고, 남조선과도정부 사법부장, 초대 및 제2대 대법원장을 지냈다. 대법원장 재임 동안 사법부 밖에서 오는 온갖 압력과 간섭을 뿌리치고 사법권 독립의 기초를 다졌다.
식목도감은 고려시대의 법제회의기관이다. 고려는 당제를 모방해 2성6부의 중앙관제를 정비하면서 별도로 독자적인 두 개의 회의기관을 만들었다. 하나는 대외적인 국방과 군사문제를 관장하는 도병마사이고, 또 하나는 대내적인 법제와 격식을 관장하는 식목도감이었다. 식목도감은 도병마사와 더불어 고려의 독자적인 정치기구였는데 두 기관은 정치의 부침에 따라 경쟁관계 속에서 관장 업무가 변화하면서 국정최고회의기관의 역할을 담당했다. 고려말 식목도감은 무력화하여 부정 관리에 대한 탄핵을 담당하는 식목녹사 기능만 유지하다가 조선초에 의정부에 흡수되었다.
식목도감 (式目都監)
식목도감은 고려시대의 법제회의기관이다. 고려는 당제를 모방해 2성6부의 중앙관제를 정비하면서 별도로 독자적인 두 개의 회의기관을 만들었다. 하나는 대외적인 국방과 군사문제를 관장하는 도병마사이고, 또 하나는 대내적인 법제와 격식을 관장하는 식목도감이었다. 식목도감은 도병마사와 더불어 고려의 독자적인 정치기구였는데 두 기관은 정치의 부침에 따라 경쟁관계 속에서 관장 업무가 변화하면서 국정최고회의기관의 역할을 담당했다. 고려말 식목도감은 무력화하여 부정 관리에 대한 탄핵을 담당하는 식목녹사 기능만 유지하다가 조선초에 의정부에 흡수되었다.
평화유지군은 국제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항구적 평화체제를 정착시키기 위한 유엔의 군사활동이다. 걸프전쟁에서 다국적군이 승리한 후 유엔은 국제적 분쟁의 평화적 해결과 항구적 평화체제 정착을 목표로 평화유지활동을 전개했다. 한국은 1991년 유엔 가입 이후, 1993년 평화유지활동을 위해 상록수 부대를 소말리아에 파견했다. 이후 1994년 서부사하라, 1999년 동티모르, 2002년 로스팔로스 등에서 활동을 전개하였다. 파병활동은 세계민주주의를 위한 국제사회 노력에 동참한다는 명분 축적과 분쟁 종료 지역의 재건과 복구 참여한다는 국익 구현이 가능하다.
평화유지군 (平和維持軍)
평화유지군은 국제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항구적 평화체제를 정착시키기 위한 유엔의 군사활동이다. 걸프전쟁에서 다국적군이 승리한 후 유엔은 국제적 분쟁의 평화적 해결과 항구적 평화체제 정착을 목표로 평화유지활동을 전개했다. 한국은 1991년 유엔 가입 이후, 1993년 평화유지활동을 위해 상록수 부대를 소말리아에 파견했다. 이후 1994년 서부사하라, 1999년 동티모르, 2002년 로스팔로스 등에서 활동을 전개하였다. 파병활동은 세계민주주의를 위한 국제사회 노력에 동참한다는 명분 축적과 분쟁 종료 지역의 재건과 복구 참여한다는 국익 구현이 가능하다.
동티모르에 파견된 한국의 평화유지활동 부대.
상록수부대 (常綠樹部隊)
동티모르에 파견된 한국의 평화유지활동 부대.
경상남도 합천군 삼가면에 있는 조선전기 성리학자 조식의 생가터.
남명 조식 선생 생가지 (南溟 曺植 先生 生家址)
경상남도 합천군 삼가면에 있는 조선전기 성리학자 조식의 생가터.
대구광역시 중구 대봉동 일대에 있는 청동기시대 유지석식과 무지석식 구조로 구분되는 고인돌. 지석묘.
대구 대봉동 고인돌 (大邱 大鳳洞 고인돌)
대구광역시 중구 대봉동 일대에 있는 청동기시대 유지석식과 무지석식 구조로 구분되는 고인돌. 지석묘.
평택대학교는 경기도 평택시에 위치한 사립 종합대학교이다. 1912년 조선예수교장로회가 피어슨성경기념학원을 설립하였다. 1981년 현재의 위치에 교사를 신축하였고 1983년 대학 학력인정학교로 인가되었다. 피어선기념학원, 피어선대학 등을 거쳐 1996년에 평택대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해외 10개국 24개 대학과 교류협정을 맺고 교환학생제, 학술교류 등을 시행하고 있다. 도서관·생활관 등의 부속기관과 정보디자인연구소·주한미군연구센터·피어선기념성경연구원 등의 부설연구소가 있다. 교훈은 ‘진리·정의·봉사’이다. 기독교 신앙에 기초한 창의적 전문인 육성을 교육목적으로 한다.
평택대학교 (平澤大學校)
평택대학교는 경기도 평택시에 위치한 사립 종합대학교이다. 1912년 조선예수교장로회가 피어슨성경기념학원을 설립하였다. 1981년 현재의 위치에 교사를 신축하였고 1983년 대학 학력인정학교로 인가되었다. 피어선기념학원, 피어선대학 등을 거쳐 1996년에 평택대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해외 10개국 24개 대학과 교류협정을 맺고 교환학생제, 학술교류 등을 시행하고 있다. 도서관·생활관 등의 부속기관과 정보디자인연구소·주한미군연구센터·피어선기념성경연구원 등의 부설연구소가 있다. 교훈은 ‘진리·정의·봉사’이다. 기독교 신앙에 기초한 창의적 전문인 육성을 교육목적으로 한다.
칠곡가실성당은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신로마네스크 양식의 벽돌조 건물로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에 위치한 성당건물이다. 2003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본당과 사제관 등 2동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1924년 축성식이 열렸다. 본당은 정면 중앙부에 종탑을 둔 형태로, 종탑 안쪽의 두 짝 여닫이 판문을 통해 실내로 출입한다. 사제관은 본당 뒤쪽에 위치하는 붉은벽돌 조적조 단층 건물이다. 1920년대 중반에 건립된 비교적 수준 높은 벽돌조 건축물로, 건축사적ㆍ교회사적인 측면에서 역사적 가치가 큰 건물이다.
칠곡 가실성당 (漆谷 佳室聖堂)
칠곡가실성당은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신로마네스크 양식의 벽돌조 건물로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에 위치한 성당건물이다. 2003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본당과 사제관 등 2동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1924년 축성식이 열렸다. 본당은 정면 중앙부에 종탑을 둔 형태로, 종탑 안쪽의 두 짝 여닫이 판문을 통해 실내로 출입한다. 사제관은 본당 뒤쪽에 위치하는 붉은벽돌 조적조 단층 건물이다. 1920년대 중반에 건립된 비교적 수준 높은 벽돌조 건축물로, 건축사적ㆍ교회사적인 측면에서 역사적 가치가 큰 건물이다.
황진가 고문서는 조선시대 무신 황진의 후손가에 전래된 문서로 종가문서이다. 16종 125점으로, 1987년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주로 황진과 그의 두 아들에 관계된 문서이다. 전북 남원시에 위치한 두 후손(황호연, 황정열)의 집에서 보관하는데, 일부는 남원시 ‘무민공 황진 기념관’에 있다. 1575년 황진이 외할머니에게 받은 분재문서, 각종 소지·유지·교지, 고종 연간에 작성된 상서 등이 전한다. 황호연 소장본은 4종 58점이, 황맹연 소장본은 12종 67점이 있다. 조선 중기의 정치·경제·사회 및 관제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며, 황진의 전기 자료이기도 하다.
황진가 고문서 (黃進家 古文書)
황진가 고문서는 조선시대 무신 황진의 후손가에 전래된 문서로 종가문서이다. 16종 125점으로, 1987년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주로 황진과 그의 두 아들에 관계된 문서이다. 전북 남원시에 위치한 두 후손(황호연, 황정열)의 집에서 보관하는데, 일부는 남원시 ‘무민공 황진 기념관’에 있다. 1575년 황진이 외할머니에게 받은 분재문서, 각종 소지·유지·교지, 고종 연간에 작성된 상서 등이 전한다. 황호연 소장본은 4종 58점이, 황맹연 소장본은 12종 67점이 있다. 조선 중기의 정치·경제·사회 및 관제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며, 황진의 전기 자료이기도 하다.
전라남도 목포시 석현동에 있는 4년제 가톨릭계 사립대학교.
목포가톨릭대학교 (木浦Catholic大學校)
전라남도 목포시 석현동에 있는 4년제 가톨릭계 사립대학교.
서울특별시 구로구 항동에 있는 사립 특수학교.
성 베드로학교 (聖 peter學校)
서울특별시 구로구 항동에 있는 사립 특수학교.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구미리 오봉종택에 소장된 유학서. 종가유물.
의성 오봉종택 소장 전적 (義城 梧峰宗宅 所藏 典籍)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구미리 오봉종택에 소장된 유학서. 종가유물.
고려시대 왕실에서 노인들을 위하여 베풀던 국가의례. 잔치.
국로연 (國老宴)
고려시대 왕실에서 노인들을 위하여 베풀던 국가의례. 잔치.
1907년 함경북도 경성군(鏡城郡)에 설립되었던 사립학교이다. 1903년경에 설립한 경성유지의숙(鏡城有志義塾)을 개편하여 함경북도 안에 있던 학교 중 가장 앞선 학교가 되었다. 1908년 1월에 6개월 과정의 사범속성과를 개설하고 이름높은 교원을 초빙하여 교원될 자격자를 양성하는 교육도 실시하였다. 함일학교 사범속성과에서는 연령이 50세나 되는 시골의 선비(예컨대 장의와 도유사) 등 지방의 유력층 지도급 인사들도 입학하여 사범교육을 받았다. 1908년에 34명의 사범속성과 첫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함일학교 (咸一學校)
1907년 함경북도 경성군(鏡城郡)에 설립되었던 사립학교이다. 1903년경에 설립한 경성유지의숙(鏡城有志義塾)을 개편하여 함경북도 안에 있던 학교 중 가장 앞선 학교가 되었다. 1908년 1월에 6개월 과정의 사범속성과를 개설하고 이름높은 교원을 초빙하여 교원될 자격자를 양성하는 교육도 실시하였다. 함일학교 사범속성과에서는 연령이 50세나 되는 시골의 선비(예컨대 장의와 도유사) 등 지방의 유력층 지도급 인사들도 입학하여 사범교육을 받았다. 1908년에 34명의 사범속성과 첫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서울특별시 동작구 신대방동 기상청에 있는 조선시대의 측우기.
공주 충청감영 측우기 (公州 忠淸監營 測雨器)
서울특별시 동작구 신대방동 기상청에 있는 조선시대의 측우기.
사상과 양심의 자유는 내심의 윤리의식과 사상을 자유로이 형성하고 또 그것을 외부에 표명하도록 강제당하지 않고 내심의 윤리의식과 사상에 반하는 행위를 강요당하지 아니할 자유이다. 현행 「대한민국헌법」은 제19조에서 양심의 자유에 관한 규정만 두고 있고 사상의 자유에 관한 명문 규정은 없지만, 「대한민국헌법」 제19조의 양심의 자유에는 사상의 자유도 포함된다. 양심의 자유는 개인의 존엄성과 자율성을 보장하고 민주주의와 다원주의 사회의 기반을 제공하는 중요한 기본권이다.
사상과 양심의 자유 (思想과 良心의 自由)
사상과 양심의 자유는 내심의 윤리의식과 사상을 자유로이 형성하고 또 그것을 외부에 표명하도록 강제당하지 않고 내심의 윤리의식과 사상에 반하는 행위를 강요당하지 아니할 자유이다. 현행 「대한민국헌법」은 제19조에서 양심의 자유에 관한 규정만 두고 있고 사상의 자유에 관한 명문 규정은 없지만, 「대한민국헌법」 제19조의 양심의 자유에는 사상의 자유도 포함된다. 양심의 자유는 개인의 존엄성과 자율성을 보장하고 민주주의와 다원주의 사회의 기반을 제공하는 중요한 기본권이다.
정남규는 일제강점기 종현성당(현, 명동성당) 총회장이자 사회 사업가이다. 1899년에 경성학당 한문과에 입학하였고, 1900년 4월부터 경성학당 보통과에 진학하여 1901년 3월 6일까지 수학하였다. 1910~1920년,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에 재임하였고, 1920~1923년에는 경성부 서기, 속(屬)으로 근무하였다. 이어 1923년에는 경성대목구의 재단법인 설립에 참여하였다. 1924년에 애긍회를 조직하여 1950년 9월 17일에 정치보위부에 납치되어 행방불명될 때까지 노인들을 돌보았다.
정남규 (鄭南奎)
정남규는 일제강점기 종현성당(현, 명동성당) 총회장이자 사회 사업가이다. 1899년에 경성학당 한문과에 입학하였고, 1900년 4월부터 경성학당 보통과에 진학하여 1901년 3월 6일까지 수학하였다. 1910~1920년,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에 재임하였고, 1920~1923년에는 경성부 서기, 속(屬)으로 근무하였다. 이어 1923년에는 경성대목구의 재단법인 설립에 참여하였다. 1924년에 애긍회를 조직하여 1950년 9월 17일에 정치보위부에 납치되어 행방불명될 때까지 노인들을 돌보았다.
국제평화지원단은 2010년 7월 1일에 대한민국의 국제평화유지활동 참여를 보장하기 위해 특수전사령부 예하로 창설된 부대이다. 줄여서 ‘국평단’이라고도 한다. 부대는 필요시 해외로 파병되어 유엔 평화유지활동 또는 다국적군 평화활동 임무를 수행하며, 해외파견 될 장병들에게 테러, 기습공격 등 각종 위험 상황에 대비한 대처 훈련과 경호 훈련뿐 아니라 현지 언어와 문화, 관습, 외국 현지인에 대한 대민 민사심리작전 등 다양한 분야의 교육기관 역할을 맡고 있다.
국제평화지원단 (國際平和支援團)
국제평화지원단은 2010년 7월 1일에 대한민국의 국제평화유지활동 참여를 보장하기 위해 특수전사령부 예하로 창설된 부대이다. 줄여서 ‘국평단’이라고도 한다. 부대는 필요시 해외로 파병되어 유엔 평화유지활동 또는 다국적군 평화활동 임무를 수행하며, 해외파견 될 장병들에게 테러, 기습공격 등 각종 위험 상황에 대비한 대처 훈련과 경호 훈련뿐 아니라 현지 언어와 문화, 관습, 외국 현지인에 대한 대민 민사심리작전 등 다양한 분야의 교육기관 역할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