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의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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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수경술의기』는 신라 승려 의적(義寂)이 『무량수경』을 풀이한 글이다. 『무량수경』 전체의 분단을 서분(序分)·정종분(正宗分)·유통분(流通分)의 세 부분으로 크게 나누고 있다. 이는 신라의 승려 현일(玄一)의 십분과(十分科)나 경흥(憬興)의 견해와 차이가 있다.
무량수경술의기 (無量壽經述義記)
『무량수경술의기』는 신라 승려 의적(義寂)이 『무량수경』을 풀이한 글이다. 『무량수경』 전체의 분단을 서분(序分)·정종분(正宗分)·유통분(流通分)의 세 부분으로 크게 나누고 있다. 이는 신라의 승려 현일(玄一)의 십분과(十分科)나 경흥(憬興)의 견해와 차이가 있다.
금산사는 백제 때 세운 절로 김제 모악산에 위치하고 있다. 신라 법상종의 의적이 활동했고 진표가 크게 중창하였다. 고려시대 혜덕왕사, 근래 월주가 유명하다. 미륵전은 3층으로 미륵의 용화삼회(龍華三會)설법을 의미한다.
금산사 (金山寺)
금산사는 백제 때 세운 절로 김제 모악산에 위치하고 있다. 신라 법상종의 의적이 활동했고 진표가 크게 중창하였다. 고려시대 혜덕왕사, 근래 월주가 유명하다. 미륵전은 3층으로 미륵의 용화삼회(龍華三會)설법을 의미한다.
의상은 삼국시대 화엄종의 개조이자 화엄십찰의 건립자인 승려이다. 625년(진평왕 47)에 태어나 702년(성덕왕 1)에 사망했다. 19세 때 경주 황복사로 출가했다. 661년(문무왕 1) 당에 유학하여 중국 화엄종의 제2조로서 화엄학의 기초를 다진 지엄에게서 8년간 화엄을 공부했다. 신라로 돌아온 해에 낙산사의 관음굴에서 관세음보살에게 기도를 드렸는데, 이때의 발원문인 『백화도량발원문』은 그의 관음신앙을 알게 해주는 261자의 간결한 명문이다. 부석사를 비롯한 화엄십찰을 전국에 세웠고 화엄경을 강론하며 3000명의 제자를 길러냈다.
의상 (義湘)
의상은 삼국시대 화엄종의 개조이자 화엄십찰의 건립자인 승려이다. 625년(진평왕 47)에 태어나 702년(성덕왕 1)에 사망했다. 19세 때 경주 황복사로 출가했다. 661년(문무왕 1) 당에 유학하여 중국 화엄종의 제2조로서 화엄학의 기초를 다진 지엄에게서 8년간 화엄을 공부했다. 신라로 돌아온 해에 낙산사의 관음굴에서 관세음보살에게 기도를 드렸는데, 이때의 발원문인 『백화도량발원문』은 그의 관음신앙을 알게 해주는 261자의 간결한 명문이다. 부석사를 비롯한 화엄십찰을 전국에 세웠고 화엄경을 강론하며 3000명의 제자를 길러냈다.
제관(諦觀, 미상~970)은 고려 광종 때의 승려로 천태종의 조사이다. 960년(광종 11) 광종의 명으로 오월(吳越)에 천태 관련 서적을 전해 주었으며, 그곳에서 10여 년 동안 나계(螺溪), 의적(義寂)과 함께 천태학을 연구하였다. 천태학의 입문서라 할 수 있는 『천태사교의(天台四敎儀)』를 저술하였다.
제관 (諦觀)
제관(諦觀, 미상~970)은 고려 광종 때의 승려로 천태종의 조사이다. 960년(광종 11) 광종의 명으로 오월(吳越)에 천태 관련 서적을 전해 주었으며, 그곳에서 10여 년 동안 나계(螺溪), 의적(義寂)과 함께 천태학을 연구하였다. 천태학의 입문서라 할 수 있는 『천태사교의(天台四敎儀)』를 저술하였다.
고려후기 명나라 승려 몽윤이 『천태사교의』를 주석한 불서로 단양군 구인사에 소장된 불교경전. 주석서.
천태사교의집주 상권 (天台四敎儀集註 上卷)
고려후기 명나라 승려 몽윤이 『천태사교의』를 주석한 불서로 단양군 구인사에 소장된 불교경전. 주석서.
초적은 지배자의 압박과 수탈에 항거해 항쟁을 벌인 농민저항군이다. ‘초망(草莽)의 적’이라는 뜻이다. 『고려사』·『고려사절요』·『조선왕조실록』 등에는 도(盜)·도적·서적(西賊)·남적(南賊)·토적(土賊)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신라 말에 국가와 호족에게 이중 수탈을 당하던 농민들이 소극적인 유망민에서 벗어나 난을 일으켜 저항하였다. 고려 무신정권기에 지배자의 압박과 수탈에 항거해 대규모의 항쟁을 벌였으며 몽골이 침입하였을 때에 항몽대열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개강 환도 이후 반정부투쟁을 전개하며 삼별초의 반란에 호응하였다.
초적 (草賊)
초적은 지배자의 압박과 수탈에 항거해 항쟁을 벌인 농민저항군이다. ‘초망(草莽)의 적’이라는 뜻이다. 『고려사』·『고려사절요』·『조선왕조실록』 등에는 도(盜)·도적·서적(西賊)·남적(南賊)·토적(土賊)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신라 말에 국가와 호족에게 이중 수탈을 당하던 농민들이 소극적인 유망민에서 벗어나 난을 일으켜 저항하였다. 고려 무신정권기에 지배자의 압박과 수탈에 항거해 대규모의 항쟁을 벌였으며 몽골이 침입하였을 때에 항몽대열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개강 환도 이후 반정부투쟁을 전개하며 삼별초의 반란에 호응하였다.
『관경소기(觀經疏記)』는 고려 전기 승려 의통(義通)이 지은 천태대사 지의(智顗)의 『관무량수불경소(觀無量壽佛經疏)』에 대한 주석서이다. 의통은 중국에서 천태학을 공부한 후, 사명(四明) 지역 보운사(寶雲寺)에서 천태학을 널리 가르치며 이 책을 저술하였다.
관경소기 (觀經疏記)
『관경소기(觀經疏記)』는 고려 전기 승려 의통(義通)이 지은 천태대사 지의(智顗)의 『관무량수불경소(觀無量壽佛經疏)』에 대한 주석서이다. 의통은 중국에서 천태학을 공부한 후, 사명(四明) 지역 보운사(寶雲寺)에서 천태학을 널리 가르치며 이 책을 저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