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의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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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적은 지배자의 압박과 수탈에 항거해 항쟁을 벌인 농민저항군이다. ‘초망(草莽)의 적’이라는 뜻이다. 『고려사』·『고려사절요』·『조선왕조실록』 등에는 도(盜)·도적·서적(西賊)·남적(南賊)·토적(土賊)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신라 말에 국가와 호족에게 이중 수탈을 당하던 농민들이 소극적인 유망민에서 벗어나 난을 일으켜 저항하였다. 고려 무신정권기에 지배자의 압박과 수탈에 항거해 대규모의 항쟁을 벌였으며 몽골이 침입하였을 때에 항몽대열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개강 환도 이후 반정부투쟁을 전개하며 삼별초의 반란에 호응하였다.
초적 (草賊)
초적은 지배자의 압박과 수탈에 항거해 항쟁을 벌인 농민저항군이다. ‘초망(草莽)의 적’이라는 뜻이다. 『고려사』·『고려사절요』·『조선왕조실록』 등에는 도(盜)·도적·서적(西賊)·남적(南賊)·토적(土賊)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신라 말에 국가와 호족에게 이중 수탈을 당하던 농민들이 소극적인 유망민에서 벗어나 난을 일으켜 저항하였다. 고려 무신정권기에 지배자의 압박과 수탈에 항거해 대규모의 항쟁을 벌였으며 몽골이 침입하였을 때에 항몽대열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개강 환도 이후 반정부투쟁을 전개하며 삼별초의 반란에 호응하였다.
제관(諦觀, 미상~970)은 고려 광종 때의 승려로 천태종의 조사이다. 960년(광종 11) 광종의 명으로 오월(吳越)에 천태 관련 서적을 전해 주었으며, 그곳에서 10여 년 동안 나계(螺溪), 의적(義寂)과 함께 천태학을 연구하였다. 천태학의 입문서라 할 수 있는 『천태사교의(天台四敎儀)』를 저술하였다.
제관 (諦觀)
제관(諦觀, 미상~970)은 고려 광종 때의 승려로 천태종의 조사이다. 960년(광종 11) 광종의 명으로 오월(吳越)에 천태 관련 서적을 전해 주었으며, 그곳에서 10여 년 동안 나계(螺溪), 의적(義寂)과 함께 천태학을 연구하였다. 천태학의 입문서라 할 수 있는 『천태사교의(天台四敎儀)』를 저술하였다.
『범망경보살계본소(梵網經菩薩戒本疏)』는 신라 승려 의적이 편찬한 『범망경』에 대한 주석서로, 『범망경』 하권의 게송(偈頌)부터 시작하는 ‘보살계본’을 풀이한 주석서이다. 서론인 서격(序格), 본지를 밝힌 지귀(旨歸), 제목을 해설한 제명(題名), 본문을 해설한 석명(釋明)의 네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십중계를 해설하는 데 내용의 많은 부분을 할애하였다. 이 책에서 드러나는 의적의 사상은 원효(元曉)의 학설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평가된다.
범망경보살계본소 (梵網經菩薩戒本疏)
『범망경보살계본소(梵網經菩薩戒本疏)』는 신라 승려 의적이 편찬한 『범망경』에 대한 주석서로, 『범망경』 하권의 게송(偈頌)부터 시작하는 ‘보살계본’을 풀이한 주석서이다. 서론인 서격(序格), 본지를 밝힌 지귀(旨歸), 제목을 해설한 제명(題名), 본문을 해설한 석명(釋明)의 네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십중계를 해설하는 데 내용의 많은 부분을 할애하였다. 이 책에서 드러나는 의적의 사상은 원효(元曉)의 학설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평가된다.
고려후기 명나라 승려 몽윤이 『천태사교의』를 주석한 불서로 단양군 구인사에 소장된 불교경전. 주석서.
천태사교의집주 상권 (天台四敎儀集註 上卷)
고려후기 명나라 승려 몽윤이 『천태사교의』를 주석한 불서로 단양군 구인사에 소장된 불교경전. 주석서.
『무량수경술의기』는 신라 승려 의적(義寂)이 『무량수경』을 풀이한 글이다. 『무량수경』 전체의 분단을 서분(序分)·정종분(正宗分)·유통분(流通分)의 세 부분으로 크게 나누고 있다. 이는 신라의 승려 현일(玄一)의 십분과(十分科)나 경흥(憬興)의 견해와 차이가 있다.
무량수경술의기 (無量壽經述義記)
『무량수경술의기』는 신라 승려 의적(義寂)이 『무량수경』을 풀이한 글이다. 『무량수경』 전체의 분단을 서분(序分)·정종분(正宗分)·유통분(流通分)의 세 부분으로 크게 나누고 있다. 이는 신라의 승려 현일(玄一)의 십분과(十分科)나 경흥(憬興)의 견해와 차이가 있다.
『법화경논술기(法華經論述記)』는 신라 승려 의적(義寂)이 『법화경』의 유일한 논서인 『법화론(法華論)』을 풀이한 책이다. 현전하는 삼국시대 법화 관계 저술로는 원효의 『법화경종요』와 의적의 『법화경논술기』밖에 없기 때문에 이 책은 통일신라 시기 법화 교학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문헌이다. 우리나라에 법화경을 주소(註疏)한 책은 여럿 있지만, 『법화론』 주석서는 오직 이 한 본(本)만 있어 사료적 가치가 높다.
법화경논술기 (法華經論述記)
『법화경논술기(法華經論述記)』는 신라 승려 의적(義寂)이 『법화경』의 유일한 논서인 『법화론(法華論)』을 풀이한 책이다. 현전하는 삼국시대 법화 관계 저술로는 원효의 『법화경종요』와 의적의 『법화경논술기』밖에 없기 때문에 이 책은 통일신라 시기 법화 교학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문헌이다. 우리나라에 법화경을 주소(註疏)한 책은 여럿 있지만, 『법화론』 주석서는 오직 이 한 본(本)만 있어 사료적 가치가 높다.
『관경소기(觀經疏記)』는 고려 전기 승려 의통(義通)이 지은 천태대사 지의(智顗)의 『관무량수불경소(觀無量壽佛經疏)』에 대한 주석서이다. 의통은 중국에서 천태학을 공부한 후, 사명(四明) 지역 보운사(寶雲寺)에서 천태학을 널리 가르치며 이 책을 저술하였다.
관경소기 (觀經疏記)
『관경소기(觀經疏記)』는 고려 전기 승려 의통(義通)이 지은 천태대사 지의(智顗)의 『관무량수불경소(觀無量壽佛經疏)』에 대한 주석서이다. 의통은 중국에서 천태학을 공부한 후, 사명(四明) 지역 보운사(寶雲寺)에서 천태학을 널리 가르치며 이 책을 저술하였다.
금산사는 백제 때 세운 절로 김제 모악산에 위치하고 있다. 신라 법상종의 의적이 활동했고 진표가 크게 중창하였다. 고려시대 혜덕왕사, 근래 월주가 유명하다. 미륵전은 3층으로 미륵의 용화삼회(龍華三會)설법을 의미한다.
모악산 금산사 (母岳山 金山寺)
금산사는 백제 때 세운 절로 김제 모악산에 위치하고 있다. 신라 법상종의 의적이 활동했고 진표가 크게 중창하였다. 고려시대 혜덕왕사, 근래 월주가 유명하다. 미륵전은 3층으로 미륵의 용화삼회(龍華三會)설법을 의미한다.
『금강반야경찬』은 통일신라 승려 의적이 저술한 『금강경』 주석서로 추정되었으나, 이는 현대 연구자들이 의적의 다른 저작인 『반야이취분경찬』 혹은 『반야이취분경유찬』과 혼동한 것이다. 통일신라의 승려 의적이 『금강반야경찬』이라는 문헌을 저술하였다고 하는 최초의 지적은 카스가 레이치에 의해서 이루어졌고, 근거로 드는 문헌은 『동역전등목록』이다. 이 전거문헌의 오독으로 인한 것으로, 그곳에서 가리키는 의적의 저술은 『반야이취분경유찬』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금강반야경찬 (金剛般若經贊)
『금강반야경찬』은 통일신라 승려 의적이 저술한 『금강경』 주석서로 추정되었으나, 이는 현대 연구자들이 의적의 다른 저작인 『반야이취분경찬』 혹은 『반야이취분경유찬』과 혼동한 것이다. 통일신라의 승려 의적이 『금강반야경찬』이라는 문헌을 저술하였다고 하는 최초의 지적은 카스가 레이치에 의해서 이루어졌고, 근거로 드는 문헌은 『동역전등목록』이다. 이 전거문헌의 오독으로 인한 것으로, 그곳에서 가리키는 의적의 저술은 『반야이취분경유찬』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