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망경보살계본소(梵網經菩薩戒本疏)』의 저자 의적(義寂, 681~8세기 초반)은 당에서 유학하다가 690년경에 귀국하여 신라 불교계에서 활동한 신라의 승려이다. 그는 61부 이상의 저술을 하였다.
『범망경보살계본소』는 『범망경』 하권의 게송(偈頌)부터 시작하는 『보살계본』에 대한 주석서이다. 이 주석서는 일본의 보살계 사상과는 다른 전개를 지닌 문헌으로 신라의 보살계 사상을 이해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문헌이다.
『범망경보살계본소』의 사본으로는 일본 쇼메이지[稱名寺] 가나자와[金沢] 문고에 소장된 판본이 있다. 이 사본은 현재 전하고 있는 판본들 중 가장 오래된 것이나, 상・하권 가운데 현재 상권만 남아 있다. 목판본으로는 일본 유코쿠[龍谷] 대학 소장본, 교토[京都] 대학 소장본이 있다. 이 두 대학 소장본은 모두 동일한 판본이다. 『범망경보살계본소』는 원래 상・하 2권 체제지만, 이 판본들은 모두 권상, 권하본, 권하말의 3책으로 제본되어 있다. 권상은 서(序)부터 10중계까지, 권하본은 제1경계부터 30경계까지, 권하말은 31경계부터 48경계까지로 나누어져 있다. 『대정신수대장경』과 『한국불교전서』에 수록된 것은 유코쿠 대학 소장본을 저본(底本)으로 하였다.
『범망경보살계본소』는 『범망경』의 제목 및 본문을 해석하기에 앞서 의적 자신이 생각하는 보살계의 덕(德), 종취(宗趣), 체상(體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편 책의 전체적인 구성은 서론에 해당하는 서격(序格), 본지를 밝힌 지귀(旨歸), 제목을 해설한 제명(題名), 본문을 해설한 석명(釋明)의 네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론 부분에서는 불교 윤리의 근거를 설명한다. 의적은 계덕(戒德)은 보살이 성불(成佛)하는 근거이며 중생을 교화하는 제일의 방편이기 때문에 이 계덕이라는 불교 윤리야말로 8만 4천 법문 가운데 으뜸이라고 보았다.
본지를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계(戒)의 여러 조항과 그 의의를 해설하였다. 구체적으로는 업장(業障)을 일으키는 죄와 업장을 소멸시키는 선계(善戒) 등에 대하여 자세하게 해설하고 있다.
제명에서는 이 경의 제목이 변천하게 된 경위를 상세하게 서술하였다. 이 경을 『대승보살계본』이라고도 하고 『범망경』이라고도 부르게 된 까닭을 설명하였다. 또한 십중계와 사십팔경계(四十八輕戒)는 어떠한 경우에도 경의 중심 내용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본문을 해설한 부분인 석명에서는 경의 순서에 따라 본문을 차례로 해설하였다. 의적은 특히 십중계에 대한 해설에 본문의 많은 부분을 할애하였는데, 십중계에 대한 의적의 생각은 원효(元曉)의 학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평가된다. 의적은 살계(殺戒)를 비롯한 십중계의 지범(持犯) 여부는 결코 행동이나 형식으로 판단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겉으로는 잘못을 범한 듯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와 또 그 반대의 경우 등을 열거하였다. 나아가 의적은 ' 일심(一心)에 얼마나 가까운가'라는 내면의 상황 윤리가 지범의 기준이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의적은 중생을 교화하지 않는 소극적인 수도 자세를 강하게 비판하였는데, 이는 만족하는 소승계(小乘戒)보다 더욱 나쁜 죄를 짓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수도자는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보리심(菩提心)(菩提心)을 일으키게 해야 하며, 중생 교화를 게을리하는 것은 형식적 윤리만을 준수하는 것이라 강조하였다.
의적이 쓴 『범망경보살계본소』는 일본의 율종(律宗) 관련 학승(學僧)들에게 크게 존숭(尊崇) 받아온 경전이다. 일본의 율종 학자들은 이 책을 『범망경』 관련 해설서 가운데 가장 탁월한 서적이라는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율의계를 강조하고 보살계를 중시하면서도 성문계(聲聞界)를 염두에 둔 의적의 사상은 사분율(四分律)의 대가인 도선(道宣)의 보살계 인식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도선은 보살계를 받는 것을 점수(漸受)와 돈수(頓受)로 나누었다. 도선은 오계, 십계, 구족계 뒤에 보살계를 받는 '점수'가 출가 보살에게 통용되는 규칙이라고 하였다. 의적의 경우, 성문계와 보살계의 차이는 심(心)뿐이라고 보았기에 그는 성문계를 먼저 공부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