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이존창"
검색결과 총 5건
조선후기 신해박해 당시의 순교자.
김진후 (金震厚)
조선후기 신해박해 당시의 순교자.
조선후기 기해박해 당시에 순교한 천주교인.
최경환 (崔京煥)
조선후기 기해박해 당시에 순교한 천주교인.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에 있는 천주교 관련 유적.
여사울 천주교 유적 (餘사울 天主敎 遺蹟)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에 있는 천주교 관련 유적.
조선후기 황사영백서사건 당시에 순교한 천주교인.
황심 (黃沁)
조선후기 황사영백서사건 당시에 순교한 천주교인.
정사박해는 정사년인 1797년(정조 21)에, 충청도 남부 지역의 천주교 신자들을 대상으로 일어난 박해이다. 1795년부터 주문모 신부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1797년에 박해가 발생했다. 또 1790년대 충청도 지역 기근 책임을 신자들에게 돌린 것도 박해의 원인이 되었다. 박해로 100여 명이 희생됐으나, 8명만 그 사적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대부분 매를 맞고 순교했다. 정조의 교화주의 정책에 따라 관장들이 배교를 강요하면서 고문을 강화한 탓이다. 그들은 재산을 가난한 이웃들과 나누었고, 그들의 확고한 믿음은 끝내 순교로 이어졌다.
정사박해 (丁巳迫害)
정사박해는 정사년인 1797년(정조 21)에, 충청도 남부 지역의 천주교 신자들을 대상으로 일어난 박해이다. 1795년부터 주문모 신부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1797년에 박해가 발생했다. 또 1790년대 충청도 지역 기근 책임을 신자들에게 돌린 것도 박해의 원인이 되었다. 박해로 100여 명이 희생됐으나, 8명만 그 사적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대부분 매를 맞고 순교했다. 정조의 교화주의 정책에 따라 관장들이 배교를 강요하면서 고문을 강화한 탓이다. 그들은 재산을 가난한 이웃들과 나누었고, 그들의 확고한 믿음은 끝내 순교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