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심

  • 종교·철학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후기 황사영백서사건 당시에 순교한 천주교인.
이칭
  • 이칭인철(寅喆), 토마스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신유박해
  • 사망 연도1801년(순조 1) 10월 23일(음력)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757년(영조 33)
  • 출생지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최석우 (한국교회사연구소, 신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후기 황사영백서사건 당시에 순교한 천주교인.

내용

세례명 토마스. 충청남도 덕산현(현 예산군 지역) 출신. 본명은 인철(寅喆). 내포(內浦)의 사도(使徒)로 불리는 이존창(李存昌)에게서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다.

연산에 거주하던 1796년 밀사로 선발되어 주문모 신부의 서한을 북경 주교에게 전달하였다.

그는 귀국길인 1797년 초에 옥천희(玉千禧)를 만나 교회로 인도한 뒤 밀사로 활동하게 하였다. 그리고 1797년과 1799년에도 밀사로 북경에 파견되었으며, 그곳에서 성유를 받아오거나 조선 교회의 서한을 전달하였다. 1800년 7월 연산을 떠나 서울로 이주한 황심은 쌍림동에 거처하면서 황사영 등 여러 신자들과 교류하였다.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춘천으로 피신하였는데, 황사영(黃嗣永)이 가까운 배론(舟論)에 피신하여 있음을 알고 그를 찾아가 주 신부의 순교 사실을 알리는 동시에 조선교회의 이와 같은 사정을 북경 주교에게 알리는 방도를 논의하였다.

이렇게 하여 황사영은 북경 주교와 면식이 있는 황심의 이름으로 백서(帛書)를 쓰고, 황심은 그것을 옥천희로 하여금 동지사 편에 끼어서 북경에 들어가 주교에게 전달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옥천희가 먼저 잡히고, 음력 9월에 황심과 황사영이 체포되면서 백서 건은 백일하에 드러나 만사가 허사로 돌아갔다. 그리하여 황심은 역모(逆謀)에 동참한 죄로 능지처사형(凌遲處死刑)을 선고받고 음력 10월 23일에 서소문 밖에서 처형되었다.

참고문헌

  • - 『순조실록(純祖實錄)』

  • - 『한국천주교회사(韓國天主敎會史)』(달레 원저, 안응렬·최석우 역주, 분도출판사, 1980)

  • - 『한국천주교회사』(유홍렬, 분도출판사, 1964)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