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이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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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선은 1945년 조선사진예술연구회를 창립하고, 예술 사진의 한 축을 이끈 사진가이다. 1922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미술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였다. 1930년 귀국 후 서양화와 사진을 병행하다가, 점차 아마추어 사진가 활동에 역점을 두었다. 경성아마추어사진구락부에서 활동하였으며, 해방 직후 조선사진예술연구회를 창립하여 예술 사진의 확장에 이바지하였다. 순수한 아마추어리즘이 진정한 예술 사진이라고 생각하였다.
이해선 (李海善)
이해선은 1945년 조선사진예술연구회를 창립하고, 예술 사진의 한 축을 이끈 사진가이다. 1922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미술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였다. 1930년 귀국 후 서양화와 사진을 병행하다가, 점차 아마추어 사진가 활동에 역점을 두었다. 경성아마추어사진구락부에서 활동하였으며, 해방 직후 조선사진예술연구회를 창립하여 예술 사진의 확장에 이바지하였다. 순수한 아마추어리즘이 진정한 예술 사진이라고 생각하였다.
조선사진예술연구회는 1946년 3월 5일 아마추어 예술사진가들이 서울에서 결성한 해방 이후 최초의 사진가 단체이다. 해방 이후 예술사진의 발전을 목적으로 설립됐으며, 예술사진 공모전을 통해 신진작가를 발굴하는 한편 영향력 확대를 도모코자 했다. 1957년 대한사진예술가협회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조선사진예술연구회 (朝鮮寫眞藝術硏究會)
조선사진예술연구회는 1946년 3월 5일 아마추어 예술사진가들이 서울에서 결성한 해방 이후 최초의 사진가 단체이다. 해방 이후 예술사진의 발전을 목적으로 설립됐으며, 예술사진 공모전을 통해 신진작가를 발굴하는 한편 영향력 확대를 도모코자 했다. 1957년 대한사진예술가협회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조선예술사진전람회는 1947년 7월, 조선사진예술연구회가 '예술사진'을 중심으로 한국사진을 재건하려는 목표로 개최한 공모전이다. 1948년에 2회 전, 1949년에 3회 전을 개최하였으며, 신진 작가들을 배출하는 역할을 하였다. 해방 이후 열린 최대 규모의 공모전이었으나 일제강점기 예술사진과 큰 차별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내용과 형식을 답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조선예술사진전람회 (朝鮮藝術寫眞展覽會)
조선예술사진전람회는 1947년 7월, 조선사진예술연구회가 '예술사진'을 중심으로 한국사진을 재건하려는 목표로 개최한 공모전이다. 1948년에 2회 전, 1949년에 3회 전을 개최하였으며, 신진 작가들을 배출하는 역할을 하였다. 해방 이후 열린 최대 규모의 공모전이었으나 일제강점기 예술사진과 큰 차별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내용과 형식을 답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