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이화여자전문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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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메리는 일제강점기 이화여자전문학교 음악과 교수를 역임한 여성 음악가이다. 미국에서 피아노와 음악 이론을 공부한 뒤 이화여자전문학교 음악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음악 교육에 힘썼다. 일제강점기에 여러 편의 동요와 가곡, 피아노곡을 발표하였다. 해방 직후에는 지금도 많이 불리는 동요 「학교종」을 작곡하였다.
김메리 (金메리)
김메리는 일제강점기 이화여자전문학교 음악과 교수를 역임한 여성 음악가이다. 미국에서 피아노와 음악 이론을 공부한 뒤 이화여자전문학교 음악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음악 교육에 힘썼다. 일제강점기에 여러 편의 동요와 가곡, 피아노곡을 발표하였다. 해방 직후에는 지금도 많이 불리는 동요 「학교종」을 작곡하였다.
김신실은 일제강점기 이화여자전문학교 체육학부 교수로 재직하며 여성 체육의 보급에 힘쓴 여성 체육 교육가이다. 1922년 미국 오하이오주 오벌린대학에 입학하여 1926년 졸업하였다. 재학 중 오벌린대학의 자유주의적 학풍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여성 체육이 중요하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1930년 귀국하여 이화여자전문학교 체육 담당 교수로 부임하였으며, 해방 후에는 이화여자대학교 체육학부장이 되었다. 여성 체육의 정립과 보급에 앞장선 한국 최초의 여성 체육 전문가이다. 대한적십자사, 대한YWCA연합회 등의 간부로도 활동하였다.
김신실 (金信實)
김신실은 일제강점기 이화여자전문학교 체육학부 교수로 재직하며 여성 체육의 보급에 힘쓴 여성 체육 교육가이다. 1922년 미국 오하이오주 오벌린대학에 입학하여 1926년 졸업하였다. 재학 중 오벌린대학의 자유주의적 학풍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여성 체육이 중요하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1930년 귀국하여 이화여자전문학교 체육 담당 교수로 부임하였으며, 해방 후에는 이화여자대학교 체육학부장이 되었다. 여성 체육의 정립과 보급에 앞장선 한국 최초의 여성 체육 전문가이다. 대한적십자사, 대한YWCA연합회 등의 간부로도 활동하였다.
김앨리스는 일제강점기 이화여자전문학교 음악과 교수를 역임한 여성 음악가이자 교육자이다. 1914년에 이화학당 대학과를 1회로 졸업하였다. 이후 나가사키의 갓스이여자전문학교에서 3년 동안 음악을 공부하였다. 1923년에는 오리건주 포틀랜드의 엘리슨 화이트 음악학교 정규 과정을 마쳤으며, 1925년에는 오리건대학에서 음악 전공으로 학사 학위를 받았다. 1925년 귀국하여 이화여자전문학교에 음악과를 만들고 음악 교육의 정착과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근대적 여성상의 모범으로 세인의 주목을 받았다.
김앨리스 (金앨리스)
김앨리스는 일제강점기 이화여자전문학교 음악과 교수를 역임한 여성 음악가이자 교육자이다. 1914년에 이화학당 대학과를 1회로 졸업하였다. 이후 나가사키의 갓스이여자전문학교에서 3년 동안 음악을 공부하였다. 1923년에는 오리건주 포틀랜드의 엘리슨 화이트 음악학교 정규 과정을 마쳤으며, 1925년에는 오리건대학에서 음악 전공으로 학사 학위를 받았다. 1925년 귀국하여 이화여자전문학교에 음악과를 만들고 음악 교육의 정착과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근대적 여성상의 모범으로 세인의 주목을 받았다.
김합라는 일제강점기 이화여자전문학교 가사과 교수로 가정학 교육에 이바지한 여성 교육자이다. 이화학당 대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에서 가정학을 전공한 첫 번째 여성 석사이다. 이화여자전문학교에 국내 최초의 가사과를 설치하고 초대 학과장을 맡았다. 이후 여러 제자를 길러내며 한국 가정학의 토대를 쌓았다. 미국 유학 이전에는 피아니스트로도 활동하였다.
김합라 (金合羅)
김합라는 일제강점기 이화여자전문학교 가사과 교수로 가정학 교육에 이바지한 여성 교육자이다. 이화학당 대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에서 가정학을 전공한 첫 번째 여성 석사이다. 이화여자전문학교에 국내 최초의 가사과를 설치하고 초대 학과장을 맡았다. 이후 여러 제자를 길러내며 한국 가정학의 토대를 쌓았다. 미국 유학 이전에는 피아니스트로도 활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