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인선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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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종 왕비 인선왕후의 한글 편지.
인선왕후 언간 (仁宣王后 諺簡)
효종 왕비 인선왕후의 한글 편지.
법련사는 조선 후기 인선왕후가 창건한 경기도 시흥시에 있는 사찰이다. 병자호란 직후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갔다가 돌아온 인선왕후는 죽은 아버지 장유의 명복을 빌기 위해 이 사찰을 창건하였다. 6.25전쟁 당시 폭격으로 사찰의 절반이 파괴되었고, 이후 대은・복만・도원 등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수리산 법련사 (修理山 法蓮寺)
법련사는 조선 후기 인선왕후가 창건한 경기도 시흥시에 있는 사찰이다. 병자호란 직후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갔다가 돌아온 인선왕후는 죽은 아버지 장유의 명복을 빌기 위해 이 사찰을 창건하였다. 6.25전쟁 당시 폭격으로 사찰의 절반이 파괴되었고, 이후 대은・복만・도원 등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여주영릉(驪州寧陵)은 조선 제17대 국왕인 효종과 인선왕후 덕수장씨의 능이다. 여주영릉은 1659년 구리 동구릉에 조성되었으나 1673년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현재 여주영릉은 인종 효릉을 모방해 제작하여 16세기의 돌거리 도상(圖像)에 17세기 양식이 혼합되어 있다. 1674년 인선왕후의 능을 효종릉 아래에 조성하여 동원상하릉이라는 보기 드문 형식이 만들어졌다. 현재 사적 '여주 영릉과 영릉(驪州 英陵과 寧陵)'으로 지정되어 있다.
여주 영릉 (驪州 寧陵)
여주영릉(驪州寧陵)은 조선 제17대 국왕인 효종과 인선왕후 덕수장씨의 능이다. 여주영릉은 1659년 구리 동구릉에 조성되었으나 1673년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현재 여주영릉은 인종 효릉을 모방해 제작하여 16세기의 돌거리 도상(圖像)에 17세기 양식이 혼합되어 있다. 1674년 인선왕후의 능을 효종릉 아래에 조성하여 동원상하릉이라는 보기 드문 형식이 만들어졌다. 현재 사적 '여주 영릉과 영릉(驪州 英陵과 寧陵)'으로 지정되어 있다.
여주 효종 영릉재실은 경기도 여주시 능서면에 있는 조선후기 제17대 효종과 인선왕후 장씨의 능인 영릉에 제사하기 위해 세운 재실이다. 2007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재실은 능의 관리를 담당하는 참봉이 상주하는 곳이며, 제관들이 제사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능의 부속건물이다. 영릉 재실은 안향청, 집사청, 전사청, 참봉청, 행랑, 침가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안향청, 집사청(현 제기고), 참봉청(현 재실), 제기고(현 행랑채부속동), 행랑만 남아 있다. 영릉 재실은 기본 형태가 잘 남아있고, 간결하고 소박하면서 짜임새 있어 조선시대 재실 건축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다.
여주 효종 영릉재실 (驪州 孝宗 寧陵齋室)
여주 효종 영릉재실은 경기도 여주시 능서면에 있는 조선후기 제17대 효종과 인선왕후 장씨의 능인 영릉에 제사하기 위해 세운 재실이다. 2007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재실은 능의 관리를 담당하는 참봉이 상주하는 곳이며, 제관들이 제사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능의 부속건물이다. 영릉 재실은 안향청, 집사청, 전사청, 참봉청, 행랑, 침가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안향청, 집사청(현 제기고), 참봉청(현 재실), 제기고(현 행랑채부속동), 행랑만 남아 있다. 영릉 재실은 기본 형태가 잘 남아있고, 간결하고 소박하면서 짜임새 있어 조선시대 재실 건축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다.
경기도 여주시 능서면 왕대리에 소재한 회양목.
여주 효종대왕릉 회양목 (驪州 孝宗大王陵 淮陽木)
경기도 여주시 능서면 왕대리에 소재한 회양목.
갑인예송은 1674년(현종 15) 효종 왕비 인선왕후의 국상에 자의대비가 입을 상복을 두고 일어난 예송 사건이다. 인선왕후가 장자의 부인인가 차자의 부인인가에 따라 자의대비는 기년복 혹은 대공복을 입어야 했는데, 이는 효종이 장자인가 차자인가 하는 효종의 종통과도 연관된 문제였다. 현종은 효종의 종통을 문란하게 만든 서인의 대공복 논리에 분노하여 복제를 기년복으로 개정하고 서인을 처벌하였다. 복제 개정 후 한 달여 만에 현종이 승하하자 14세의 나이에 즉위한 숙종은 장례 후 과감히 서인들을 조정에서 축출하고 남인을 등용하여 정국을 개편했다.
갑인예송 (甲寅禮訟)
갑인예송은 1674년(현종 15) 효종 왕비 인선왕후의 국상에 자의대비가 입을 상복을 두고 일어난 예송 사건이다. 인선왕후가 장자의 부인인가 차자의 부인인가에 따라 자의대비는 기년복 혹은 대공복을 입어야 했는데, 이는 효종이 장자인가 차자인가 하는 효종의 종통과도 연관된 문제였다. 현종은 효종의 종통을 문란하게 만든 서인의 대공복 논리에 분노하여 복제를 기년복으로 개정하고 서인을 처벌하였다. 복제 개정 후 한 달여 만에 현종이 승하하자 14세의 나이에 즉위한 숙종은 장례 후 과감히 서인들을 조정에서 축출하고 남인을 등용하여 정국을 개편했다.
영릉(英陵)과 영릉(寧陵)을 효율적으로 보존·관리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
세종전(세종대왕유적관리소) (世宗殿(世宗大王遺蹟管理所))
영릉(英陵)과 영릉(寧陵)을 효율적으로 보존·관리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